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유해진다움의 힘 ②

[★리포트]

김현록 기자  |  2019.01.03 09:50
사진=영화 '말모이' 스틸컷

시작부터 유해진이었다. '말모이'(감독 엄유나)는 사전을 뜻하는 우리말이자, 우리 말과 글이 금지된 일제강점기에 최초의 한글 사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사전 만들기에 동참한 까막눈 아빠 판수. 각본과 연출을 겸한 엄유나 감독은 시작부터 유해진을 모델로 삼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중학생 아들 덕진과 꼬꼬마 딸내미 순희 남매를 홀로 키우는 주인공 판수는 감옥소를 밥 먹듯 들락거리는 그렇고 그런 사내다. 아들의 밀린 월사금이나 내 보겠다고 훔친 가방이 하필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의 것이었고, 그 인연으로 머쓱하게 조선어학회 사환이 된 그는 말은 뜻을 담는 글이라는 회원들과 함께 평생 처음 가나다라를 배우며 우리 말의 소중함에 눈뜬다. 평범하고도 선량한 이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유쾌하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표현하는데 유해진만한 이가 있을까. 공개된 '말모이'를 보면 왜 감독이 "유해진 선배님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고 털어놨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진=영화 '말모이' 스틸컷

유해진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말은 청산유수에 허세와 유머, 인간미를 두루 갖춘 판수를 제 몸처럼 그려냈다. 도둑질이나 일삼으며 허풍을 떠는 한심한 사내가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관객의 마음에 들 수 있는 건 유해진이란 배우의 친근하고 따뜻한 인간미 덕이 크다. 판수가 동료에 이어 동지로 성장해가는 자칫 전형적일 수 있는 전개마저도 다름아닌 유해진이기에 남다르게 다가온다. 사전을 다루는 영화답게 단어 하나하나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말모이'인지라 유해진 특유의 착착 감기는 말맛을 감상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단독 주연을 맡은 '럭키'(2016)로 700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은 대히트를 기록한 이래 유해진의 행보는 흥미진진하다. '공조'(2017), '택시운전사'(2017), '1987'(2017), '레슬러'(2018), '완벽한 타인'(2018)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쉼 없이 선보이면서도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았다. '말모이'는 '유해진다움'이 집대성된 듯하다. 선량한 존재감과 따뜻한 매력을, 끝끝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야 마는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사진=영화 '말모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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