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 '리얼 토크쇼' 등 요새 '리얼'이라는 말이 방송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삶을 좀 더 현실감 있고 사실감 있게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은 '리얼 드라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내기도 하지만 대사와 캐릭터들이 그려내는 일상은 현실의 실상을 좀 더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극본 노희경, 연출 표민수·김규태)은 대사의 3분의2가 반말이다. 부장급 선배에게 말할 때도 '요'자는 장식이고 결국은 죄 반말이다. 이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난 실제 반말을 하고, 듣는다. 실제 어른들과 대화를 할 때도 존대와 반말을 섞어서 한다. 엄마와 반말을 하듯이 대화하는 것, 그게 친한 사람들끼리의 대화법 아닌가"라며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내 몸에 배서 그런가 보다"고 말했다.
노희경 작가의 말에 묻어나듯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이전 노희경 작가의 작품도 그랬지만 그 이상으로 좀 더 현실감이 느껴진다. 노희경 작가와 그녀의 생각이 드러난다. 오랜 시간 보아온 드라마 현장을 극으로 옮긴 것인데다가 기획한 지 2년, 이미 완고를 한 작품이기에 더욱 신경 써서 일 것이다.
"극이 리얼하게 느껴진다면 감독의 공인 것 같다. 나는 계속 방구석에 사는 사람이 아닌가. 리얼리티를 추구하려 했고 그걸 구상하고 쓰지만 그 부분을 살리는 것은 감독의 공이다. 작가는 아무래도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그걸 입체적으로 잘 살리는 것은 배우과 감독의 몫이다." 노희경 작가는 대화 내내 그랬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을 먼저 챙겼다.
이어 "드라마가 리얼하면 재밌다. '이걸 어떻게 드라마로 옮겼을까' 하면서 본다. 정리된 말들이 보통 드라마로 펼쳐지는데 리얼은 그 속의 파편 같다. 소소한 풍경들이 재밌다. 극에도 더 첨가시키면 재밌어진다. 그러자면 쓰는 입장에서 힘은 좀 더 든다. 그래도 전체와 부스러기들이 버무려지면 즐겁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화가 있는 곳엔 늘 그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 법이다. 변화를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걸음 떨어져서 훑어 내리는 시선이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노희경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좀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임에 "작가주의를 버린 것 아닌가?",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색을 바꾼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작가의 색은 계속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같은 톤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작가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며 "다양한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명쾌한 답변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작품 속 등장인물 대부분이 하나 이상 상처를 가진 인물들로만 가득하다는 노희경 작가 작품 특유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세상에 정말 상처를 안 가진 인물이 있나 싶다. 상처를 안 가진 인물이 있고, 이런 인물을 내가 만나보면 쓰겠다. 그런데 지금껏 관찰해본 결과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은 없더라"며 "드라마 속 이들도 똑같이 상처받은 보통 사람일 뿐이다"고 말했다. '살면서 큰 상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모두 상처가 있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 정말 상처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희경 작가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이 있는데 극에서는 숨기지 않고 쓰는 것뿐이다"며 "모든 상처를 감추고 가만히 있으면 억울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은 그저 감춰져 있던 실상을 드러낸 것일 뿐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상처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노작가는 "사회의 분위기가 상처에 대해 말을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 속에도 내가 자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며 "작품을 쓰며 '나만 상처가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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