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사오는 건 쉽지만..." 지름길 마다한 심재학 단장 '육성' 뚝심, V12 불패신화 밑거름 됐다

김동윤 기자  |  2024.11.11 16:41
심재학 KIA 단장.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KIA 타이거즈만의 팜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

지난해 심재학(52) KIA 단장의 취임 일성은 허언이 아니었다. 지름길을 마다한 심 단장의 소신이 젊은 투수들의 급성장으로 이어지면서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올해 KIA는 정규시즌 1위 조기 확정에 한국시리즈 제패로 7년 만의 통합 우승이자 통산 12번째 정상에 올랐다. 유독 투수들의 부상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1선발로 평가받던 윌 크로우(30)가 5월 초 일찌감치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외국인 투수만 대체 외인 포함 5명을 써야 했다. 국내 투수들의 부상도 잇따랐다. 좌완 영건 이의리(22)와 윤영철(20)이 차례로 이탈하며 KIA는 선발 로테이션을 꾸리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난 겨울부터 차근차근 육성한 젊은 투수들이 빈 자리를 훌륭히 메웠다. 5선발 후보군으로 불리던 황동하(22)는 25경기 5승 7패 평균자책점 4.44, 103⅓이닝 81탈삼진, 김도현(24)은 35경기 4승 6패 평균자책점 4.92, 75이닝 59탈삼진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시즌을 완주했다.

마무리 정해영(23)의 부상과 지난해 필승조 최지민(21)의 부진으로 인한 불펜 누수 역시 같은 젊은 투수들이 메웠다. 그동안 미완의 대기로 여겨지던 1차 지명 출신 김기훈(24)과 유승철(26)은 8월 복귀 후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김기훈은 8월 이후 15경기 평균자책점 1.96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까지 들었고, 유승철은 9월 3경기 무실점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가장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것이 좌완 필승조 곽도규(20)다. 곽도규는 지난해 데뷔해 14경기 평균자책점 8.49로 부진했으나, 올해 71경기 4승 2패 16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3.56, 55⅔이닝 64탈삼진으로 KIA의 통합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4경기에 등판해 실점 없이 2승을 챙겼고, 2024 프리미어12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도 포함돼 태극마크를 달고 8일 대만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2024 WBSC 프리미어 12' 츨전을 앞두고 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최종 훈련을 가졌다. 곽도규가 피칭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이들의 성장 배경에는 심재학 단장으로 대표되는 KIA의 뚝심 있는 육성 시스템이 있었다. 심 단장은 지난해 5월 KIA로 부임하면서 "KBO 리그는 트레이드나 드래프트가 제한적이라 선수 육성이 중요하다. 내가 임기 안에 못하더라도 다음 단장도 이어갈 수 있도록 KIA만의 팜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외국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선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심 단장은 현장과 프런트 간의 적극적인 소통과 기준점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선수 한 명을 1군에 올리고 2군에 내리는 데에도 데이터상 근거와 적극적인 대화가 이뤄지길 원했다.

심 단장은 한국시리즈 우승 후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이제 어느 정도 선수가 육성군과 1군을 오갈 때 기준점이 생기고 있다. 데일리 리포트와 위클리 리포트를 써서 선수 한 명의 컨디션과 영상을 언제든지 코치진이 볼 수 있게 했다. 그 자료를 근거로 1군 코치들이 논의 후에 올리는 시스템이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배우고 선수 육성에 투자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KIA는 지난 겨울부터 어린 선수들을 해외로 보내 경험을 쌓게 했다. 가장 먼저 좌완 김기훈, 곽도규, 우완 홍원빈(24), 김현수(24), 내야수 박민(23) 등 5명이 캔버라 캐벌리로 파견돼 호주 프로야구 리그(ABL)에서 실전을 경험했다.

이 중 곽도규는 중도 귀국해 다시 정해영, 이의리, 황동하, 윤영철과 함께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 센터로 향했다. 정재훈, 이동걸 투수코치 등 지도자들도 함께 떠나 선진 시스템을 익히고 선수들은 개인별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배워 한국에서도 매진했다.

KIA 이범호 감독(왼쪽)과 심재학 단장.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시즌 중에도 해외 유학은 계속됐다. 지난 6월에는 김기훈, 유승철, 김현수(24), 조대현(19)이 미국 살럿에 위치한 트레드 애슬레틱으로 파견돼 자신에게 맞는 투구폼과 훈련법을 배워왔다.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심재학 단장은 "호주는 출장 이닝이 모자랐던 선수를 보낸다. 미국에 보내는 선수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다 말할 수 없지만, 메디컬 리포트가 가장 우선적이다. 가서 부상을 당하지 않을 선수를 고르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보내려 했다. 그리고 그 명단을 항상 현장 코치들과 상의했다"고 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성장한 이들이 돌아와 팀의 아쉬운 부분을 메워줬다. KIA 관계자들 역시 입을 모아 영건들이 아니었다면 통합 우승은 힘들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육성 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는 KIA 내부의 목소리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심 단장은 "(정)해영이가 평균 구속이 떨어질 무렵 미국에 다녀와서 다시 자신의 구속을 되찾았다. (김)기훈이도 본인이 잃어버렸던 잘할 때의 투구 메커니즘을 찾았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황)동하도 잘해줬다"며 "올해 (해외에) 다녀온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의 부상으로 힘들었을 때 많이 메워줬기에 (내부에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타당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아직 목표했던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기에 호랑이의 도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KIA는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심 단장은 "구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 매년 FA 시장에서 선수를 하나도 못 잡을 때도 생기는데 그럴 땐 육성 시스템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사실 FA를 사 오는 건 쉽다. 당장의 성적을 원한다면 외부에서 사 오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반면 육성 시스템은 나무가 자라듯 분명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난 KIA에 왔을 때부터 육성 시스템의 체계화를 우선 과제로 삼았고, 지금은 그 시스템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정착하는 단계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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