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이 영화, 봤어야 했다

윤여수 기자  |  2007.12.11 10:52
'기담', 'M', '우아한 세계', '오래된 정원', '좋지 아니한가'(윗줄 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또 한 해를 보낸다.

그 보냄 속에 남는 후회와 아쉬움. 그러나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저 다가올 또 다른 시간을 기다리며 새로운 다짐을 할 뿐이다. 지나간 것을 돌아본들 다시 되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극장 상영이 끝난 저 몇 십년 전의 것이라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비디오와 DVD, 인터넷 등 신통한 현대 기술 덕분인데 올해라고 다를 리 없다. 또 각종 이벤트를 통해 극장에서 지나간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참 좋다' 하는 여운을 남겨주었지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올해에도 꽤 있는 듯하다. 아쉽다. 그래서 여기, 그 몇 편의 영화를 손꼽아 진열해본다.

당장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는 있어도 애써 한 번쯤은 봤어야 할 한국영화들. 그랬다면 깊은 여운으로 잠시라도 더 행복하고 즐거웠을 터이다.

# 시대의 아픈 사랑:오래된 정원

1980년 광주의 아픔에서 빠져나온 한 남자가 한적한 시골 마을로 스며들고 그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짧고 이별은 길었다. 하지만 그 이별이 남긴 진한 사랑의 추억과 가슴 아픈 시대의 그림자는 여자의 평생을 규정하고 사랑은 늘 그렇게 아픔만을 남기도 떠난다.

황석영이 쓴 동명의 소설을 임상수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영화는 관객의 눈에 들지 못했다. 지진희와 염정아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시대의 아픔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사연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지만 바로 그 '시대'의 무게감에 짓눌렸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격렬한 투쟁의 시대를 이처럼 사랑의 이야기로 그려낸 영화는 없었다. 사랑을 통해 한 시대를 이야기함으로써 관객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 가족, 그 또 다른 이름:좋지 아니한가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는 가족 혹은 가족의 문제를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이란 측면에서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다른 지점에 놓인다. 이미 '가족의 탄생'을 통해 또 다른 이름의 가족 이야기를 전한 김태용 감독처럼 정윤철 감독은 '좋지 아니한가'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물었다.

김혜수, 천호진, 유아인, 문희경, 황보라 등으로 구성된 한 가족. 어느 한 구석 닮지 않은 이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일상을 구석구석 파고들지 않는, 그저 '덤덤한' 일상을 살아간다.

이해와 희생을 넘어 '일생의 침해'가 다반사인 우리네 가족의 이야기를 이처럼 '덤덤하게' 바라보면서도 명쾌하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도 없었다. 관객은 그 신선하고 참신한 영화 한 편을 놓친 꼴이 됐다.

#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보! 아빠의 인생:우아한 세계

깡패 아빠. 나이 마흔에 하나 뿐인 딸과 아내를 먹여살리기 위해 '연장'을 들어야 하는 조폭 아빠에게도 일상의 절망과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은 있었다.

오늘도 '생존의 일터'로 나서는 세상의 무수한 가장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배우 송강호 특유의 연기로 되살아나며 이 시대 가장들의 눈물과 공감을 자아냈다. '연애의 기술'로 그 재기를 인정받은 한재림 감독은 가장의 씁쓸한 뒷모습에 대해 그저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언했다.

'기러기 아빠'의 일상을 살아가던 송강호가 가족을 거둬먹이려 나선 뒤 자신의 그 같은 노력과는 무관한 듯 살아가는 아내와 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뭉클하고도 씁쓸하다.

# 관객의 힘은 무서웠다:기담

지난 여름, 관객과 네티즌은 이상한 캠페인을 목격했다. 공포영화 '기담'을 보게 해달라는 네티즌 청원서명운동이 그것이다.

당시 이들은 '기담'이 와이드 릴리즈 배급 방식의 상업적 환경 안에서 '좋은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서 '기담'의 상영관 유지 등을 통한 '관람권 확보'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기담'은 이전의 공포영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포감을 '조성'하며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40년대 경성의 한 병원을 배경으로 기묘하고도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공포의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처절한 물음을 대신했다. '정가형제' 정범식, 정식 감독이라는 신인을 발굴해내며 '기담'은 '장르영화의 발견'으로도 불렸다.

# 스타일과 이미지의 기억:M

명장 이명세 감독이 돌아왔지만 관객은 싸늘했다. 청춘의 아이콘 강동원의 힘도 이번에는 미약했다. 이제야 관객에게 영화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오락물이 되어 있었지만 'M'은 그런 환경을 깨닫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이명세 감독의 그 우직함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작들에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더 깊어진 스타일은 영화의 형식과 은유, 상징의 표현에 관한 정의를 새롭게 했다.

첫사랑에 관한 기억과 망각, 추억에 얽힌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형식에 얹혀졌고 이명세 감독은 한 남자와 여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의 기억을 현란한 이미지로서 구현했다. 이 같은 씨줄과 날줄의 교묘하고도 독특한 얽힘은 영화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하고 그 때에야 'M'은 올해 한국영화의 걸작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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