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벌건 대낮에 서울 상암CGV에 혼자 갔다. 그때도 유명했던 '워낭소리'(감독 이충렬. 사진)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백컨대, 시사회 참석 타이밍을 놓친 기자는 하도 영화가 화제를 모으자 '어쩔 수 없이' 보러 간 것이다. 극장은 초만원.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인 것이 이례적이었다. '워낭소리' 할머니의 초절정 코믹대사엔 다들 '폭소'를, 할아버지의 눈물나게 고단한 삶엔 '탄식'을, 늙은 소의 굵어진 무릎엔 '눈물'을 터뜨렸다. 그래, 이게 '워낭소리'의 힘이었던 게다.
이런 '워낭소리'가 전국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더니 또 희한한 일이 생겼다. 불법 동영상 다운로드 문제다. 제작사측은 2일 "2월27일자로 온라인 다운로드, 웹하드 사이트 등을 통해 불법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며 "최초 파일 유포자에 대한 수사의뢰 및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국영화 위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불법 업로드 및 다운로드 '식욕'이 제작비 2억원짜리 독립영화까지 잡아먹으려 든 것이다.
'워낭소리' 영화사측은 이래저래 상심이 크다. "독립영화, 이제 지원 안해도 되겠네" 식의 대중의 착시현상에, 대자본 영화에만 국한된 일인 줄 알았던 불법 다운로드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워낭소리' 고영재PD는 스타뉴스에 "파일 업로더가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리소홀로 유출됐다고 본다"고 말했지만, 그의 속은 분노를 넘어 아릴 게 분명해보인다.
그렇다. 최초 상영 당시 전국에서 '고작' 7개 극장에만 걸렸던 독립영화를, '그들만의 리그'라는 따가운 시선과 열악한 제작-상영환경에서 묵묵히 소처럼 만든 독립영화를, 이렇게 '냉큼' 공짜로 받아먹을 순 없는 거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큐멘터리의 배경인 경북 봉화를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최근 한 지자체의 발상도, 78분짜리 영화를 공짜로 품앗이하겠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치졸한 발상도 모두 이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공짜 심리,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자는 심보 아닌가.
극장요금 7000~8000원, 이런 저런 혜택 받으면 다 안내고도 볼 수 있는 게 요즘이다. 조금만 참으면 공식-합법 루트를 통해 IPTV, 케이블, 지상파TV에서도 편안하게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워낭소리'는 집 근처 CGV나 메가박스의 폭신폭신한 의자에 앉아 제대로 몰입하며 볼 수 있다. 그 돈 7000원이 아까워 '워낭소리'를 양심 팔아 공짜로 산 당신! 그런 당신이 불법 다운로드한 필름을 보며 팔순 농부의 "아파 아파"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으며, 독립영화를 성원하는 모습, 생각만 해도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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