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예고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국내 최고 에이스 허수봉(27)과 외국인 으뜸 선수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즈(35·등록명 레오)가 시너지를 냈고 필립 블랑(65) 감독이 지도력을 발휘하자 현대캐피탈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팀이 됐다.
현대캐피탈은 22일 서울시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우리카드와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27, 25-23, 25-18, 25-21)로 이겼다.
승점 3을 보탠 현대캐피탈은 26승 4패, 승점 76으로 2위 인천 대한항공(승점 57)과 격차를 벌려 남은 정규리그 6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정규리그 1위를 조기 확정했다.
역대 최초 4연속 통합우승의 대한항공을 저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현대캐피탈은 통산 6번째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는데 2017~2018시즌 이후 7년만의 대업이다. 더불어 최단기 우승으로 의미를 더했다. 5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건 역사상 현대캐피탈이 최초다.
시즌 전부터 행운이 따랐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의 주인공은 1위를 차지한 대한항공이었다. 140개의 추첨공 중 5개만 들어있었음에도 0.36%의 기적을 일으키며 1순위 행운을 얻은 것.
그러나 대한항공은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등록명 요스바니)를 택했고 2순위 기회를 가진 현대캐피탈은 지체 없이 레오를 선택했다.


레오는 나이가 적지 않으나 그동안 국내 리그에서 엄청난 클래스를 자랑했던 외인이다. 신장 206㎝의 장신으로 여전히 강력한 스파이크를 자랑하는 레오는 V리그 7시즌 만에 처음으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고 훨훨 날았다. 득점 2위(584득점), 공격종합(성공률) 4위, 오픈 공격 1위(46.5%), 퀵오픈 2위(60.66%), 후위 공격 3위(57.06%), 서브 2위(세트당 0.38개)로 공격 대부분 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내 최고 선수 허수봉과 시너지가 레오를 더욱 빛나게 했다. 허수봉은 현대캐피탈의 공격을 짊어지고 있는 아웃사이드 히터인데 올 시즌 그 위력을 더 빛내고 있다. 30경기에서 벌써 500득점을 돌파(501점)했고 공격 성공률은 역대 최고인 54.5%를 기록 중이다. 공격 효율도 커리어 하이인 39.9%에 달한다.
국내 선수 중 적수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득점 4위, 공격종합 3위, 오픈 공격 5위(40.43%), 퀵오픈 3위(60.42%), 후위 공격 2위(61.31%), 서브 1위(세트당 0.389개)로 리그 최강 쌍포를 가동 중이다.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허수봉은 "지난 시즌까지 합도 잘 안 맞았고 자신감도 없었다"면서도 "올 시즌엔 KOVO컵 우승부터 모든 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마음가짐 덕분에 힘든 경기도 뒤집어서 이기고 그런 게 많이 나와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2년 차였던 7년 전 챔프전을 경험했던 허수봉은 이젠 팀의 간판 공격수로서 다시 우승을 정조준한다. 그는 "그때엔 형들 경기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고 한 번씩 들어가 득점하면 마냥 좋았다"며 "지금은 경기 흐름이나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좀 더 집중하고 있고 많은 동료들이 도와줘 빠르게 정규리그 1등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주장 완장을 차고도 개인 기량까지 끌어올렸다. 조력자들이 있어 가능했다. 허수봉은 "사실 처음엔 부담이 많이 됐다. 주변의 (최)민호 형이나 (문)성민이 형이 많이 도와줘 부담을 내려놓게 됐다"며 "주장을 하면서 후배들도 많아서 한 발 더 뛰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러면서 경기력도 잘 나온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꼽히는데 허수봉은 "말씀을 많이들 해주시는데 항상 말하지만 개인상 욕심은 없다"면서도 "우리 모두가 잘해서 우승을 한 것이고 1위를 했기에 우리 팀에서 나왔으면 좋겠다(웃음). 레오가 받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6연승을 달리며 일찌감치 우승을 예고했던 데엔 블랑 감독의 리더십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노 블랑 감독은 프랑스 대표팀, 일본 대표팀 지휘봉도 잡았을 만큼 지도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특히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는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일본 배구를 46년 만에 세계대회 메달로 이끌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최태웅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그는 레오와 허수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시즌 전 생긴 세터 문제를 트레이드 카드로 황승빈을 데려오며 메웠고 미들블로커 정태준을 성공적으로 육성하는 등 훌륭한 지도력을 뽐냈다. 아시아쿼터 신펑도 제 역할을 펼쳤고 리시브가 좋은 전광인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무엇보다 주축 선수의 부상이 없다는 게 가장 칭찬할 만한 점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부상으로 인해 100% 전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데 현대캐피탈은 주축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최단기간 우승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블랑 감독의 철저한 선수단 관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기 후 블랑 감독은 "가장 중요한 순간은 KOVO컵 우승 때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첫 성공이었고 선수단에도 긍정적 바람을 일으켰다"며 "훈련을 통해서 선수단에 맞는 훈련법을 정립한 것도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챔피언결정전은 4월 1일부터 시작된다. 경기 감각은 유지해야겠지만 주축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부여할 수 있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주어졌다. 현대캐피탈의 통합 우승 확률을 더 높이는 요소다.
블랑 감독은 "7명 고정적 선수들로 하다보니 주전 선수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고 다른 선수들도 몸을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면서도 "챔프전만 바라보고 준비하면 큰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우선순위가 승리보다는 팀 발전에 있을 것이다. 지도자로서 선수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휴식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허수봉은 "레오나 민호형, (황)승빈이형 등 나이도 있고 해서 많이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박)경민이는 체력 관리를 안 해도 될 것 같고 저도 한 경기 정도만 쉬면 될 것 같다"며 "상대는 경기를 하고 올라오기에 체력이 떨어지고 우리는 체력적으로는 좋을 것이다. 불안하고 안 되는 부분을 보완하면 좋은 경기력이 나올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KOVO컵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우승, 이젠 챔피언결정전만 남았다. 블랑 감독은 "동기부여는 감정과 같이 흘러가야 한다"며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 가질 게 아니라 선수 스스로가 발전하고 능숙해지는 걸 느끼면서 조직적으로 같이 움직이는 걸 느꼈을 때 동기부여와 발전이 일맥상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선수단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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