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주 1위 노래를......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노래가 1위라니. 그것도 나온 지 하루만에 1위라니. 무슨 근거로?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 더군다나, 차트마다 1위곡이 다르고 순위가 제각각인 것을 보면 순위의 신뢰를 이내 포기해야만 한다.
음악시장은 2000년대 이후 음반시장에서 음원시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채 급격한 변화와 조우했다.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가수는 소위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온전히 펼쳐나가는 뮤지션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음원시장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발 빠르게 전개된 디지털 싱글 음악은 하루살이 음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음악을 향유하고 대중과 공유하는 소통방식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한 생존 속에서 각축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음악이 소중하지 않는 시대다. 귀를 통해 마음을 적시는 노래의 감성 기능은 유통기한을 넘었다. 음악이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패션화된 오늘의 음악시장은 음악을 들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점점 간극을 넓히고 있다.
30, 40대 이상의 대중에게 '당신이 아는, 인정할 만한 가요 차트'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도 '가요 톱 10'을 떠올릴 것이다. 1981년 2월 우리 앞에 선을 보인 '가요 톱 10'은 공영방송 KBS가 진행하는 '공룡차트'였다. 매체 파워도 대단했지만 공정성 있는 기준으로 대중에게 오랫동안 신뢰받았던 차트였다.
KBS 경영정보센터에 등록된 명단에서 10만 명을 추출해 지역별, 연령별 2800명 선정, 집단 투표인단(택시, 버스기사, DJ, 가요 담당기자 등) 200여명에게 왕복 엽서 발송, 회수, KBS 가요담당 PD의 기명으로 10곡 추천, 전국 투표인단과 가요 PD 추천 곡을 80:20 비율로 합산, KBS 경영정보센터에서 200위까지 컴퓨터에 의해 집계된 40위부터 1위까지 순위 선곡 방송이라는 전 방위적 집계를 통해 순위를 걸러낼만큼 진화한 가요차트였다.
당시 1위곡은 사실상 국민가요나 다름없었을 만큼 가요 흐름의 척도를 제시해주었다. 1998년 '가요 톱 10'이 종영되고 사실상 우리는 가요 차트를 잃어버렸다.
10여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음악차트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 사이 우리는 귀에 따갑도록 다른 나라의 음악차트와 비교 당했다. 우리는 왜 그런 신뢰와 권위 있는 전통적 차트가 없는지를 비관했다. 미국의 '빌보드차트'나 일본의 '오리콘차트'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1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의 빌보드차트를 보면 알 수 있듯 음악차트가 주는 산업적, 그리고 역사적 가치는 단순히 '계량화된 통계 수치' 이상이다. 음악차트는 그 시대의 음악 트렌드와 소비자 성향, 그리고 음악 산업의 규모 및 흐름에 대해서 차트 순위라는 제법 재미있는 형식으로 풀어낸 만화 역사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의미 있는 음악차트가 탄생했다. 음악매출 중심의 순위 집계방식으로 이뤄진 '가온차트'가 그것이다. 한국 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만든 '가온차트'는 대한민국 음악콘텐츠 매출의 97% 이상을 유통하고 있는 온라인, 오프라인 사업자가 모두 참여했다. 모든 음악콘텐츠의 성적표를 그대로 반영하는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음악차트가 탄생된 것이다.
음악매출이 결국 순위의 단서가 되는 미래지향적 차트다. 해방이후 한국 모든 음악 사업자들이 매출을 제공하는 전무후무한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음악팬이 음반을 구입하거나 유료로 음원을 사용하는 모든 자료가 집계되는 '대중음악계의 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비틀스, 롤링 스톤즈,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마돈나, 보이즈투맨 등 세계 음악사에 길이 남을 슈퍼스타들 중 음악 판매 매출이 작았던 아티스트가 있었는가? '음악을 소비하는 행위'를 단순히 '음악성을 포괄할 수 없는 단편적 수치'라고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중의 인기도 및 이에 따른 콘텐츠 판매량이 '음악성'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온차트'가 미국의 '빌보드차트'와 달리 방송회수 집계를 포기한 것은 국내 방송환경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미국과 같이 수 천 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가지고 있는 음악시장과 달리 몇몇 주요 매체(공중파 및 케이블)에서 거의 대부분의 음악방송을 하고 있는 국내 실정은 공정한 차트 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사이트나 이동통신사, 직배사를 포함한 국내 음반사가 제공하는 매출 집계의 조작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조작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현재, 음반 기획사와 유통사간에는 계약상 매출 비밀보장 조항이 있다는 것은 완벽한 매출 지표가 실시간으로 제공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아직까지도 오프라인 앨범 판매량이 중심이 되는 세계 유수의 음악 차트와 다르게 디지털 음원중심의 차트인 '가온차트'는 세계에서 아직 한 번도 제시하지 못했던, 그러나 향후에는 모든 나라의 음악차트가 변화하게 될 디지털 음원 유통 차트의 선구자적 역할을 제시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의 빌보드와 영국의 UK차트의 매출집계 범위도 자국 음악시장의 약 90~95% 정도 수준이고 일본의 오리콘차트는 60% 정도라는 점은 주지할 만한 점이다.
가온차트는 향후 음악 구매자 정보 데이터까지 노리고 있다. 구매되는 음원에 대해 연령별, 지역별, 성별 등 다양한 구매 관련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유용한 마케팅 자료와 음악 산업적 통계 지표로써도 다양한 패턴의 분석을 통해 정보DB화를 구축하는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는 점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가온차트'가 기존 음악사이트와 이동통신사의 매출 자료를 받는 한계에서 벗어나 대형, 군소 음반기획사에게 음악 매출에 관련한 권리 소싱을 받아내겠다는 의지는 향후 가온차트의 공신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가온차트의 탄생을 구축한 최광호 사무국장은 기술적 한계에서 벗어나 정책적으로 음악차트의 믿음을 위한 끝없는 행보를 구가하고 있다고 의지 표명했다.
머지않아, 타국의 음악차트를 운운하는 일은 없어질 것을 기대한다. 가장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음악판매'로 이루어진 정직한 음악차트가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훗날, 역사와 전통의 영광으로 각인되는 음악차트의 탄생이 2010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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