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서늘한 슬픔의 낯선 동화

정상흔 기자  |  2005.03.22 11:45

지난해 무명의 십대 일본소년 야기라 유야에게 칸영화제 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영화 ‘아무도 모른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된 이 영화는 홀로 네 남매를 키우던 젊은 엄마가 갑자기 사라진 뒤 남겨진 아이들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이사 온 싱글맘 게이코(유)와 12살짜리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집주인 몰래 동생 셋을 짐 속에 숨겨 들여온 뒤 아이들에게 크게 떠들지 말고 집안에서만 지내라고 단단히 일러 준다.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지내던 이 가족은 어느 날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쪽지와 돈을 아키라에게 남기고 모친이 떠나 버리면서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다.

영화는 엄마가 떠나버린 가을, 엄마가 가족을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겨울, 네 남매가 더욱 힘차게 살아가는 봄 순으로 계절별 흐름대로 내용이 전개되다가 결국 커다란 슬픔을 경험하게 되는 여름에 종결된다.

1988년의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네 남매 사건’을 소재로 차용해 이 영화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부모 없는 아이들의 불우한 삶을 참담하고 처연하게 담아내지 않았다는 데에 이 영화의 변별점이 있다.

영화는 고난과 절망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벌어진 상황을 천진무구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전략을 취했다.

부친이 각기 다른 이들 네 남매는 원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부친처럼 모친의 부재 또한 금세 망각하고 자신들만의 또래 공동체 속에서 금기가 무너지는 소소한 쾌감에 젖어 있다.

모친을 향한 기다림은 애절한 눈물보다 연체된 세금 고지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된다. 엄마를 고대하는 눈물은 찾아보기 어렵고 남매들 사이의 웃음꽃이 가득한 편이지만 알고보면 영화의 시선은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쌀쌀하다.

도쿄 근교의 열두 평 아파트라는 소우주 속에서 전기와 물이 끊기는 와중에도 머리가 자라고 몸이 성장해가는 아무도 모르는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내면에 대해 어른의 오만함을 감추고 차갑게 집중할 뿐이다.

감독은 2002년 가을부터 2003년 여름까지 약 1년간 순차적으로 어린 배우들의 성장에 영화진행을 맞추는 인내심을 보였고 촬영과 동시에 편집을 병행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어른들이 엄격히 배제된 세상이 구현돼 아이들 나름의 언어와 관찰과 논리가 화면을 다스리면서 서늘한 슬픔을 선사한다.


“영화제 내내 수많은 영화들을 보았지만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야기라 유야의 표정뿐이었다”는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일성대로 히어로 야기라 유야는 대사보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영화 한 편을 훌륭하게 이끌어가는 범상치 않은 저력을 보였다.

“연기 같은 것은 잘 모르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다"는 그의 아이다운 수상소감은 백지 같은 이 배우의 놀라운 잠재력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 명 더. ‘아무도 모른다’에서 남자를 잘 따르는 모친 게이코 역의 유에게 주의를 기울여 보고 싶다.

뮤지션 출신으로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그녀는 아이들보다 새 남자를 택하는 첫 배역을 맡았지만 원망보다는 동정을 얻어낼 정도로 공감도가 높았다.

12살 아들에게 새로운 사랑이 생겼음을 털어놓는 이 가공할 만한 문제적인 모친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호소하는 연기파워로 관객의 도덕적 판단을 주저하게 하는 데에 확실히 일조했다.

유는 결국 ‘긍정적인 느낌의 무책임’을 원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백분 흡족하게 했을 뿐더러 야기라 유아의 쏘는 듯한 눈빛과는 차별화되면서 관객을 한동안 먹먹한 기운에 휩싸이게 하는 괴이한 아우라를 형성해 버렸다. 4월 1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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