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볼 빠르면 다 불펜 써" 명 투수코치 직격, 빨리 기용하려다 '십년대계' 무너진다 [프리미어12]

타이베이(대만)=양정웅 기자  |  2024.11.20 06:01
대표팀 최일언 코치(왼쪽)가 김서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젊은 불펜투수들의 활약이 빛났던 이번 프리미어12 대회. 그러나 정작 한 경기를 이끌어야 할 '영 에이스'는 보이지 않는 사실에 지도자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십년대계(十年大計, 10년 뒤를 내다본 계획)'가 필요하다.

류중일(61)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예선에서 3승 2패로 3위를 기록, 2위까지만 받는 슈퍼 라운드 진출권을 받지 못했다.

대표팀은 13일 대만과 예선 1차전에서 3-6으로 패배했다. 선발 고영표(KT)가 2회 천천웨이에게 만루홈런, 천제시엔에게 2점 홈런을 맞아 2이닝 6실점으로 무너진 게 컸다. 4회 2점을 올린 후 7회 나승엽(롯데)의 대타 홈런이 터졌으나 따라잡지 못했다. 이후 14일 쿠바와 경기에서는 김도영(KIA)의 만루포 포함 2홈런 5타점 활약 속에 8-4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15일 일본과 중요한 일전에서 다시 한번 3-6으로 지고 말았다. 1-2로 뒤지던 4회 박동원(LG)의 솔로포와 5회 대타 윤동희(롯데)의 적시 2루타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믿었던 불펜이 경기 중후반 실점하며 흐름을 내줬다. 한국은 다음날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0-6으로 뒤지던 경기를 9-6 역전승으로 마무리해 실낱 같은 희망을 찾았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고, 결국 전 대회 준우승팀의 4강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불펜에서는 지킬 경기는 지켜줬다. 김서현(한화, 4경기 4이닝)과 클로저 박영현(KT, 3경기 3⅔이닝)이 무실점을 기록했고, 두 차례 구원승을 따낸 소형준(KT, 3⅔이닝 1실점)을 비롯해 유영찬(LG, 4이닝 1실점), 최지민(KIA, 3⅓이닝 1실점) 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쿠바전에서 0이닝 2피홈런 3실점으로 흔들렸던 김택연(두산)도 남은 2경기에서는 1⅓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국 선발 고영표가 13일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대만과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예선 1차전에서 2회 6실점 후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그러나 선발진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대만전에서 고영표가 2이닝 만에 내려간 후 모든 투수들이 5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쿠바전의 선발 곽빈(두산)도 4이닝(3피안타 5탈삼진 3볼넷 무실점)을 던지고 5회 투구 도중 물집이 잡혀 내려갔다. 일본전 선발 최승용(두산)은 1⅔이닝, 도미니카공화국전 선발 임찬규(LG)도 3이닝만 던졌다. 호주전에서 다시 등판한 고영표는 3⅔이닝을 단 1피안타로 막았으나 42구 만에 내려갔다. 예선 5경기에서 선발이 소화한 이닝은 14⅓이닝으로, 구원 이닝(28⅔이닝)의 정확히 절반이다.

결국 젊은 에이스 자원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2022년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안우진(키움)은 국가대표에 선발 자격이 사라진 데다 수술 후 병역의무를 수행 중이다. 여기에 이번 대회를 앞두고 문동주(한화)는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아 선발되지 않았고, 원태인(삼성)이나 손주영(LG) 등도 부상으로 빠지고 말았다. 또한 박영현이나 김택연, 김서현 등 저연차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투수들이 현재 불펜투수로 뛰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에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명 지도자로 정평이 난 최일언(63) 투수코치는 대회 종료 후 "지금 우리나라는 유망주들이 볼이 빠르면 빨리 쓰고 싶어서 중간투수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나"며 "그런 선수들이 선발투수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까지 올라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등판한 류현진(왼쪽)과 김광현. /AFPBBNews=뉴스1
최 코치는 "각 팀의 1, 2선발은 트리플A에서 오는 외국인 선수인데, 그러면 우리가 트리플A보다도 안 된다는 뜻이지 않나"고 소신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1선발은 국내선수가 차지한 상태에서 외국인 선수를 트리플A에서 데리고 와야 야구 레벨이 높아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코치는 "예전에는 각 팀 1선발인 류현진, 윤석민, 김광현이 외국인보다 잘 던졌다. 그런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제대회 운영이 상당히 힘들 것이다"고 경고했다.

"국제대회를 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좀 던진다는 투수들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는 안된다. 아시안 게임이니까 그 정도 던진다"고도 말한 최 코치는 "스윙을 제대로 하는 타자를 상대할 제구력이나 변화구가 부족하다"는 말도 이어갔다. 다음 WBC까지 15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그는 "일본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2009년 멤버를 보라. (일본과) 큰 차이가 없지 않나"며 발전을 촉구했다.

선수들에게 웨이트 트레이닝 등 꾸준한 훈련을 강조한 최 코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이번에 얘기를 좀 했다"며 "투수의 전성기는 30세니까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 계속 훈련하고 연구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대표팀 최일언 투수코치가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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