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 엄마를 뿔나게 하는 엄마 떴다②

김현록 기자  |  2008.04.18 07:30


지난 주 한 엄마가 울었다. 사돈댁에게 밥 한끼 사라는 남편의 얘기에 쌈지돈을 들고 나간 김한자(김혜자 분)는 재벌가 사돈댁이 맘대로 시킨 음식에 44만원을 내고는 그만 가깝고 속상해 눈물을 쏟았다. 깔보는 눈초리에 맘이 상해 뿔도 났다. 그 사돈댁 때문에 뿔난 이들이 어디 한자 하나 뿐이랴. 고고한 척, 잘난 척, 엄마를 뿔나게 하는 엄마 고은아(장미희 분)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지역차별 발언으로, 재산차별 발언으로 여러 사람 뿔나게 하는 고은아는 남편이 중견 기업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모님. 겉으로 봐선 아름답고 우아하며 멋진 남편과 효자 아들을 둔 '완벽한 여인'이다. 그러나 교양과 미모, 우아함으로 포장한 속에는 다분히 속물적인 면모를 지녔다. 며느릿감이 강북에 사는 걸 알고 어디 있는 동네냐며 짜증을 내고, 며느리감 면전에 대고 분수 운운하며 비수를 꽂는다. 그러나 교양있게.

시청률 30%에 육박하며 인기몰이중인 KBS 2TV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는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우아하게 손을 흔들던 귀부인의 속에 속물 근성이 숨어있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장미희가 분한 고은아를 통해 해소해준다.

지금껏 재벌가 사모님의 이미지는 다분히 전형적이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재민이 엄마 김수미처럼 자식을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욕심에 표독함을 더한 독한 사모님이 그 대표격이다. 여기까지는 장미희의 고은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치솟은 콧대와 별난 자존심에 극진한 모성애가 더해지다보니 대외적으로는 교양있는 사모님이지만 못사는 사돈집과 며느릿감에만 유별나다.

그러나 작가 김수현과 장미희는 전형적 재벌가 사모님의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엄마의 결혼반대에 아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가자 공포에 질려 두 손을 들고, 그렇게 무시하던 사돈을 초대한 자리에서 발을 삐끗해 하이힐이 벗겨지자 오랜만에 잔디나 밟자고 표정관리에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찌나 귀여우신지.

욕심은 많지만 표독하질 못하고, 결국엔 자식 못이기는 여린 마음 때문에 고은아에게서는 차가운 재벌이 아닌 미성숙한 소녀의 모습이 엿보인다. 여기엔 장미희의 개인적인 이미지도 한 몫 한다. 떡장사를 할 때조차 우아했던 그녀가 아닌가. 장미희가 우아할수록 고은아의 속물성, 우스꽝스러움은 더 빛이 난다. (덕분에 학력위조 파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장미희는 시청자들의 미움과 애정을 동시에 받으며 기사회생했다.)

어디 세상에 알뜰한 살림꾼에 온갖 희생을 마다않는 김한자 같은 어머니만 있겠나. 자식과 가족을 위한 희생을 천형처럼 안고 사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의 무게를 고은아는 가볍게 이겨내고 깜찍한 속물 엄마, 철없는 귀부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엄마를 뿔나게 했던 엄마 고은아는 어쩌면 모든 걸 참고 살기만 하는 평범한 엄마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희생만 하는 엄마는 어디 뿔이 안 날 수 있겠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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