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악마' '김복남'…잔혹복수극 봇물 왜?

전형화 기자  |  2010.08.18 09:37

잔혹복수극이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4일 개봉한 '아저씨'가 260만명을 넘어서며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12일 개봉한 '악마를 보았다' 역시 17일까지 80만명을 동원했다. '아저씨'는 원빈을 내세운 판타지 액션물이며, '악마를 보았다'는 리얼을 전제로 한 잔혹극이지만 사적인 복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9월2일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개봉한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남편과 시동생, 시어머니에 학대를 당하면서도 소처럼 일하던 여인이 딸을 잃자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학대 받는 여인이 통쾌한 복수를 하는 모습에 칸에선 해외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왜 지금 복수극인가?

우선 복수극은 통상적으로 스릴러의 외피를 띈다. 스릴러는 블록버스터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반면 장르의 쾌감을 주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액션, 호러, 고어 등 장르에 덧칠을 하기는 쉬어 감독이 상상력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최근 한국영화산업이 어려워지면서 제작비가 덜 들면서 효과가 강렬한 영화를 찾다보니 스릴러 장르가 양산된 측면이 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7억원 남짓한 제작비로 섬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제작됐다.

복수에 대한 성찰보단 복수에 의한 쾌감이 볼거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최근 잔혹복수극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아동 성범죄나 납치 살인 등 강력범죄가 만연한 요즘 세태가 창작자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고 있다. 한 영화 제작자는 "복수는 제도권이 할 수 없는 일을 개인이 한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준다"며 "영화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간에 현실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 '그 놈 목소리' 등 과거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결론을 내지 못한 현실의 안타까운 반영이라면 '추격자'를 시작으로 점차 스릴러가 복수극의 형태를 보이는 것도 영화를 통한 사적인 복수를 꿈꾸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영화계에는 단순히 스릴러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들이 다양한 장르로 변주돼 제작되고 있다. 연쇄 강간마인 발바리 사건은 '체포왕'이란 영화로 준비 중이며,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로 제작 중이다.

관객들도 잔혹한 사건을 자주 접하면서 점차 내성이 강해지는 것도 이런 복수극 등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센 표현에 무뎌지면서 잔혹한 묘사, 설정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들의 표현 수위가 점차 올라가고 있는 것도 창작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관객들의 이런 변화를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TV에서 막장드라마가 만연하면서 점차 막장 코드가 다변화되고 일상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잔혹복수극의 시대가 과연 얼마나 이어질까?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아진다고 복수가 끝이 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들 영화들이 청소년관람불가라는 한계가 명확할 뿐더러 스릴러 장르가 흥행에 썩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차츰 외면받을 순 있다.

그래도 영화에서 복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의 것인 복수를, 나의 것으로 꿈꾸는 건, 신을 닮으려는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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