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 감독 "'수리남' 실화가 더 허구 같은 이야기..이젠 영화 하고파" [★FULL인터뷰]

2022 영화 결산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22.12.28 10:29
'수리남'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사진제공=넷플릭스
2022년 한국영화계는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그만큼 성과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올해를 빛낸 영화인들을 스타뉴스가 만났습니다. 첫 주자는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이며, 두 번째 주자는 '안나'로 큰 사랑을 받은 수지입니다. 세 번째 주자는 '수리남'으로 넷플릭스 시리즈에 첫 도전한 윤종빈 감독입니다.

'수리남'은 윤종빈 감독에게 이례적인 작품이다. 영화만 찍던 그가 처음으로 시리즈물을, 그것도 OTT 플랫폼으로 선보였다. 그렇게 선보인 '수리남'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국영화계가 살아남으려는, 살아가려는 길 중 하나를 분명하게 보여준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수리남'은 당초 영화로 기획한 작품이었는데. 그러다가 시리즈물로 바뀌었고, 해외 촬영을 가려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진행을 못하다가 한국에서 대부분을 촬영하고 현지 촬영 소스를 CG로 입혔는데. 그야말로 팬데믹 기간 동안 급변한 한국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듯한 작품인데.

▶2014년말 즈음 '군도' 끝나고 '수리남'을 공동제작한 퍼펙트스톰 필름의 강명찬 대표가 이런 실화가 있다고 제안을 했었다. 당시는 못한다고 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한 지 얼마 안 지났기도 했고, 돈은 엄청 많이 들텐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제작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흥미로웠지만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공작' 하고 난 뒤 다시 강명찬 대표와 하정우에게 제안을 받았다. 그 때는 영화였다. 주위에서도 재밌으니 한 번 해보라고 권유를 하기도 했고, 처음 고사했을 때와는 달리 어떤 차별점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예산 문제가 있으니 시리즈로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 '수리남'은 감독으로서, 작가로서, 새로운 성과를 내보겠다는 마음 보다는 즐겁게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마음 먹고 대본을 쓰고 준비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고 원래 찍으려 했던 도미니카공화국이 입국 금지가 되면서 1년여 정도 시간이 흘렀다. 한국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영업을 안하고 있는 유명한 카페를 발견했다. 이곳을 수리해서 극 중 전요한 저택이라고 하면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섭외에 공을 들였고, 세트 작업에 매진했고, 촬영할 수 있는 각가지 아이디어를 동료 스태프들과 다양하게 논의했다.

-흔히 영화는 빼기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더하기의 예술이라고들 하는데. 영화는 2시간 남짓 짧은 시간에 서사를 완성해야 하니 곁가지를 어떻게 하면 잘 자르냐가 관건이고, 드라마는 주요 서사를 얼마나 풍성하게 덧붙이냐가 관건이라는 뜻인데. '수리남'을 드라마 대본으로 바꾸는 작업은 어땠나. 사실 몇 부작으로 만드느냐가 '수리남'이 티빙이 아닌 넷플릭스로 간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난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시리즈물 대본을 쓰는 게 더 쉬었다. 영화는 두 시간 안에 서사가 완성돼야 하기에 관객이 5분도 지루할 틈을 주면 안되게 써야 하지만 시리즈물은 좀 더 인물들의 관계성을 풍성하게 담을 수 있으니깐 좋았다. 주인공과 악당들의 전사, 서로의 관계성, 캐릭터를 어떻게 당위성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등등을 쓰다보면 어떻게 배치할 지를 고민하면 됐다.

다만 원래 8부작으로 썼는데 이야기가 자칫 늘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6부작으로 줄여야 할지 고민 중이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당시 티빙에선 워낙 예산이 많이 드니 12부작으로 제작해야 수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넷플릭스에서 6부작 결정을 해줘서 그렇게 하게 됐다.

-'수리남'은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지만 결국은 허구로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하기 위해서 어떤 지점을 가장 고민했나.

▶당시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과 두 번 정도 만났고, 녹취록도 있었다. 그 과정들을 통해서 이야기에 신뢰를 가졌다. 문제는 실화가 너무 극적이라 오히려 사실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민간인이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죽을 수도 있는데 이중첩자 역을 할 수 있을지, 그걸 극화로 만들면 사람들이 오히려 거짓이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우진이 국정원 언더커버로 전요한 곁에 있었다는 설정을 넣었다.

가장 고민해서 넣은 건 황정민이 연기한 전요한이 사이비 목사라는 설정이었다. 피지섬 사이비 종교 이야기 등 다양한 사이비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지 않았나. 사실 사이비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를 영화로 준비하기도 해서 관심이 있었다. '수리남'에서 주인공이 가장 극적으로 속으려면, 그가 신뢰하려면 그 상대가 어떤 직업이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종교인 행세를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뻗어나갔다.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 캐릭터는 이런 류의 이야기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인데. 그런 캐릭터이기에 '수리남'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도 당위성을 얻고.

▶실화 속 그 분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수리남' 마지막에서 국정원에서 준다던 돈도 안주고 단란주점을 운영하라고 제안했는데 다시 그렇게 살기는 싫다고 거절하지 않나. 그 분의 실제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정통적인 아버지상이기도 하다. 가족을 어떻게든 책임지려 하는. 그러니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강인구의 전사를 그렇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 사람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관객이 납득하고 따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황정민이 워낙 뜨거우니 하정우도 같이 뜨거우면 안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정우가 삐딱하면서도 관객들이 잘 따라오도록 워낙 잘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비롯해 과거 윤종빈 감독의 작품들에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애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수리남'에선 애정이 좀 더 크게 느껴지던데. 그건 윤종빈 감독이 이제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기도 한가.

▶일단 '수리남' 실존 인물이 내게 울림을 줬다. 실제 하정우 캐릭터와 비슷하다. 평생을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 책임지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물. 또한 십년 전의 나와 십년 뒤의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의식을 하고 대본을 쓴 건 아니지만 그런 달라짐이 담긴 게 아닐까 싶다. 옛날에는 인물들을 냉정하게 봤다면 요즘은 덜 그렇다.
'수리남'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수리남'에는 여러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이런 장르와 동떨어진 캐릭터 중 하나가 유연석이 연기한 데이빗 박이었는데. 재밌는 건 윤종빈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고, 제작하는 영화에는 데이빗 박 같은 인물이 하나씩은 꼭 등장하는데. '킹 받는 캐릭터'라고 할까. 그런데 '수리남'에는 데이빗 박이 등장했는데.

▶의도를 한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도 안해봤는데. 음. '수리남'은 여유가 있어서 킹 받는 캐릭터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데이빗은 20% 부족한 캐릭터다. 극에선 매커핀 역할을 하는 캐릭터기도 하고. 그럴싸 해 보이기도 하고, 안 그래보이기도 하는. 머리가 복잡해보이지만 그게 표도 나는. 그래서 관객이 헷갈리도록 만드는 그런 인물인데 유연석이 잘 그려냈다.

-'수리남'은 하정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면서 야구공으로 문을 닫는다.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이건 재밌는 이야기라고 전달하는 것 같은데. 또 하정우 내레이션은 이런 장르 내레이션과는 왜 그리 달랐나. 킹 받는 듯하지만 또 마지막까지 가면 매우 잘 어울리는데.

▶'라이프 오브 파이' 같은 그런 효과를 주고 싶은 것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난 이 실존인물이 대단한 게 선을 안 넘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인구와 전요한의 차이는 선을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라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넘을 수도 있었고, 그런 유혹도 있었다. 난 그 경계가 야구공이라고 생각했다. 야구공을 떳떳하게 아이와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내레이션은 하정우 본인이 그렇게 톤을 설정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장첸은 굳이 캐릭터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등장부터 딱 떨어지는데. 장첸 출연이 놀라운 건, 코로나19 전에 제안을 했는데도 계속 기다려줬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장첸의 엄청난 팬이기도 했고, 그 인물에는 처음부터 장체를 생각했다. '공작' 때 대만 프로모션을 갔었는데 그 때 만난 에이전트와 장첸이 친했다. 나도 그의 팬이었고, 그도 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수리남' 대본이 나오기 전부터 계속 소통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촬영이 계속 지연됐는데도 이런 상황을 계속 설명하고 소통했다. 감사하게도 기다려줬다. '수리남' 캐스팅 순서는 하정우, 황정민, 장첸 순이다. 장첸은 첫 등장부터 얼굴로 모든 걸 설명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매우 훌륭한 배우다. 기회만 된다면 또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수리남'에는 조우진의 17대 1 액션이나, 기관총 액션 같은 액션들도 인상적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한데 사실은 허가된 일정이 워낙 촉박하게 찍은 신들이었다. 조우진 장면은 대전에 있는 건물에서 하루만에 찍었고, 장첸 일행이 공장 앞에서 기관총을 쏘는 건 강원도에서 이틀 만에 찍었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하루만에 소화해야 할 촬영분량들이 있으니.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워낙 잘 해줬다.
'수리남'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박해수의 대사 "식사는 잡쉈어?"가 화제를 모았는데.

▶원래 대본에 있는 건데 박해수가 잘 살렸다. 왜 예전에는 인사를 식사는 하셨나,라고 많이 하지 않았나. 그리고 강프로에서, 성 뒤에 프로를 붙이는 건, 원래 검사를 부를 때 그렇게 많이 부르는 호칭이었다. 강 사장 등 다른 호칭을 다 생각해봤는데 그게 입에 가장 잘 붙고 정감이 가더라.

-황정민과 하정우, 두 대비되는 캐릭터들이 하나는 불 같고, 하나는 미꾸라지 같아서 기묘한 밸런스를 이뤘는데.

▶황정민은 완전 착해보이는 사람과 아주 나빠 보이는 사람을 워낙 잘 연기한다. 하정우도 이 인물에 대한 공부와 연기가 워낙 컸고. 난 이 작품에서 둘의 밸런스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장르인 만큼 캐릭터들이 너무 새로워도 안되고, 너무 익숙해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다 독특하고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은 재밌게 만들자가 목표였고 그게 이 밸런스를 만들게 된 것 같다.

-새로운 작품은 뭘 준비하는가. 제작을 한 '승부'는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로 했는데, 넷플릭스와도 계속 작품을 같이 하나.

▶제작하는 것들 중에는 웹툰과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있다. 내가 연출하고픈 것들은 SF도 생각 중인게 있긴 한데 결국은 사람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리즈물을 해보니 더욱 영화를 만들고 싶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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