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절정에 못오른 고려판 셰익스피어 비극

전형화 기자  |  2008.12.17 11:01

지난 16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넘쳤다. 일본 여성 관광객들과 여고생, 그리고 취재진과 영화 관계자로 매표소 주위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인성과 주진모, 송지효가 호흡을 맞춘 유하 감독의 '쌍화점'(제작 오퍼스픽쳐스)이 1년여의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선을 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1000여명이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기자를 사칭하는 사람들이 몰릴 수 있다는 우려로 사전에 취재 신청을 받을 만큼 '쌍화점'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이야기꾼 유하의 장점은 이번에도 미련 없이 발휘됐다. '쌍화점'은 셰익스피어 비극을 보듯이 고려말 궁전을 배경으로 사랑과 집착, 격정을 잘 풀어냈다.

하지만 이야기꾼 유하의 한계는 이번에도 명확했다.

'쌍화점'은 고려말 공민왕의 비사를 토대로 탄생한 영화다. 원나라의 압력을 받는 왕은 후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정인이자 호위무사 홍림에게 왕비와 동침을 명한다. 정인을 닮은 아이를 원해 시도한 일이지만 결과는 비극이었다.

홍림과 왕비가 몸으로 시작된 사랑을 하게 되자 왕은 질투를 참지 못하게 되고 집착을 하게 되고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쌍화점'은 사랑에 대한 영화다. 사랑 때문에 집착하고, 사랑 때문에 질투하고, 사랑 때문에 미치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유하 감독이 생각한 사랑은 '에로스'다.

1억개가 넘는 정자가 난자를 향해 달려가지만 하나 밖에 도달할 수 없는, 그래서 탄생에는 죽음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는 에로스를 '쌍화점'이 풀어야 할 숙제로 봤다.

'쌍화점'이 시나리오부터 파격적인 정사신을 예고한 것은 섹스야말로 에로스의 정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왕의 여자를, 왕의 남자가 탐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유하 감독은 조인성과 주진모에게 퀴어 베드신을, 조인성과 송지효에게는 격정적인 베드신을 주문했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몸보다는 얼굴을 탐했다. 몸으로 그려지는 사랑보다 감정을 담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쌍화점'의 아쉬움은 이런 감독의 의도가 불충분하게 표현되면서 비롯된다.

베드신으로 감정이 겹겹이 쌓이게 만들었어야 하나 도식적인 방식에 머물렀다. 6번이나 반복되는 베드신은 몸으로 감정을 대신해야 했지만 표현의 충격도 감정의 전달도 충분하지 못했다.

'쌍화점'은 이야기는 치밀하고 편집은 군더더기가 없다. 하지만 보여줌으로 강약을 조절하는 데는 미진하다. 액션과 베드신으로 '쌍화점'이라는 교향곡에 악센트를 주려 했지만 오케스트라의 명연주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이안 감독이 '와호장룡'과 '색,계'에서 액션과 베드신으로 감정을 풀어낸 것을 비견하면 유하 감독의 한계는 더욱 명확해진다. 그는 아직 마에스트로가 되지 못했다. 천산대렵도 분량은 의도는 명확하나 사족이다.


그럼에도 '쌍화점'은 장점이 뚜렷한 영화이다.

조선시대 사가의 덧칠로 변태군주로 낙인 찍힌 공민왕을 개혁군주로 재조명했으며, 셰익스피어의 궁중 비극을 보듯 이야기의 흐름은 유장하다. 3부작 드라마가 한 편에 녹아 있을 만큼 이야기가 주는 재미도 명확하다.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던 고려 시대의 재연하기 위해 미술에 들인 공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호연은 '쌍화점'의 백미다. 배우들이 잦은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기에 표정 연기는 세밀하고 꾸밈없다.

조인성은 조인성다웠으며, 주진모는 '사랑' 이후 연기파로 만개했으며, 송지효는 배우로 거듭났다.

유하 감독은 남자의 로망, 판타지를 화면에 옮기는 충무로에 흔치 않은 감독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는 그의 전작은 한 번쯤 꿈꿨을 대한민국 남자들의 로망이다.

'쌍화점'은 유하 감독이 그린 남성 로망의 극대화다. 권력을 지녔으되 사랑을 얻지 못하는 남자 이야기다. 고려가요인 '쌍화점'에서 나타난 남녀의 격한 애욕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는 남자들보단 '언니'들의 탄성이 더욱 많을 것 같다. 2시간23분.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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