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국영화는 1억 관객을 돌파하고, 천만 영화가 두 편 나왔으며,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등 눈부신 성과를 냈다. 이런 한국영화 약진에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큰 몫을 차지했다. 제작자부터 감독, 배우까지 올해 여성 영화인들은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이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도록 했다.
스타뉴스는 2012년 한국영화 결산으로 올해를 빛낸 여성영화인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한다. '도둑들'로 한국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 첫사랑 열풍을 일으킨 '건축학개론' 제작자 명필름 심재명 대표,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20대에서 30대로 끌어올린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만든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 환상멜로를 국내에 안착시킨 '늑대소년' 김수진 비단길 대표, 여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은유한 '화차'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 상반기와 하반기 관객을 사로잡은 배우 배수지와 박보영이 그 주인공들이다.
140억원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힘들다. 성공은 당연하다. 아니 당연해야 한다. 누구나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이라 실수했다는 말은 못한다. 140억 짜리 영화는 30억 짜리 영화 4편 찍는 것과는 다르다.
안수현 대표에게 '도둑들'은 당연함과의 싸움이었다. 흥행감독인 최동훈이 메가폰을 잡고, 김윤석 이정재 김수현 전지현 김혜수 등 초호화 캐스팅에 순제작비만 140억원을 쓰는 영화. 성공은 당연해야 했다. 남편이 최동훈 감독이라고, '도둑들'이 케이퍼 필름 창립작이라고, 실수가 용납될 순 없었다.
안수현 대표는 한국영화 1억 관객 시대의 상징인 '도둑들'을 성공적으로 세상에 내놨다. 그녀는 당연함과 싸움에서 승리했다.
-여성 제작자라는 점이 '도둑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글쎄 아무래도 세계관과 여자 캐릭터를 만들 때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보통 도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남자는 물건과 사랑을 함께 훔치고, 여자는 사랑만 찾기 마련이다. 여자가 목표에 성공하고, 남자가 사랑을 얻으면 왜 안되나. '도둑들'도 처음에는 전지현이 최후의 승자가 아니었다. 전지현이 보석을 얻고, 김수현이 사랑을 얻는 현재 버전은 그런 세계관에서 출발했다.
또 도둑 이야기를 만들 때 사실 이만큼 여성 캐릭터가 들어가기 힘들다.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을 할 때는 어떤 맥락에서는 '범죄의 재구성'에 가까웠다. 여러 명이 모여서 뭔가를 털지만 계획한 사람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게. 그런데 '범죄의 재구성2'를 만들려는 게 아니니깐 발전시켜보자고 했다. 그래서 인물 구도를 남녀를 섞고, 그렇게 해서 다른 갈등을 넣으려 했다. 김해숙이 한 씹던껌도 처음에는 남자였다.
단순히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감정이 복잡하게 엮이는. 남자들만 있으면 우정과 복수 이상으로 가기가 힘들다. 여자 캐릭터에 목표를 주지 않으면 후지부지하게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각 인물들에 목표를 명확히 했다.
-'도둑들'이 할리우드 케이퍼무비와 가장 다른 지점이 그런 세계관이었던 것 같은데.
▶'도둑들'이 여성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에 다르게 생각한 부분도 있다. 다만 무조건 여자는 사랑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그런 세계관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이 바뀔 수 있고, 여자에게 사랑보다 일이 중요할 수 있다. 그건 최동훈 감독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잠파노(김수현)가 사랑을 선택하고 예니콜(전지현)은 다이아를 향해 간다. '도둑들'로 그런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뭔가를 도둑질한다는 건 맥거핀이었다.
-올해 한국영화 중 여성 영화 제작자, 여성영화인들이 다르거나 같아도 색깔을 좀 더 드러나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어떤 점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을까.
▶여성이 갖고 있는 특색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우선 실무적으로 일을 할 때 아무래도 여자는 문제가 생기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 해결해 나가려 한다. 내가 맞다고 하는 쪽으로 밀어 붙이기보다는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조화롭게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제가 느끼기에도 '도둑들' '늑대소년' '내 아내의 모든 것' '부러진 화살' 등을 보면 서로서로 그런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액션을 찍을 때 열광하기보다는 감정을 만들어갈 때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반응이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에 아무래도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도둑들'에서는 어떤 장면이었나.
▶김해숙과 김혜수가 비 오는 날 술 마시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사실 그 장면은 사건이 진행되는 데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래서 편집도 해봤다. 그런데 도저히 못 빼겠더라. 그 감성이 이어져야 했고, 그 감성이 이어져야 관계가 생기고, 그 관계를 '도둑들'로 보여주고 싶었으니깐.
-여자배우들과 관계도 여성 제작자에게 강점일텐데.
▶아무래도 여배우들은 더 섬세하지 않나. 동성이다보니 좀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여배우들이 뭔가를 착 보여줬을 때 아무래도 열광하는 게 더 세다. 그러니까 배우 스스로도 매력적으로 연기하기 위해서 더 애를 쓰는 것 같고. 여자 스태프도 더 끼고 사니깐 여성적인 무드가 현장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자들이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그게 남성적일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즐거운 순간을 많이 만들어낸다. 현장은 거의 전쟁터니까.
-'도둑들'은 실패하면 안되는 정말 어려운 프로젝트였는데.
▶창립작인 만큼 정말 성공을 하고 싶었다. 창립작이 실패하면 그 다음까지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 뭔가를 기획하든 자유롭게 믿고 나갈 힘이 안 생긴다. 실패한 취향이니깐 남들이 안 믿어준다. 사실 '도둑들'을 최동훈 감독과 한 번 해보자고 했을 때 가장 부담스러웠다. 최동훈 감독은 이미 성공한 감독이었고. 기대치가 너무 부담스럽고 불안했다. 최동훈 감독이 한 마디 하더라. 너의 불안을 남들이 알게 하지 말라고. 아무래도 남편이니깐.
-최근 한국영화계에는 여성 제작자들이 맹활약을 한다. 그런 연대가 시너지를 주나.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만약 제 선배들이 다 남자였으면 마찬가지였을 수 있는데 많이 물어보게 되고 시나리오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게 된다. 할리우드에 비해 한국이 여성 제작자가 많은 편이다. 현장에서 여성성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차별이 차이가 덜하기도 하고. 선배들이 성공하고 길을 걸어가니깐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안수현 대표는 신씨네 마케팅 출신이다. 대다수 여성 제작자들도 마케팅으로 출발했다. 제작부나 연출부로 출발하는 남성 제작자와 다른 점이다. 결과론이지만 이 점이 여자 제작자들이 영화를 출발해서 내놓을 때까지 전체적으로 더 세심하게 접근하는 차이인 것 같은데.
▶문제가 발생하는 걸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도둑들' 같은 경우도 해외 촬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남성 제작자는 아무래도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하다. '범죄와의 전쟁' 한재덕PD를 봐도 그렇게 어려운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했다. 사람의 차이기도 하겠지만.
-차기작 계획은.
▶'전우치2'도 이야기가 나오고, '도둑들2'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고민 중이다. 최동훈 감독 말고 신인 감독들과도 작품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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