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왕국인가.”
질문은 이렇게 시작되어야만 한다.
피터 버그 감독의 '킹덤'은 왕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 시작한다. 마치 미국과 중동간의 오래된 연극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듯 말이다.
시작부터 그렇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우연히 석유가 발견된다. 냉전 시대를 지나오면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최대 산유국으로 그리고 미국은 최대 석유 소비국으로 올라선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셈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으로 흐르는 로비자금을 자신에게 주면, 자주국방을 실현해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마 사우디 아라비아는 동족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닌 미국과의 동맹을 선택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공공의 적이 되었고 누구나 예상했지만 실현될 거라고 믿지 못했던 9ㆍ11 테러가 발생한다.
이 짤막한 소개는 '킹덤'이 보여주게 될 흥미진진한 음모론을 보여주는 듯 싶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시작 장면부터 그렇다.
한가롭게 야구경기를 하고 있는 미국 민간인 거주캠프에 누군가 침입한다. 대낮인데도 그들은 알라신을 외치며 폭탄테러를 자행하고 이어 2차 테러까지 감행한다. 이 와중에 FBI 요원이 한 명 살해되고, 플러리(제이미 폭스)를 비롯한 FBI 요원들은 동료의 죽음에 아연실색해진다.
그들은 피해자임을 주장하지만 영화에서 내내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권력을 지닌 미국이다. 고작 FBI 요원에 불과한 그들은 대규모 로비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입국을 성사시킨다. 왕자에게 중요한 손님으로 환대받는 것은 물론이고 철통 수비진에 휩싸여 보호받는다. 게다가 그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사력을 미개한 주먹구구로 한탄하며 과학수사를 실현한다. 단 세 사람의 미국인이 수백명의 아라비아 현지인보다 낫다는 설정이다.
문제는 이 닳고 닳은 설정이 아니라 중동과 미국 간의 문제를 미개하고 폭력적인 중동인과 선의의 피해자인 미국의 구도로 반복하는 데에 있다.
9ㆍ11테러 이후 많은 미국의 블록버스터들은 테러의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그려내고 있다. 그것도 너무 많이.
'킹덤'은 오히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견고한 "왕국"인가를 보여주고 만다. 자존심이 상한 “왕국”의 람보식 복수전은 영화라는 살풀이를 통해 계속되지만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트라우마가 된 상처에 덧을 내듯이 “킹덤”은 상처를 덧내 거짓 치유를 선사한다.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 주윤발처럼 수백발의 총성 앞에서도 건재한 그들은 중동으로 간 람보 군단이다. 납치당한 요원은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도 1대 17로 적군을 초토화시킨다. 종이인형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은 위험해 보인다기 보다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장면들을 보며 즐거워할 관객은 누구란 말인가? 유사 오사마 빈 라덴을 검거해 그의 심장에 총탄을 박는 장면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관객은 누구일까? 오래된 왕국의 명예복원 시나리오, 거기에는 진정한 비밀도 음모도 없다. 다만 외설적 위안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