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감독 "올 최고 女캐릭터는 김민희·김혜수"③

[여성영화인 릴레이 인터뷰] 2012韓영화, 우먼파워 빛났다

전형화 기자  |  2012.12.07 08:41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12년 한국영화는 1억 관객을 돌파하고, 천만 영화가 두 편 나왔으며,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등 눈부신 성과를 냈다. 이런 한국영화 약진에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큰 몫을 차지했다. 제작자부터 감독, 배우까지 올해 여성 영화인들은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이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도록 했다.

스타뉴스는 2012년 한국영화 결산으로 올해를 빛낸 여성영화인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한다. '도둑들'로 한국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 첫사랑 열풍을 일으킨 '건축학개론' 제작자 명필름 심재명 대표,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20대에서 30대로 끌어올린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만든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 환상멜로를 국내에 안착시킨 '늑대소년' 김수진 비단길 대표, 여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은유한 '화차'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 상반기와 하반기 관객을 사로잡은 배우 배수지와 박보영이 그 주인공들이다.

변영주 감독은 올해 한국영화계 변방에서 중심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녀는 변방의 목소리였다.

'낮은 목소리'로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조명한 이후 변영주 감독은 여러 선입견에 둘러싸였다. 폭력적인 남성사회에 분노하는 여성의 대표주자. 황량하게 눈 덮인 벌판 위에 홀로 서있는 '우르사' 닮은 백곰.

하지만 변영주 감독은 그런 울타리 안에 가둬두기엔 너무 덩치가 크다. 임순례 감독이 했다는 말마따나 '몸땡이'가 젠더를 앞선다. 변영주 감독의 '몸땡이'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담겨있다.

그 목소리는 올해 '화차'로 비로소 관객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변영주 감독은 올해 한국영화계에 '화차'라는 화두를 던졌다. '화차'를 사회파 영화라는 틀로만 본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추격자' 이후 불어 닥친 스릴러 열풍이 조악한 작품들 때문에 수그러들 무렵 '화차'는 업그레이드된 스릴러로 관객을 초대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화차'는 변영주 감독 마냥 '몸떙이'가 틀을 넘어선다.

-감독이라는 정체성이 강한가, 여성감독이라는 정체성이 강한가.

▶글쎄, 임순례 감독님이 나보고 "너랑 나는 몸땡이가 젠더를 앞선다"고 하더라. 감독이란 단어 앞에 굳이 여성, 남성이란 젠더를 앞세우진 않는다. 다만 현장에서 여성 스태프들이 좀 더 편안한 환경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는 한다.

오히려 남들이 내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내 영화가 싫다거나, 변영주가 싫다거나, 변영주가 좋다거나, 할 때 그런 틀 안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묘사들 속에 내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화차'를 비롯한 작품들을 볼 때 여성이라든지 계급 문제라든지 약자에 대한 감독 특유의 시선이 담겨있는데. 그런 시선 속에는 여성 세계관이 있고.

▶어린 시절에는 젠더를 앞세우고, 그런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보다는 가난에 더 관심이 많다. 여성영화제보단 독립영화제에 더 관심이 간다. 예를 들어 '화차'는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여자에 더 의미를 두진 않았다. 여자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게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차'는 가난과 여자, 두 개 모두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나. 여자보다 가난을 앞세우지도 않았고.

▶난 한 번도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화차'를 보고 절친한 촬영감독님이 "아, 맞다. 영주가 여성감독이었지"라고 하시더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화차'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역할은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사회성이 짙은 캐릭터 중 하나인데. 변영주 감독은 올해 한국영화 중 어떤 여성캐릭터가 좋았나.

▶김민희가 맡은 캐릭터는 물론이다. 20세기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여자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였을 것이다. 몸을 팔거나, 복수하거나, 자수성가하거나.

그런데 21세기에 김민희는 자기를 벗어던지기 위해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를 잡아먹는다.

내 영화 말고 다른 영화 속 캐릭터를 이야기하자면 '도둑들'의 김혜수가 맡은 역할. '도둑들'은 올해 최고의 영화인 것 같다. 영화가 온전히 관객이 보고 즐기는 오락적인 기능에 가장 충실하다. 1300만명이라는 당대 관객이 그 어떤 것을 제치고라도 오락적인 것에 열광할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물론 재미와 의미는 다르니깐.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영화라면 '두개의 문'을 꼽겠다.

아무튼 '도둑들'에서 김혜수는 우리나라에도 40대 여자가 나이를 숨기지 않고 섹시함을 과시했다. 관객이 욕망하게 만들지 않나.

-영화를 포함한 엔터산업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은데. 장점을 발휘하기도 유리한 부분이 있고. 투명하고 섬세한 부분이라든지.

▶일단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른 산업보다 대체로 젊다. 좀 더 현대적이랄까. 독립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충무로에서 "아니, 이 지지배가"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즉시 쫓겨날 것이다.

또 엔터산업이 여성에게 유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엔터산업은 트렌드를 해석하고 읽어내야 한다. 여자들이 아주 익숙한 부분이다. 영화도 사소한 디테일이 관객을 감동시킨다.

올해 여성 제작자들이 참여한 영화들을 보면 감정의 결이랄지, 디테일이 살아있지 않나.

-여성제작자는 많지만 여성감독은 적은데.

▶감독을 꿈꾸는 여성이라면 소통의 능력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판에서 감독으로서 만나는 파트너들이 대부분 남성이다. 타인, 즉 남성이 내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파악할 줄 알아야 하며, 또 내 생각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도대체 알아들어먹지를 못한다고 할 게 아니라 알아먹도록 해야 한다.

-차기작이 강풀의 웹툰 '조명가게'인데.

▶시놉시스를 쓰고 있다. 원작의 미덕을 가져오돼 공포와 감동을 담으려 한다. 웹툰을 흔히 콘티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웹툰을 영화화하려면 콘티가 아니라 문장으로 봐야할 것 같다. 그래서 첫 작업이 원작을 모두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머리속에 넣고 다시 영화로 생각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촬영에 들어가 내후년 개봉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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