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빈, 그는 사내였다 확실히(인터뷰)

문완식 기자  |  2008.10.17 08:16
배수빈 ⓒ홍봉진 기자 honggga@


"난 계집도 되고 사내도 된다"('주몽'의 사용)

그는 사내였다, 확실히.

배우 배수빈은 '주몽'의 사용에 대해 "'굉장히 독특한 역할이 있다'는 소리에 회유 당해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성을 강조한 것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솔직히 다시 하라면 못 하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계집도 되고 사내도 된다던 배수빈은 '주몽'이후 잠깐의 휴식기를 갖고 '사내 중의 사내', 왕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예술을 사랑하는 우아한 왕'으로. SBS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배우 배수빈을 지난 14일 만났다.

◆ "무지렁이를 해도 삶에 대한 고찰 보여주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들른다는 모 포털사이트에서 '배수빈'을 치면 이런 글이 뜬다. '실제로 보면 그렇게 잘 생겼다면서요?'. 답하자면 '실제로 보니 자알~생겼다'.
근데 이 '잘 생긴 배우'의 데뷔가 2004년, 서른이 다 된 나이에 한 MBC 베스트극장 '소림사에는 형님이 산다'란다.

"사실 2001년에 영화 ‘클럽버터플라이’로 데뷔했다(1주일 만에 내려진 이 영화를 그는 ‘흑역사(黑歷史)’라며 처음엔 밝히길 꺼려했다) 이후 중국에서 '기억의 증명'이란 30부작 드라마에 출연했다. CCTV에서 방영됐는데 인기가 많았다. 중국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베스트극장으로 국내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배수빈은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국내 데뷔작 '소림사에는 형님이 산다'를 꼽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복서로 출연,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막극은 현재 그가 출연중인 '바람의 화원'을 힘들게 하고 있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 감독이 만들었다.

"조폭이 머리 깎고 스님이 된 이야기 ‘소림사에는 형님이 산다’는 지금 봐도 재밌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일단 내용도 좋고 영화 같은 느낌이 좋다. 거기 나왔던 캐릭터들이 다 좋다. 짧지만 임팩트를 주는 느낌이다. ‘베토벤 바이러스’ 의 이재규 감독이 연출했다. 이후에 가끔 뵙고 연락도 하고, 암튼 저한테는 좋은 형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도 잘됐으면 좋겠다. 이 감독이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를 하는 걸 알기에 긴장을 못 늦추겠다.(웃음)"

배수빈은 국내 데뷔 5년차 치곤 띄엄띄엄 활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물음에 "굳이 고르거나 이러지 않는다. 딱 나한테 임팩트 꽂히는 게 있다"고 했다. '주몽'이나 '해신'에서 그는 책사나 고급관리처럼 어떻게 보면 엘리트 역할만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지적 이미지에만 '임팩트'가 꽂히는 거다.

"배우가 깊어지는 것은 좋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체격이) 말랐지만 섹시하다. 그런 이미지를 원한다. ‘바람의 화원’ 정조 역할의 경우도 책도 많이 보고 그러면서 든 게 있어야 나오니까. 이지적으로 보이는 거 좋아한다. 역할에 따라서 예를 들면 무지렁이를 해도 ‘지식은 없지만 삶에 대한 고찰이나 그런 것은 있겠구나’ 하는 것은 보여주고 싶다. 결국 눈빛의 문제니까 지루하지만 않으면 될 거 같다. 어떤 작품이 들어오면 '했을 때 내가 이런 걸 잘할 수 있을까', '내 필모그래피(출연작목록)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일 기준은 '내가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이다."

배수빈 ⓒ홍봉진 기자


◆ "이미 정조에 빠져들어...정조처럼 살면 성공"

'주몽'이후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배수빈은 얼마 전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의 화원'에서 조선 후기 문화르네상스를 연 정조 역을 맡았다. 그는 '식견'을 넓히기 위해 간송미술관도 찾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미 그는 '정조'에 빠져 있었다.

"뭔가 심미안을 지닌 약간 우아한 왕을 그려내려 한다. 문화 예술 쪽에 조예가 있는 왕을 표현하는 게 목표다. 실제 사료에 보면 ‘김홍도는 100점, 신한평(신윤복의 아버지) 0점’ 이렇게 나와 있다. 정조는 ‘너희들 손바닥은 곰발바닥이냐 소가죽이냐’ 이러면서 화원들을 다그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미 정조에 빠져들었다. 나도 (촬영을 위해) 공부하면서 ‘정조처럼 살면 성공하겠다’고 생각했다. 정조는 수많은 정적 속에서도 자기가 뜻한 바를 다 이뤘다. 출생의 콤플렉스를 안고도 입지전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정말 대왕소리 들을 만한 인물이다."

'바람의 화원'은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김홍도와 신윤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특급배우' 박신양이 김홍도로 나오고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문근영이 남장을 하고 신윤복으로 나온다. 박신양에 대해 안 물어 볼 수 없다.

"배울 점이 진짜 많다. ‘아 왜 박신양이구나’하는 걸 많이 느낀다. 몰입력이 대단하다. 근영이 일도 순간 몰입해서 그런 거다. 그런 몰입도가 존경스럽다. 많이 영향을 받으면서 작업을 하는데 즐겁다. 선배들이 연극판에서 내공 쌓은 분들이 많다. 뭔가 열심히 해보자 이런 분위기다. 드라마 성격상 촬영감독의 굉장히 디테일한 요구에도 모두 잘 따라준다. 상황을 만들거나 하다보면 얘기가 더 풍성해지고 얼마 전에 문근영이 정조에게 가재미눈처럼 눈뜨는 것도 현장에서 배우들이 상의해 만든 것이다. 색다르고 재밌다."

◆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르겠고 계속 진화한다"

배수빈은 자신이 맡은 정조를 '문화 예술 쪽 조예가 깊은 우아한 왕'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우아한 왕도 좋지만 고구려(주몽), 신라(해신), 조선(바람의 화원) 등 옛 이야기를 통해서만 자신을 그려내는 그가 살짝 염려됐다.

"사극을 많이 해서인지 배수빈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중에 (출연작이)쌓이다 보면 알아주지 않을까 한다. 사극이 또 들어오면 안 한다는 말은 못하지 않을까. ‘바람의 화원’ 이후에는 ‘왕 했던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은 좋을 것 같다. 잘하면 ‘아 저 사람 예전에 그걸 했었는데 지금은 이 걸 하는구나’ 하고 시청자들이 좋게 기억해 주지 않을까 싶다."

배수빈은 숀 펜이나 제레미 아이언스, 장국영을 "존경하면서도 닮고 싶은 배우들"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조재현, 이병헌, 황정민, 박신양을 본받고 싶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다들 뭔가 존재감이 있고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이 나오면 뭔가 재밌을 거 같아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게 존재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존재감'을 꿈꾸는 배수빈은 자기 자신을 정의해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말했다, 알 듯 모를 듯.

"아직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궁금하다. 이유는 진짜 모르겠다. 작품을 뭘 하든 할 때마다 내가 아닌 딴 놈이 튀어나오는 거 같다.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르겠고 계속 진화한다."

배수빈 ⓒ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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