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배는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고려거란전쟁'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거란군의 총사령관 소배압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소배압은 군용병술과 정치력을 모두 겸비한 전쟁 베테랑으로, 송나라를 고전 시킨 공포의 대상이자 거란의 주요 영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준배는 '고려거란전쟁' 방영 내내 '고려 영웅' 강감찬 역을 맡은 배우 최수종(62)과 팽팽하게 대립하며 극을 이끌었다. 비록 귀주대첩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20만 고려군에게 대패하지만, 그 과정에서 흡인력 있는 열연으로 존재감을 보여줬다.
김준배는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알을 깨고 날 나오게 한 작품"이라며 "'고려거란전쟁'을 하기 전까진 알 속의 어떤 세계에서 좁은 바운더리의 역할을 가지고 연기했다면, 이제 좀 세상에 나온 듯 날개를 편 듯한 느낌이 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김준배는 이어 "이제 나이도 먹었고, 좀 더 큰 세계로 나가서 여러 다양한 인물들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며 "이제 시작이다"고 기대에 부푼 속내를 털어놨다.
'고려거란전쟁'은 지난 10일 전국 가구 13.8%의 최고 시청률(닐슨 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충남 논산에 거주하는 김준배는 "많이들 알아봐 주시는데, 크게는 못 느낀다"며 "촌에 있으니까 사람들 만날 일이 별로 없다. 마트에 가면 누가 알아보고 '장군'이라 부르면서 갑자기 인사한다. 심히 당황스러운데 감사한 일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준배는 애초 '고려거란전쟁'에 캐스팅이 됐을 때 고려 장수 역을 제안받았다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전우성 감독님이 '절대 오랑캐는 안 시킨다. 무조건 고려 장수다'고 했거든요.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최수종 형님이 캐스팅되고 얼마 안 돼서 전화가 왔는데 '오랑캐를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같은 오랑캐라도 좀 다르다. 명재상이고 최고 사령관이기도 하고, 혈기 왕성한 장수가 아니라 노장이라 노회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존에 하던 악역이랑 많이 다를 겁니다'고 했죠. 그때부터 흥미진진해졌어요. 인물의 다른 이면이 많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랬고, 이렇게 큰 역할인 줄 몰랐어요."
김준배가 소배압을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일까. 김준배는 "어쨌든 거란은 문명국 행세를 하지만 본질은 야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고려와 대척점에서 싸울 수 있으니까, 뭔가 점잖은 풍모와 인격을 갖춘 듯하지만 숨겨 놓은 야수성이나 야만성 같은 게 한 번씩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느닷없이 숨겨놓은 비수처럼 팍팍 꽂히고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대사나 연기할 때 그게 실리도록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김준배는 몽골어 연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거란어는 긴 세월이 흘러 거의 사멸했기 때문에 몽골어로 대체한 것. 김준배는 몽골어 연기에 대해 "파열음이 많아 어색했다"며 "숨을 내뱉으면서 해야 하는데 흉내를 못 내겠더라. 안 되는 발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끝까지 몽골어로 하기엔 무리였다. 대본이 나오면 몽골어로 다시 바꿔 이야기한다는 것도 너무 지난한 일이었다. 그래서 감독님과 상의해서 전쟁 때나 큰 무리에서 어떤 지시를 하거나 이럴 때만 몽골어를 쓰고 기본적으론 한국말로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극 장르의 특성상 분장과 갑옷 착용 등에도 상당한 고충이 따른다. 깊게 팬 얼굴 흉터와 거란 특유의 변발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던 김준배는 "이렇게 분장을 하니까 정말 이민족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어떤 연기를 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분장팀이 진짜 노력했다. 매일 1시간 반씩 얼마나 꼼꼼하게 분장을 해주는지 내가 힘들어서 '좀 대충하면 안 되겠냐'고 몇 번 짜증을 내기도 했다"고 웃었다.
20kg 중량의 갑옷을 장착하고 연기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김준배는 "분장하고 갑옷까지 입고 있으면 숨이 잘 안 쉬어진다"며 "잠깐 쉬다가 졸면 죽을 것 같다. 가발, 수염 등 전부 다 꽁꽁 싸고 있으니까 여름에는 숨이 컥컥 막혔다"고 토로했다.
김준배는 적장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 최수종보다 7살 어리다. 최수종은 지난해 12월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 수상 소감을 전하며 "밖에서 '준배'라고 하면 어떻게 형에게 말을 함부로 하냐고 사람들이 욕하더라. 내 동생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당시 객석에 있던 김준배도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준배는 최수종의 당시 발언에 대해 "그건 형의 희망 사항"이라며 "누가 봐도 나보다 형인 거 다 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워낙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 보인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20대 때도 서른 넘은 형들에게 '형'이란 얘기도 들었다. 민증을 까줘야지 이제 납득하고 동생으로 생각하고 그랬다. 난 노안도 아닌데 이상하게 나이를 많게 본다"며 웃었다.
최근 들어 이호철, 현봉식, 오대환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악역을 맡아온 배우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김준배도 악역 연기에 대해 이전과 달라진 반응을 실감한다며 "옛날엔 망한 작품에선 무슨 연기를 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묻히기 마련이었는데, 요즘엔 유튜브 짤이 생기면서 내가 연기만 잘하면 작품과 상관없이 계속 사람들 눈에 띄게 된다. 환경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그냥 악역으로 보는 게 아니고 정말 존중해 준다는 걸 느낀다. 이제는 그냥 그 배역에 맞게 연기하면 보는 사람들도 인정해 주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김준배는 '고려거란전쟁'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더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소배압을 연기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그는 "너무 과분하게 사랑해 주셔서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스태프나 배우들이 그 사랑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고려 역사에 대해 앞으로 뒤 분들이 더 좋은 길을 가실 거라 믿고, 그 길을 응원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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