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고발, 미투(#METOO) 운동은 세상을 바꾼 키워드다. 한국영화계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고은 시인으로 출발한 문화계의 미투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으로 폭발했고, 기어이 영화계의 추한 민낯까지 드러내놓고 말았다. 인기 배우에다 중견과 신예를 가리지 않는 감독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추락했다. '미투'는 영화계에 경종을 울린 2018년 상반기의 최대 이슈이자 키워드였다.
'천만요정'으로 불리며 수많은 메가히트작에서 활약한 배우 오달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성폭력 피해를 암시하는 댓글로 논란이 일자 "그간 논란은 사실 무근"이라며 공식 입장을 냈으나 잇단 실명 폭로에 결국 "전부 제 탓이고 저의 책임입니다"라고 고개를 숙이고 활동을 중단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배우이기에 그 여파는 상당했다. 상영 중이었던 '조선명탐정3'은 오달수가 없는 포스터를 바꿔 걸었다. 1편의 기록적 흥행 이후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던 '신과함께2'는 대체 배우를 구해 재촬영에 나서야 했다. 오달수가 주연을 맡아 편집 후 재촬영조차 불가능했던 다른 영화 '이웃사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콘트롤' 등은 무더기로 개봉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 채 표류 중인 상황이다.
배우들에 대한 미투 폭로는 줄줄이 이어졌다. 최일화는 성추행 의혹 자진 사과 이후 성폭행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오달수와 마찬가지로 '신과함께2'에서 출연 분량이 전부 편집됐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배우이자 연극 제작자,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했던 조재현 또한 잇단 성추행 폭로에 "모든 걸 내려놓겠다"며 자숙에 들어갔다.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은 배우 조민기는 경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충격을 더했다. 배우 한재영, 김태훈, 한명구 등에 대한 폭로와 사과도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들도 부지기수. 영화 '26년' '봄'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 자'를 연출한 조근현 감독은 신인 배우 오디션에서 성희롱을 했다는 논란 등에 휘말려 홍보 일정에서 제외된 뒤 침묵 중이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칭송받아 온 김기덕 감독 사건의 충격은 특히 컸다. 지난 3월 MBC 'PD수첩'은 김기덕 감독이 과거 여배우들을 대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을 저질렀으며, 이미 자숙 중이었던 조재현 또한 성폭력에 가담했다고 폭로해 세상을 경악케 했다. 여기에 더해 '김기덕 사단'으로 불린 전재홍 감독이 남성의 알몸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독립영화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연애담' 이현주 감독은 동성 성폭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자 사과하고 영화계를 떠났다. '꿈의 제인'으로 주목받은 조현훈 감독은 2013년 인디포럼 폐막식 뒤풀이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심지어 성희롱 및 성폭력에 적극 대처하겠다며 심기일전해 개막한 올해 인디포럼에서는 인디포럼 작가회의의 전 의장인 이송희일 감독이 남성 감독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와 자체 조사가 벌어졌다. 이뿐이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조용히 덮었던 전 고위간부의 프로그래머 성추행 사건이 뒤늦게 폭로돼 사과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줄줄이 사과의 뜻을 밝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무분별한 폭로로 사실상 아웃팅을 당한 이해영 감독이 성추행 피해 고발글은 사실무근이고 되려 협박을 당해왔다며 법적 대응에 나선 사건까지 있었다.
논란의 여지가 남은 사건도 여럿이다. 배우 곽도원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자 "100%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박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선 곽도원이 극단 후배이기도 한 이윤택 성폭력 고소인 4명으로부터 금품 요구 협박을 당했다며 소속사 임사라 대표가 SNS글을 먼저 올려 논란이 촉발됐다. 미투 피해자들에게 '꽃뱀' 프레임을 씌운 글은 큰 파문을 낳았고, 이윤택 고소인단 공동대책위원회는 임사라 대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임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외신으로부터 "한국에서 벌어진 미투 폭로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라는 평까지 나왔던 'PD수첩' 방송 이후 침묵을 지키던 김기덕 감독은 폭로를 고소로 맞받았다. 성폭력를 당했다고 주장한 여배우와 이를 보도한 MBC 'PD수첩'을 고소한 그는 지난 12일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부인했다. 추이를 지켜봐야 할 사건들이다.
미투 운동의 광풍 속에 발표된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는 그간 영화계 내 성폭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행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사 결과 피해를 경험했다는 영화인이 전체 응답자의 46.1%(여성 61.5%, 남성 17.2%)에 달했다. 그 44.1%가 문제라고 느꼈지만 참았다고 답했다. 그들은 넘어가는 것이 제일 낫다고 생각해서, 업계 내 평판이 나빠질까 혹은 업무에서 배제될까 두려워서 침묵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조사 결과가, 일련의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피해자의 침묵, 세상의 묵인 속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명목 아래 은밀한 폭력이 계속돼 왔다는 것. '미투'는 이같은 과거의 폭력, 왜곡된 질서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현재를 넘어서 변화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미투'가 2018의 상반기에 국한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이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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