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 "'선덕'서 받은 상처,'시라노'로 풀었죠"(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0.09.08 16:26
이명근 기자 이명근 기자


엄태웅. '마왕'의 잔향이 강해서일까? 그는 종종 강한 남자를 연기했다. 그러나 사실 엄태웅은 한량이 더 어울린다. '가족의 탄생'에 흐트러진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린 건 엄태웅의 진가가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덕여왕'이 엄태웅을 힘들게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의 강인함 속에 감춰진 부드러움과 한량 기질은 김유신보다 비담 역에 차라리 더 어울렸다.

16일 개봉하는 '시라노:연애조작단'이 엄태웅에게 안성맞춤이었던 것도 같은 까닭이다. 엄태웅은 영화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다른 사람과 연결해줘야 하는 남자 역을 맡았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한량스러운, 그러면서도 아픔을 간직한 인물. 엄태웅에게 '시라노'는 오랜만에 제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언제 '시라노' 제의를 받았나.

▶'선덕여왕'을 찍던 중 제의를 받고 김현석 감독을 만났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무엇보다 캐릭터에 공감이 많이 갔다.


-'핸드폰' '차우' '선덕여왕'가지 그동안 강한 인물을 많이 연기했는데.

▶사실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많이 힘들었다. 경험해볼 수도 없고, 내게 없는 것 같은 인물을 끄집어내려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시라노'는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와 닮은 부분도 많고. 내가 부족한 것 때문에 헤어지게 되고.

-자신이 부족한 것 때문에 헤어진 게 닮았다고 했다. 공개연인과 헤어졌던 터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


▶아, 잘못 말했구나.(웃음) 글쎄, 연애라는 게 결국 자신이 힘들어서 포기하기 마련 아닐까. 결국 나나 상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는 문제일테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건 내가 미숙하기 때문이지 않나. 그래서 이번 영화에 공감가는 대사가 참 많았다. 믿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믿는다든지.

-영화를 보기 전까지 엄태웅의 멜로가 궁금할까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굉장히 공감이 가더라.

▶맞다. 감독님도 그랬다. 나한테서 한량 같은 느낌이 있는데 거기에서 미묘한 재미가 있다고. 그리고 우리 영화에는 최다니엘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으니깐.(웃음)

-오랜만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던데.

▶편하고 즐거웠다. 감독과 소통하는 기쁨, 일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것 같다. 발산하는 연기를 하면서 '척' 하는 것 같았다. '선덕여왕'을 하면서도 그래서 힘들었다. 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랬던 게 약이 된 것 같다. 슬럼프였지만 그 시기를 거치고 '시라노'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질투도 많았나.

▶질투나 속좁음이 더하면 더하지 않았겠나.(웃음) 담담한 척 하다보니 정말 담담해진 거지. 그러다 '시라노'를 하니 일을 하면서 힘이 난다고 할까, 일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싶었다. 독을 독으로 푼 것 같았다.

-그동안 기싸움을 벌어야 했을 작품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그런 점에서도 자유로웠을 것 같은데.

▶기싸움에 지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제일 좋았던 게 그동안에는 작품에 쏙 들어가지 못하고 걸쳐 있는 것 같았다. 척하는 것 같다는 게 그런 의미였고. 이번에는 거의 매일같이 술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그러다보니 감독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 알게 됐다. 감독 역시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끌어냈고.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동안 멜로 연기를 해도 상대와 소문 한 번 안났다. 거리가 느껴졌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사뭇 어울린다. 이민정과 박신혜한테 결혼하잔 소리도 많이 할 만큼 편했단 소린데.

▶왜요? 알게 모르게(웃음). 농담이고. 무슨 말인 줄 알 것 같다. 누나들이 있어서 편하게 여자들을 대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실없는 소리나 하면서 경계를 푸는 편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나에게 적합했던 것 같다.

이명근 기자 이명근 기자


-영화처럼 인연을 믿나.

▶첫 사랑을 잡기 위해 그녀에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정부에 있는 연극학과를 갔다. 그랬는데 그녀는 떠났다. 뭘 할까 방황했는데 지금 일을 함께 하는 매니저를 만났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게 됐다. 그녀를 잡기 위해 그 학교를 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간 것 같다. 그게 인연인 것 같다.

편집이 되긴 했지만 영화에 새옹지마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런데 입에 안 붙어서 전화위복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도 나도 새옹지마인 것 같다.

-강력하게 발산하는 연기, 그리고 그런 배우들에 대한 동경이 한 때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어깨에 힘이 풀려 있던데.

▶처음 일을 할 때 설경구 선배와 같이 했다. 한 때 고민 많이 했다. 원래 내게 그런 게 없는 건지, 막혀 있어서 안나오는 건지. 그러다가 그런 부담보단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 포기가 아니라 인정이다. 언젠가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 같다.

-영화처럼 뭔가 얻기 위해선 뭔가를 포기해야 하나.

▶그렇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려 해도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게 아깝다. 예전에는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포기한다는 게 아깝다.

-첫 키스신을 기억하나.

▶물론. 뮤직비디오에서 했던 키스신, 단막극에서 했고, '부활'에서도 했고. 그런 걸 잘 기억하는 편이다. 첫 사랑을 만났을 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시라노'에서처럼 그날의 바람 냄새도 기억한다. 면목동에서 만났는데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었다.

-작품 바람을 많이 타는 것 같은데.

▶사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까지 할 수 있다는 건 운이 좋았단 뜻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뜻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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