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박중훈쇼'가 19일 4개월 만에 폐지된다.
영화계 최고의 입담꾼 박중훈이 MC를 맡고, 장동건 김태희 정우성 등 모시기 힘들다는 특급 게스트들이 줄줄이 출연한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빨리, 또 초라하게 막을 내릴 줄은 제작진도 박중훈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중훈쇼'는 패배했다. 정글화된 방송 경쟁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합당한 전략을 세우지 못해 전투에선 이겨도 끝내 고지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게스트가 화제가 될지언정, 토크쇼 본연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박중훈쇼'는 애초 3무(無)를 지향했다. 자극을 낮추기 위해 자막을 없애고, 자료 화면을 줄이고, MC가 나서는 대신 게스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때문에 보조 진행자도 없다. 이 같은 고품격 토크쇼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는 '박중훈쇼' 대신 정확히 대치점에 있는 '무릎팍도사'를 택했다. 시청자는 당의성을 지닌 토크쇼가 아니라 재미있는 토크쇼를 택한 것이다.
결국 '박중훈쇼'는 달라진 방송 환경을 바꾸지 못했고, 결국 시대에 역행했거나 낙오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라지게 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정통 토크쇼에 대한 필요성은 방송가에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연예인 사생활 토크가 난무하는 요즘, 오히려 진정성 있는 토크쇼에 대한 논의가 방송가 안팎에서 활발했다. '박중훈쇼'는 그런 요구에 걸맞게 출범했다. 문제는 정확한 컨셉트와 전개 방식, 그리고 자극 대신 전할 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소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통 토크쇼의 부활이란 명제 외엔 '박중훈쇼'엔 방향이 없었다. '무릎팍도사'가 애초 문제적 연예인의 갱생이란 컨셉트를 잡고 시작한 것과는 달리 '박중훈쇼'는 토크쇼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 인식시키지 못했다.
'무릎팍도사'는 문제적 연예인의 출연이란 컨셉트와 '무릎팍산'으로 대변되는 CG와 편집, 자막, 음향 등 최신 트렌드인 제작진의 개입 등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산악인 허영호씨 출연을 계기로 연예인 외에 셀러브리티 출연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진화했다.
하지만 '박중훈쇼'는 애초 포맷이 완성돼 있었기에 진화될 가능성도 말라 버렸다. 화려한 입담의 소유자인 박중훈이 뒷자리로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은 애초 프로그램이 의도하는 바가 그랬기 때문이다.
'박중훈쇼'는 KBS 교양국에서 제작했다. 교양과 예능을 이분적으로 구분하지 않더라도 KBS 내의 엄숙주의는 교양에 더 많은 제약을 주곤 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국회 대치 상황이 끝난 뒤 출연한 3당 원내대표가 고작 팔씨름을 선보였던 게 이 프로그램의 한계였던 것이다.
웃음과 재미, 감동 중 어떤 것도 잡지 못한 것은 애초 이 토크쇼가 지향하는 바가 셋 중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KBS는 '박중훈쇼'를 교양에서 예능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 다양한 모색을 했으나 결국 폐지로 가닥을 잡았다. '박중훈쇼'가 완성된 포맷이기에 부분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부적인 판단이었다.
'박중훈쇼' 폐지는 최근 방송가들이 경제 불황 속에서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없애고, 얼굴마담격인 MC들을 차례로 퇴출하는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기업들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몸집을 줄이고 경쟁력이 없다면 대표 상품이라도 과감히 포기하는 기업이 살아남았다. 애플이 그랬고, 삼성이 그랬다.
'박중훈쇼'는 거칠게 비유하면 삼성이 포기한 자동차 사업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에서 원하지 않으면 퇴출되는 법이다. 좋은 상품을 소비자가 택하는지, 소비자가 택하는 게 좋은 상품인지, '박중훈쇼' 폐지는 방송가에 어떤 게 좋은 프로그램인지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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