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언론이 펜으로 날 죽였다"(기자회견 전문)

윤여수 기자  |  2008.01.25 12:16


'괴담'에 휘말린 가수 나훈아가 언론 보도에 강하게 질타했다. 나훈아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이)이래선 안된다"고 말하며 각종 의혹을 추측보도한 언론의 보도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 내용 전문.

오늘 날씨가 제 속마음 만큼 차고 시다. 오늘 시간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합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해명을 한다고 얘기하는데 해명이라는 뜻은 어떤 사건을 문제가 됐을 때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밝고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해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한게 없기 때문에 해명을 할게 없다는 겁니다. 이 해명은 확실치 않은 얘기를 제대로 실제 근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오보를 한 기자나 언론에서 해명을 해야할 겁니다.

저는 절대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지 않으려고 했냐면 얘기를 하면서 말씀드리겠다.

저는 40년을 노래를 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기자 여러분, 또 카메라 기자여러분. 만약에 40살이 되지 않은 분들은 내가 노래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40살이 조금 넘으신 분들은 아장아장 걸음을 시작할 때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40년을 했기 때문엥 예우를 하란 말이 아닙니다. 대우하는 정서가 없기에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를 다룰 때는 적어도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대중들에게 알려야 함에도 진실은 어디로 가있고 엉뚱한 얘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뭐하러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가서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죽기까지 하는 기자가 있겠습니다. 저는 오늘 아무것도 준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들어와서 아무와도 어울려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 하고 싶은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얘기 중에 두서가 없거나 말이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 달라. 끝까지 질문하지 마시고, 오늘은 제가 얘기할 차례입니다. 끝까지 들으셔야할 책임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나는 소문도 듣기만 했다. 말이 안되는 소리지. 나는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쓴 것 뿐야라고 하는 방조자다. 나는 한줄도 안 썼어 방관자입니다. 적어도 말도 안되는 억측을 써 내려갈 때는 대한민국 언론 중 한곳이라도 이것은 아니다, 이거 우리 신중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나왔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안나오려고 했다.

유독 이 연예계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 우선 처음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나하나 조목 조목 따지며 얘기하겠다.

얘기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에게 얘기할 내용의 아셔야 할 부분이 잇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릴게 2가지 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중간 토막만 잘라 얘기하면 어떤 결론이 나오냐면 누가 길가에 두들겨 맞아서 피흘리며 쓰러져 있다. 이걸 본 사람이 참 안됐다. 누가 저걸 때렸어. 했는데 알고보니 두들겨 맞은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폭행하고 어머니를 때리고 이 세상에서 못된 짓은 다하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쓰러져 잇으면 잘 맞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설명을 두가지만 하겠다.

하나는 우리 공연을 할 때는 매일 공연하니까 오늘 하자라고 해서는 안된다. 길게는 1년, 짧게는 4,5개월 전에 마쳐야 공연이 가능하다. 다시 풀어서 말씀드리면 공연 장소를 계약을 하는데 한달, 두달 전에는 예약이 안된다. 그래서 모든 게 1년전, 5,6개월 전에 준비가 돼야만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저는 40년을 노래했다. 제 입으로 얘기하기 그렇지만 제가 공연을 할 때 표가 없다. 표를 구하려 해도 표를 구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죠. 이렇게 40년 오기까지는 저 나름대로 느끼는 꼭 이렇게 해야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박수쳐줄수 있구나 생각하는 것이 제 개인 생각이다.

적어도 40년을 한 저로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공연을 할수 있으려면, 성공적으로 하려면 첫째 약속을 잘지켜야 한다. 이것은 언제 만나자 그런 약속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기대를 하고 제 공연을 구경왔을 때 그 기대는 제가 만들기 때문에 이는 오시는 분들과 무언의 약속. 그래서 절대 온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공연하는 것이 약속이다. 물론 공연을 부풀리다든지 마음대로 스케줄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은 안된다.

두 번째 진실해야 한다. 진실은 우리처럼 긴 세월을 노래를 하면 노래를 쉽게 하는 법을 알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 느끼실 줄 모르겠지만, 나중에 세월이 가면 박자를 늘렸다 줄였다.. 한다. 이걸 오시는 분들이 다 안다. 그래서 무대에서 거짓말 하지 말고 노래해야 한다. 무대 전체를 거짓없이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3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약속과 진실은 할 수 있는거다. 하자고 마음먹으면. 근데 이 3번째는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꿈이다. 저희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무대 공연할 때 몇 억씩 하는 조명이 수십개 달려있다. 그리고 너나할 것 없이 예쁜 옷을 입고 나간다. 그리고 막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그 무대를 움직여야 한다. 2시간 이상을 혼자 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이 꿈이 없으면 힘들다.

그런데 저는 유독히 연출, 무대감독, 출연 3가지 다 한다. 그래서 더 꿈이 더 필요한다. 꿈을 팔자면 내가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매년 공연을 똑같이 해본적이 없다. 어떻게 하든 꼭 바꾼다. 그렇게 바꾸려면 정말 아이디어도 나와야 하고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란 정도의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면 꿈이 필요하다. 제가 꿈을 팔려면 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꿈 얘기는 중요한 얘기다. 지금까지 노래를 해오면서 한 5,6년 전부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 꿈.. 힘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꿈이 조금씩 고갈돼 간다는 느낌을 누구한테 얘기 못하고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제 측근에 있는 스태프들은 제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다.

저는 4년 전 맨 마지막 12월31일 공연 끝나는 계단에서 갑자기 겁이 덜컥났다. 내년에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공연을 또 할 수 있지라는 두려움도 있었고, 그래서 저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우리 스태프, 우리 식구들전부 앉아서 파티를 한다. 언제나 공연이 끝나면.

마지막 날은 좀 크게 한다. 그때 제가 얘기했다. 오늘 계단을 내려오면서 겁이 났다. 우리 겸손하자. 왜 이 얘기를 하냐면 가는데[마다 하는데 마다 갑자기 관객도 젊어져서 관객의 박수나 이게 꼭 젊은 가수들이 하는 것처럼 되다보니 우리 스태프들이 좀 경거망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겸손하자는 말을 수십번했다. 물론 책임자한테도 한 발자국만 다름 사람보다 뒤에 서자란 말 많이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우리 스태프들이 공연 끝나고 1,2월에는 스태프 장들을 외국에 보냈습니다. 가서 제가 하는 말이 뭔지 느끼고, 뭔가 건져오라고 보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 스태프들도 꿈을 갖고 잇어야 한 마음이 된다는 얘기다.

지금 이 설명은 무척 중요하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세종문화회관을 별안간 취소하고 , 내지는 펑크를 내고 돈까지 물어줘가며 공연을 취소했다. 세종문화회관이 문제가 있으면 돌연취소시키면 세종문화회관 뿐 아니고 전국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왜 하필 세종문화회관만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다. 왜냐? 작년초의 일이다.

1년전. 제작년에 다음에 공연을 잡지 말라고 미리 얘기 햇기 때문에 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근데 공연기획사 측에서 세종문화회관을 잡아놓고 혹시나... 왜냐면 세종문화회관 대관은 잡기도 어렵고 뭔가 어렵다. 이 얘기를 따로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나중에 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까다롭다보니까 혹시나 하며 마음변해서 하지 않을까 대관을 했던 것 같다.

근데 나는 그 상황을 몰랐다. 세종문화회관 하나를 몰랐다. 그래요. 있었던 얘기를 그대로 하는거다. 그런데 그걸 쓴 기자가 한발짝만 움직이면 이 사실을 아는 거다.

얘기가 나온김에 다른 쪽으로 몰로가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기획사도 만나지 않고, 그때 기획사만 만났으면 이 문제는 제대로 밝혀지는 거다. 근데 지가 하고 싶은대로 하니까. 발품은 팔지도 않고.. 그러더니 회사를 문을 닫았다, 회사 아라기획.. 제가 뭔가 못할 때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앉아있는 회사다. 내가 쉴 때는 같이 쉬는 회사다. 너무 당연한 것을 .. 그러더니 잠적했다. 잠행했다. 행적이 묘연하다, 라는 단어를 써가며 여기저기서 (그랬다) ..잠적했다니?

잠적했다는 소리가 나온 그날 신문과 방송에 이 말이 나오는 날 저는 우리 스태프들과 휴가를 가고 있었다.

여기 아까 오늘 오랜만에 봤기 때문에 휴가에 갔던 사람 있어요, 없어요. 소리 크게 질러 보세요. 있습니다. 거기서 TV를 켰더니 나훈아 잠적했다 하니까 우리 스태프들이 왜 저럽니까, 라고 하더라. 딱 한마디 했다. 놔누라고. 늘 그랬던 것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를 써서 네티즌을 들끓게 만들었다.

아까 제가 꿈 얘기를 했다. 휴가를 다녀오고 돌아와서 저는 늘 해마다 공연이 끝나고 1,2월에는 꿈을 가슴에 채우러 외국가서 공연도 보고 좋은 풍경도 보고 가슴 찡한 것도 보면서 가슴에 꿈을 담는다. 가슴이 마르면 안된다. 꿈이 가득할 때 좋은 가삿말도 나오고, 좋은 곡도 나온다. 제가 언제부턴가 이걸 알게 됐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게 꿈이다.

그렇게 해왔는데 이렇게 왜 작년에 쉬게 됐느냐. 이거는 아니다, 무슨 획기적으로 변화가 있어야지, 이렇게 해서 만약 관객 속에서 조금 지겨워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이미 안되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러기 전에.. 내가 다시 획기적으로 바꿔서 공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한국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보기로 햇다. 그래서 전라도 남원에서 뱀사골에서 경사도까지 걸어가는 거다. 산속을 산속을. 사람이 오면 없는 쪽으로 해서. 물론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상태지만, 주의가 남다른 분은 나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겨울도 만나고.. 제일 힘들었던게 식사해결이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들어가기 어려우니까. 아무도 없는 식당에 쓱 들어가서 .. 그러다보니 밥을 굶을 때도 많았다. 들어가서 할머니가 이봐요. 더 드시요, 할 때 가슴에 꿈이 들어오더라. 강원도 춘척 .. 옛길이라고 하시냐. 선비들이 한양 시험보러갈 때. 내가 그 길로 서울 근처까지 걸어왔다. 죽는 줄 알았다. 걷지도 않던 사람이..

그러는 동안에 신문에 뭐라고 났나면 남의 아내 뺐어가고 가정파괴범이고 실제는 물론이고 남의 마누라를 탐했다든지 가정을 파괴하는 마음이 눈꼽만큼이 있었다면 여러분 집에 키우는 개새끼다. 혹시 집에 개 없는 사람은 옆집 개. 대한민국에는 간통죄가 잇는 법치국가다. 그렇다면 벌써 법적으로 문제가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 연예게 생활하며 많이 당했다.

자, 나는 말을 안했는데 걸어 서울을 가면서. 그런데 옆에서는 시끄럽게 떠든다. 여러분이 잘 아실거다. 그래, 멋대로 해. 코는 코대로 간다는 경상도 말이 있다. 진실은 시간이 걸리지만 꼭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난 믿는다. 자, 이제 이게 스포츠신문이고, 월간지고 월간지는 한번 나가면 한달 팔린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고 나 아는 친척도 무슨일이야.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이지만 나는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

할 수 없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고 싶었던, 근데 포기를 하고 외국을 나갔다. 학교를 들어갔다. 학교가 대학교인데 정규 대학생이 아니고 그 학교 스페셜 프로그램이 있었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강의를 들었다. 물론 간단한 테스트는 거쳐야 한다. 숙제하면서 밤새면서 우리 나라 말이 아니니까 저한테는 쉽지가 않다. 밤새면서 숙제하면서 꿈을 담는 거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또 하고 싶었던 일이다. 프리젠테이션이 있으면 3일밤 새면서 준비했다. 저보다 한참 어린 교수한테 저한테 별명을 지어줬다. 얼리버드. 날마다 제가 먼저 학교에 와 있다. 그런데 결국 한국 학생들이 몇 사람이 다니다보니까 저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이젠 제 행동반경이 어려워졌다.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는 아무 상관없던 것이 내가 누구라고 얘기하면 .. 인제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죠. 결국은 힘들었다. 그래서 한 1년 다니고 싶었는데 못다니고 들어와서 ..

들어왔더니 이제는 나를 죽이는 거다.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거다. 부산 모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몹쓸병에 걸려서 죽을 병에 걸렸다고 ... 아시는지요. 멀쩡한 사람을. 부산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작년 시작부터. 그런데 부산 모 병원에 입원해서..? 휴~

그래요. 부산까지 잠깐 갔다고 합시다. 제가 단언컨대 공공장소에 3분 이상 서 있다는 게 제가 거기 온게 소문 안난다는게 여러분들은 .. 제가 부산 병원에 입원했었다면 어떤 경우든 저를 본 사람이 있을테고, 다 안다. 저를. 꾼들이기 때문에 벌써 기자들이 써나가는 글귀를 보고 아, 이거 냄새나는구나. 기사가 문제가 있다, 하는 것도 읽어보면 감이 날 것이다.

그래요. 여러분이 펜으로 나를 죽이는 거다. 근데 옆에서들 이런저런 얘기할 때 또 멋대로 하다니. 말할 가치도 없고, 대꾸할 이유도 못느끼니까 이제 죽은 사람이 눈 뜨고 다니는 내가 이상해졌다.

여러분, 다 읽고나서 보면 별거 아닌데 제목이 ‘나훈아 죽을 병에 걸렸다’ '입원했다'.. 등 성질 급한 사람은 제목만 읽는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죽었다고 한다,라고 이런 식으로 말이 퍼진다.

그래요, 죽었습니다. 그래서 또 나온 거다. 왜냐하면 자꾸 찾아오지요. 결국 여러분이 나를 못 찾은 이유는 40년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한 것도 있겠고, 나름대로 한것도 있다. 그런데 나를 탁구대에 올련호고 핑퐁을 치고, 북을 치고 장구를 치고 다 한거지요. 그래서 떠났다. 제가 어디 갔다 온다는 것을 잠행했다고 해서 얘기하는거다.

들으세요. 카이로에서 카사블랑카에 가는데 몇시간이 걸리나면 밤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마침 이슬람에 추석 같은 그런 큰 날이 그래서 비행기에 사람이 없었다. 근데 코에서 피가나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감기에다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며칠 만에 약도 거기서 병원에 갈수도 없고 건강하게 약도 없이 나았다.

그 다음에 어느 나라에서는 사원인데 시체를 태운다. 제 눈 앞에서 시냇물 같은 물을 건너서 4구의 시체가 타고 있었다. 맨 오른쪽 시체는 거지다. 맨 왼쪽 시체는 상당히 부자시체였다. 그런데 그 타는 모습은 똑같았다. 저는 움직이지 못하고, 거기 앉아서 낭 앞에서 울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것 같은데 그날은 가슴이 어떻게 할수 없고 코끝이 찡하더니 눈이 뜨거워지면 결국 수건까지 꺼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가슴이 아프고 막혔지만, 제 가슴의 꿈은 참 많이 들어왔다. 제가 쓴 가사 중에서 고기란 노래가 있다. 그래요. 그런 걸 보면서 그 가삿말을 쓰는거다. 그런데 14개월.. 돌아와보니 삼류소설이라고도 볼수 없는 (기사와 소문에) 기가 막힌 거다.

야쿠자, 제가 공부하는 중간에 '싱잉 이즈 빌리빙'이란 말이 있었다.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하겠다. 자, 여러분들 중에서 대표로 얘기해주십시오. 내려서 5분을 보여주겠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이 때 탁자 위로 올라가 바지를 벗으려 했다. 그는 팬들이 “나훈아의 힘을 믿는다”고 말하자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탁자에서 내려왔다.)

밑에가 잘렸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 제가 오늘 나온 이유가 이제 얘기하는 거다.

저는 아마 제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안나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후배 배우들이 황당무계하고 기가막히고 여러분, 여러분 펜대로 사람 죽이는 거 아시는지요.

의지만 약하고 견디기 어려운 그런 성격을 갖고 있었다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갔을 겁니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말하자면.. 저는.. 무슨 뭐가 저를 힘들게 했느냐. 이 두 여인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그 처자들은 결혼 전이다. 근데 혹시 여러분도 모르는 남자친구도 있고, 가족까지 만나는 사이의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냐. 아마 그 집에서 모르긴 몰라도 아닌 땐 굴뚝에서 연기난다고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은 아니 땐 굴뚝도 연기가 난다.

그러더니 네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이런 소리가 나오느냐하면 할 말 없다. 여러분 왜 하나도 하나도 둘이 나왔을까. 이니셜을 썼다면서 야리꾸리하게 적어놓는 거다.

C, A.. 그게 사람 죽이는 거 모릅니까. 알지 않습니까. 그래요. 연예인은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직업이다. 하지만 신문사 사정은 잘 모르겟다. 일이 많아 뛸 수 없는건지. 뛰어서 정말 진실에 가까운 것을 얘기해야지. 그래 너 배우 K하니까 김혜수, 김선아 둘중에서 .. 이름을 아예 댔으면 .. 그래서 김선아다 김혜수다 나오는거다.이래서는 안된다. 제가 그냥 나누기에는 이 처자들이 아직 젊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나마도 구겨진 그나마도 엉망진창이 된 것이 복구가 되는 것을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나오게 됐다.

여러분 거의 다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엉망인, 이렇게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걸 좋아할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할 자식은 또 누가 있겠나.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니겠냐. 나는 어파치 엉망진창이 되고 여러분 손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꿈이고 지랄이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괜찮다. 제가 얘기한 걸 토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라. 그런데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김혜수, 김선아, 이 처자들 바로 잡아주십시오. 바로 잡아주셔야 한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으로.. 그래야 대한민국 연예게 언론이 하나 더 업그레이드하지 않을까. 진솔하게, 정말 진솔하게 김혜수, 김선아 바로 잡아주십시오. 그것 때문에 나왔다.

나는 괜찮다. 허연 머리에 나는 나이 들고.. 제가 더 잘 안다. 이 후유증은 기든 아니든 후유증은 길다. 저는 이 후유증을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머리가 희었다. 이렇게 힘들 때 누가 노라고 하든 저를 믿고 제 팬이 되어주는 저를 사랑하는 모임들이 있다. 그 분들은 저는 꼭 체크하거든요. 그 사람들 때문에 아픈 시간들을 ,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 근데 자신이 없다. 여러분. 여러분이 괜찮다해도 제가 자신이 없다. 가슴을 채우기에는 .. 왜 꿈이 중요한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린다.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한다. 제가 힘들다. 사람 앞일은 한치도 모른다고 하죠. 그러다 이 가슴으로는 (공연) 못합니다. 다시한번 간곡히 김혜수, 김선아 꼭 바로 잡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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