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獵奇), 사전적 의미로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니는 것을 뜻하는 이 말에 여성을 뜻하는 '녀'가 붙어 '엽기녀'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 이후다. 극악무도한 살인 사건을 수식하는 데나 쓰였던 '엽기'라는 단어가 독특하지만 매력적인 사람들을 설명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부터다.
이 '엽기녀'는 한국영화에서 독특한 계보를 형성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뽑혔을 정도다. '엽기녀'에 대한 폭넓은 호감을 보여주는 결과다. 삼순이 김선아, 나상실 한예슬, '패밀리가 떴다'의 박예진 등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각종 예능 프로그램까지 장르를 불문하는 '엽기녀' 캐릭터는 여배우들의 스타 관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엽기적인 그녀' 당시 전지현은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오바이트를 하거나,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남자들을 때리길 서슴지 않는 희대의 엽기녀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교복차림의 나이트클럽 막춤, 남자친구에게 하이힐을 신기는 가학적 취미 등 엽기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성 전복적 쾌감을 안기며 당시 400만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달라진 여성상을 반영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거침없는 직설화법에 폭력적인 면도 있지만 여성스런 매력을 갖고 있고, 이에 더해 사랑의 아픔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당시의 설정은 이후 영화들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신종 엽기녀들을 만들어냈다.
거침없는 여성의 섹시한 매력을 부각시킨 작품도 연이어 등장했다. 2002년의 '몽정기'와 '색즉시공'이 대표적이다. '몽정기'에서 맹한 여선생님으로 등장한 김선아는 이후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2003)으로 엽기녀 이미지를 굳힌 데 이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대박을 쳤다. 발칙한 섹스 코미디 '색즉시공'은 하지원 등 젊은 스타들을 내세웠다. 영화는 거침없는 대사와 성적 묘사로 화제를 모으며 500만 관객을 기록했다.
영화 속 엽기녀는 폭력적이어도, 하다못해 살인을 일삼더라도 매력을 잃지 않는다.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 금자를 등장시켜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진 엽기녀를 탄생시켰다. '대장금'으로 최고 한류스타로 떠오른 이영애는 돋보이는 변신으로 저력을 입증했다. 이듬해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는 최강희가 별 죄의식 없이 살인을 일삼는 여주인공으로 등장해 엽기녀의 계보를 다시 썼다.
계보를 알 수 없는 엽기녀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2008년 영화 '미쓰 홍당무'는 에너지 넘치는 왕따이자 자기비하와 자기연민의 대가이기도 한 희대의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공효진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여선생 양미숙을 실감나게 그리며 연기파 배우로 새롭게 인정받았다. 같은 해 손예진은 동명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버젓이 남편을 두고 당당하게 또 다시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는 아내로 등장,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뽐냈다.
엽기녀의 변천은 현재 진행형이다. 2005년 '웰컴 투 동막골'에서 머리에 꽃을 꽂은 아가씨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던 강혜정은 개봉을 앞둔 '우리집에 왜 왔니'에서 종잡을 수 없는 정신세계의 소유자로 새롭게 변신한다. 2007년 영화 '두 얼굴의 여친'에서 다중인격의 소유자로 변신, 남친 때리기와 술주정 등 엽기녀의 모습을 재현했던 정려원은 5월 개봉하는 '김씨 표류기'에서 외부와 단절한 채 집 안에서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엽기녀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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