장 피에르 바크리, 귀엽고 소심한 佛 마초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2009.07.28 11:30

장 피에르 바크리는 이른바 예술영화의 마초다. 혹은 마초는 분명한데 장르영화와는 거리가 먼 멜로드라마의 귀엽고 소심한 마초다. 이름만으로도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면 <타인의 취향>(2000)의 순진한 중년의 대머리 아저씨라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무뚝뚝한 데다 자신을 표현하고 포장하는 데 서툴지만 마음만은 진실한 말 그대로 ‘아저씨’다. 국내에선 단관 개봉만으로 약 5만 관객을 동원했던 <타인의 취향>은 아네스 자우이 감독과 더불어 장 피에르 바크리라는 배우의 명성을 높였다.

흥미로운 것은 아네스 자우이 감독과 장 피에르 바크리가 부부라는 사실이다. 최근 개봉한 <레인>(2009)의 경우 두 사람이 함께 출연했다. 아네스 자우이의 최고 동료이기도 한 그는 <레인>에서도 공동 각본과 주연을 맡으며 그녀의 소울메이트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하지만 아네스 자우이가 영화 속에서 다른 남자와 연인 사이로 나온다는 점이 이채롭다.

1951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장 피에르 바크리는 연극, 영화, TV에서 연기와 각본을 겸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뤽 베송의 두 번째 영화 <서브웨이>(1985)에 출연했고 <디디에>(1997)에서는 개의 본성을 지닌 남자 ‘디디에’를 맡아 기르는 남자로 출연해 자신이 이끄는 축구팀에 결원이 발생하자 그를 전격적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같은 해 프랑스영화의 거장 알랭 레네의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에도 출연한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타인의 취향>이다. 중소기업 사장 ‘카스텔라’로 나온 그는 오직 사업만 알며 살아왔다. 당연히 예술에는 문외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보러간 연극의 여주인공이자 노처녀인 클라라(안 알바로)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이후 카스텔라는 클라라의 예술인 친구 그룹을 쫓아다니며 은근한 비아냥을 겪으면서도 술값도 내고 그들이 그린 그림도 사주지만 결국 클라라에게 딱지를 맞는다. 클라라와 함께 다니기에 카스텔라는 너무 무식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네스 자우이는 오히려 조금씩 카스텔라의 매력을 부각시키며 그 관계를 역전시키고, 카스텔라를 비웃는 그 예술인 집단의 지적 허영과 속물근성을 폭로한다. 밥맛없고 허세 가득한 예술인보다야 심성 좋은 마초가 더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프랑스에서만 400만 관객을 모은 <타인의 취향>은 <택시2>와 더불어 그해 프랑스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고 <와호장룡>과 함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경쟁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더욱이 <타인의 취향>은 ‘프랑스 코미디는 어렵고 낯설다’는 편견을 깨준 영화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 바로 장 피에르 바크리가 있었다.

이후 <아스테릭스2: 미션 클레오파트라>(2002) 등에 출연한 뒤 다시 아내와 힘을 합친 <룩 앳 미>(2004)로는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장 피에르 바크리는 지독히 자기중심적이고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찬 아버지 ‘에티엔’을 연기했다. 거의 폭군이나 다름없지만 특유의 유머는 여전했다. 여기서도 아네스 자우이는 에티엔의 딸의 음악선생으로 출연했는데 장 피에르 바크리의 웃음 섞인 불만은 “시나리오는 늘 함께 쓰는데 아내는 늘 자기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한다”는 거였다. 물론 애정에서 우러나온 말이겠지만.

<레인>(사진)은 아네스 자우이와 장 피에르 바크리가 작가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만난 영화다. 여기서 장 피에르 바크리는 ‘허당’이다. 딱히 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싸늘하게 외면당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빗속의 그를 보는 건 무척 쓸쓸하고 애처롭다. 그처럼 장 피에르 바크리는 장르는 다르지만 장 가방, 리노 벤츄라, 이브 몽땅, 장 폴 벨몽도, 제라르 드파르디유 등을 잇는 프랑스 사나이의 계보 안에 있다. 궁금한 건 언제나 함께 각본을 쓰고 출연까지 하면서도 한번도 연인이나 부부로 만나지 않았던 그들이 언제쯤 그렇게 만나게 될까 하는 점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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