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 김기덕, 날개를 잃었거나 우화 직전이거나

전형화 기자  |  2008.09.28 13:53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계에 하나의 상징이다. 이단아이며 문제를 제기했고 화두로 존재했다. 그의 영화에 담겨있는 극단적인 상황과 묘사는 관객에 충격을 줬고, 누구에게는 걸작이었으며, 누구에게는 악몽이었다.

외곽을 맴돌던 그를 구원한 것은 해외에서의 상찬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베니스와 베를린에서 트로피를 안았으며, 칸에 단골손님으로 불렸다. 해외에서 쏟아지는 김기덕 감독에 대한 상찬으로 비로소 한국영화는 그를 뒤돌아봤다. 그리고 조명했다.

그래서일까, 김기덕 감독은 한결 유해졌다. 표현도 순화됐다. 생채기를 쑤시기보단 어느 순간 도를 논한다. 거장이 된 덕에 해외 스타들이 그와 작업을 하려 줄을 서기도 한다.

'비몽'은 김기덕 감독의 현재가 담겨있는 영화이다. 김기덕 감독의 15번째 영화인 '비몽'은 꿈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여자가 떠난 한 남자(오다기리 죠)가 꿈을 꾼다. 사랑했던 남자를 잃은 한 여자(이나영)는 그 꿈대로 행동한다. 남자가 교통사고를 내는 꿈을 꾸면 여자가 그대로 교통사고를 낸다.

남자가 옛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면 여자는 몸서리칠 정도로 싫은 옛 남자를 만나 밤을 보낸다. 그렇기에 남자와 여자는 잠들지 않도록 서로를 경계한다. 그럼에도 밤은 찾아오고 꿈은 이어지며 현실은 꿈처럼 흘러간다.

'비몽'은 장자의 호접몽에서 모티프를 따랐다. 김기덕 감독은 조감독이 운전하던 차에서 잠을 자다 사고가 나서 깼는데 마치 자신이 사고를 낸 것처럼 느꼈다는 점에서 영화를 착안했다고 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김기덕 감독은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나비가 목걸이로 또 영혼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꿈으로 연결된 두 사람이 서로 한 몸이라는 묘사도 직접적이다. 꿈을 해설하는 여인(장미희)이 두 사람이 하나라고 설명한다.

두 사람이 반대이며 또 하나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흑과 백의 의상을 입히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감독은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을 꿈과 현실에 내던져 놓고 서로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 했다.

꿈과 사랑, 인간의 화두인 두 가지를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김기덕 감독은 이 수고를 은유법이 아닌 직유법으로 풀어냈다. 때문에 김기덕 특유의 날 것 같은 공기는 영화에 실종됐다.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씹어먹는 게 김기덕 감독의 화법이었다면 '비몽'은 날생선을 밥에 올린 초밥에 가깝다. 더 화려하고 친절해졌으나 김기덕의 불온함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김기덕 감독의 자해 코드는 여전하다. '비몽'에서 남자는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자신을 해친다. 하지만 과거 김기덕 영화 속 인물이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를 상처 입혔다면 '비몽' 속 주인공은 남을 위해 자신을 해친다. 김기덕은 달라졌거나 변했거나 퇴보했거나 순화됐다.

전작 '숨'에서 전지적인 시점으로 영화에 등장했던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는 '비몽' 속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상처입고 아파하는 모습에 어떠한 개입이나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직접 보여줄 뿐이다.

죽음으로 하나가 된다는 메시지 또한 영혼을 나비로 묘사해 직접 보여준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한옥이 주는 이미지가 오히려 낯선 것은 그곳이 이 시대 한국이 아니라 '김기덕 월드'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오다기리 죠가 일본어로 대사를 해도 모든 사람이 한국어로 답하는 것은 '김기덕 월드'에는 언어가 큰 의미기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온한 상상력이 거세된 '비몽'이 우화 직전의 김기덕을 그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날개를 잃은 것인지, 관객은 오는 10월9일 확인할 수 있다. 1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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