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화차', 당신들에게 보이는 새로운 출사표"(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2.03.10 14:04
박용훈 인턴기자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한 '낮은 목소리'(1995) 이후 변영주 감독에겐 여러 갈래의 기대감이 공존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어야만 할 것 같은, 폭력적인 남성사회에 대해 분노하는 여전사 같은...

그렇기에 변영주 감독이 충무로에 입성해도 그런 의식을 담은 영화들을 만들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변영주 감독은 충무로 시스템에서 '밀애'와 '발레교습소'를 만들었다. 두 영화는 변영주다우면서도 또 변영주와 달랐다.

변영주 감독에 대한 선입견과 기대는 작은 돌에 매어 있는 개 마냥 그를 옭아맸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지만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내놓으면서 비로소 그 돌에서 벗어난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원작을 영화로 한 '화차'는 결혼을 앞둔 여자가 갑자기 사라지자 남자가 그녀를 찾다가 여자의 과거가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웰메이드 사회파 미스테리로 기자 시사회 이후 상찬이 쏟아졌다. 8일 개봉해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변영주 감독과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화차'를 준비한 지 꽤 됐다. 사실 변영주 감독과 '화차'가 잘 어울릴까란 생각도 들었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속삭이듯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무섭거나 놀랍거나 뒤돌아보면 뭔가를 깨닫게 만든다. '화차' 판권이 팔렸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먼저 찾아갔다. 내가 갖고 있는 숨겨둔 취미, 예컨대 '스타워즈', 서부영화, 판타지, 이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낮은 목소리'를 만든 감독이란 선입견이 있기에 '화차' 같은 미스테리물을 만들 것이란 생각을 하기 힘들었는데.

▶'발레교습소'를 끝내고 어느날 내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뭐하는 감독인지란 생각을 하게 됐고. 난 작가가 되야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주의자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강박증이 날 약삭빠른 사람이 되게 만들었고, 핑계거리를 만드는 감독이 되게 했다.

왜 상업영화를 만들면서 진정성을 찾으려 할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말하는 진정성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접근해서 속삭이듯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하는 게 필요했다.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걸 생각해줘도 감사하고 그냥 즐기기만 해도 감사하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됐다.

-투자도 쉽지 않았고, 애초 원했던 배우들과 한 것도 아니었는데.

▶40대가 되면 지루할 줄 알았는데 삶은 여전히 재미있고 궁금한 게 많더라. 더 신나게 좌충우돌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실패란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로 부딪히자고 결심했다. '화차'를 한다는 소리에 "너 미쳤냐"란 소리도 들었지만 그냥 '화차'안에 타서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제작비가 적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워낙 하고 싶은 이야기와 배우들이 유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져서 아쉬움을 덮는다. 그렇기에 결말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아쉬운데.

▶맞는 말이다. 쏟아지는 칭찬이 과대포장된 부분이 있다. 아귀가 안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고. 그래도 이렇게 좋게 봐주시는 걸 지금은 즐기고 있다. 이 영화가 당신들에게 보여지는 새로운 출사표가 되길 바랐다. 엔딩은 한 달간 싸우고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20고가 넘게 썼지만 여전히 아쉽다.

-이선균과 조성하는 연기 잘하기로 잘 알려진 배우들이고, 김민희 같은 경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조명을 받고 있는데.

▶김민희가 하기로 했단 소리를 듣고 많이 찾아봤다. 화보까지 봤으니. 그러면서 알게 된 게 이 배우는 여러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봤는데 내 옆에 없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선균과 침대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고 심장이 뛰더라. 아 배우와 끝까지 달려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 장면 같은 경우는 환경이 열악해 무전기를 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장면으로 만들더라.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장면은 시나리오보다 훨씬 우아한 장면이 됐다. 김민희와 이선균에게 신이 내린 것 같았다.

-'화차'는 감독이 짙은 어둠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각 인물들에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던데. 세 배우들에 애정을 골고루 주면서 리듬 있게 연출하기가 쉽진 않았을텐데.

▶김민희를 바라보는 이선균과 조성하의 태도를 관객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캐릭터를 설명하는 서브플롯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찍은 이야기 중 조성하와 마누라가 싸우는 딱 한 장면만 잘랐다.

-92년 일본에서 나온 원작과 2012년 한국 사회가 다를 바가 없다. '화차'의 종점은 과연 어디일까.

▶ 15고 엔딩을 이야기해주겠다. 김민희를 놓친 뒤 에필로그가 따로 있는 내용이었다. 김민희가 어떤 남자와 함께 아기를 안고 가는 걸 우연히 이선균이 보게 된다. 그리고 남편이 화장실에 간 동안 김민희가 이선균에게 "못 본 척 해주세요" "못 본 척 해주세요"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었다. '화차'는 결국 지옥으로 가는 수레인 화차에 올라탄 그녀들의 이야기다.
박용훈 인턴기자

-'화차'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잊혀질까 두렵진 않았는지.

▶ 두려웠다. 부산영화제던가 김태용 감독이랑 몇명이랑 술을 먹는데 어떤 영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그들에게만 인사를 하더라. 자다가 운적도 있다. 그러다가 자기연민하기 없기를 결심했다.

-'화차'는 변영주 감독의 전작보다 훨씬 여성적인 느낌이 나는데.

▶'밀애'랑 '발레교습소'를 함께 한 조영구 음악 감독이 '화차'를 보고 그러더라. 네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같단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래서 정체성을 놓고 고민 중이다. 여담이지만 '놀러와'에서 출연해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여전히 연관 검색어가 '변영주 성별' '변영주 여자' '변영주 남자'다. 젠장.

-'낮은 목소리'가 지금의 변영주 감독을 만들었지만 '낮은 목소리' 때문에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 어려웠던 점도 있다. 다시 시작해도 '낮은 목소리'인가.

▶다시 돌아가도 '낮은 목소리'인 건 변함없을 것 같다. 배운 게 너무 많으니깐. 다만 '낮은 목소리' 이후 내가 너무 방어적이었던 같다.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뭐라하고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낮은 목소리'를 했던 변영주가 충무로에 와서 도전자가 아닌 방어자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비판을 받으면 삐치고 억울해했다.

다시 돌아가도 '낮은 목소리'지만 도전자로 살 것 같다.

-MBC 파업이라든지 강정마을 문제라든지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화차' 흥행을 위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면.

▶오늘(7일)도 사고를 하나 쳤다.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에 출연했다가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만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렸다. 이 영화도 봐주면서 자연도 지켜달라고 했다. (마침 이날 제주도 구럼비 바위에서 폭탄이 터졌다) MBC 파업 지지 집회가 있고 '화차' GV가 있다면 '화차'를 택할 것이다. 그런 다음 지지 집회에 갈 것이다. 내가 영화감독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 영화는 언제쯤.

▶'화차'를 시작으로 세상 사람들 옆에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악몽이든 예쁜 꿈이든 꾸게 해줄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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