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 '천일의 약속', 김수현 드라마의 정점

뻔한 드라마를 최고로 만든 김수현식 고뇌와 속도

하유진 기자  |  2011.12.21 06:00


SBS '천일의 약속'(극본 김수현·연출 정을영)이 수애와 김래원의 비극적인 사랑에 마침표를 찍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20일 종영했다.

'천일의 약속'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의 비극적인 삶을 여실히 그렸다. 삶과 기억, 사랑과 자아가 얽힌 모습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일각에선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있었으나, '천일의 약속'이 여타 멜로와 확실히 차별화된 반열에 오른 데는 김수현 작가의 색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을 거부하고, 그를 지키려는 한 남자의 사랑을 밀쳐내고, 하지만 끝내 진심과 감정에 굴복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지 못했던 이서연의 모습은 김수현이 보여주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불치병에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는 통속적인 전개가 아닌,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끝까지 싸워낸 이서연에게 김수현의 고뇌가 담겼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때로는 더딘, 때로는 급박한 전개를 문제 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은 같은 비중과 속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의 시간은 더디고 행복은 짧게 느껴진다. 혹은 그 반대. 김수현은 특유의 완급조절로 병이 진행되는 과정, 그로 인해 서연이 변해가는 모습,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형의 한결같은 마음을 특유의 문법으로 표현해냈다.

불치병에 걸린 여주인공과 이를 지켜주는 남주인공의 영원한 사랑. 뻔한 드라마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 건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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