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모든 것을 엄마에 집중했다"(인터뷰)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2009.05.18 07:49
ⓒ'마더'로 제62회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봉준호 감독이 칸의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봉준호는 이야기를 옆으로 확장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살인의 추억'이 그랬고, '괴물'이 그랬다. 그는 '괴물'에서 한강의 괴물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가족의 이야기로, 그리고 사회 구조와 미국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확장시켰다.

그랬던 봉준호 감독이 달라졌다. 신작 '마더'는 이야기를 옆으로 펼치는 대신 엄마라는 존재로 한없이 집약한 이야기다. 특유의 유머 코드가 '마더'에서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봉 감독은 "이번 영화는 돋보기로 햇빛을 한 점에 모으듯 엄마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마더'는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면서 한국에 앞서 칸에서 먼저 선을 보였다. 17일 칸의 한 호텔에서 봉준호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외신에서 호평이 자자하다. 이번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박쥐'보다 좋다는 평도 있던데.

▶ 혹시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다음 영화(설국열차) 제작자인데.(웃음)

-엄마와 스릴러라는 조합이 이색적인데.

▶ '마더'를 스릴러로 깃발을 세운 것은 아니다. 엄마 이야기를 극한으로 그리려다 보니 스릴러에 닿은 것이다.

-시골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이라는 소재 때문에 '살인의 추억'과도 비견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 그 작품을 뒤틀어서 표현한 부분도 보이던데.

▶ 그런 부분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직 내가 자기복제를 하거나 패러디할 짬밥은 아니지만 '살인의 추억'을 비틀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편안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작품이 워낙 다른 지점을 그렸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살인의 추억'은 피의자 얼굴을 때리지만 '마더'에선 입에 문 사과를 때린다. 폭력적인 분위기는 비슷한데 좀 달라진 게 있다. 과거에 비해 지금 사회의 분위기가 그런 것 같다.

-외신에서 '마더'를 보고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비견하고, 히치콕 스타일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 히치콕 스타일이라기 보단 엄청난 규모의 변화를 꿈꾸긴 했다. 알모도바르는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란 점이 비슷하기에 외신에서 그렇게 봤던 것 같다. 난 이 영화에 반복적으로 엄마가 홀로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 게 핵심이라고 봤다.

-유머 코드가 사라지고 어두워졌다. 봉준호의 변화로 볼 수 있는데.

▶모든 것은 엄마 때문이다. 영화 들어가기 전 스태프들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태우는 장난을 어릴 적하지 않나. 이 영화는 그럴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옆으로 이야기를 벌렸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에 질렸다.

그래서 한점에 집중하려 했다. 로케이션도 지역성을 지웠다. '살인의 추억'에 풍경이 중요했다면 이번 영화에 풍경은 엄마 뒤에 후퇴했다. 모든 것을 엄마에게만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주인공 김혜자와 연기 부분에서 충돌한 지점은 없나.

▶세밀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연기의 세세한 것까지 지시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테이크를 많이 가면서 우연하게 얻어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각의 테이크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본인조차 모르던 것을 알게되는 경이로움을 찾고자 했다. 연기야 접신의 경지에 예전에 오른 분이시기에 내가 디렉팅을 어떻게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어머니라 불리는 배우들이 더러 있는데 왜 김혜자여야 했나.

▶한국의 어머니라 불리는 분들 중에 독특한 광기는 김혜자 선생님만의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어머니라는 영예이자 동시에 짐을 지고 살아오셨다. 그런데 예쁜 바위를 들추면 그 밑에 지렁이가 있는 것처럼 혜자 선생님의 다른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지점도 느껴지고, 그리스 비극도 연상되는데.

▶미국식으로 하면 아직 30대다. 만 서른아홉이니깐.(웃음) 젊은 감독으로서 고전적인 비극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 클래식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단순한 소재에 많은 이야기가 겹치길 바랐다. 보는 관점에 따라 예를 들어 섹스의 관점으로 볼 때, 이상한 형태의 복수로 볼 때, 엄마와 아들의 사랑이 아닌 지배 구조로 볼 때, 각기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영화 전반부에는 템포도 느리고, 장르적인 관습도 눈에 띄는데.

▶그런 느리거나 익숙한 느낌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부터 라스트까지 단숨에 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잘 달궈놓은 연장이 단숨에 베듯이 초반에는 달구는 시간을 의도했다.

-엔딩이 무척 인상 깊은데.

▶5년전 혜자 선생님에게 '마더' 이야기를 전했을 때부터 엔딩은 정해져 있었다. 그 장면을 만들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 엄마의 슬픔이나 고통을 그런 식으로 열어놨을 때 더 강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의 몸부림이랄까, 열린 엔딩이지만 더 슬프고 고통스럽게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

-원빈과의 작업은 어땠나.

▶원빈은 프로로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에 결정적인 장면에서 원빈이 창문을 통해 흐릿하게 보인다. 관객이 예쁜 얼굴이 아니라 연기만 보게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원빈이 배우로서 새롭게 선언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상업성보단 작가주의로 좀 더 걸어난 느낌도 있는데.

▶둘을 구분해서 영화를 찍은 적은 없다. 꼭 찍고 싶은 장면에 대한 충동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전작들이 흥행한 것은 관객에 감사한 부분이고 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작이 흥행이 됐다고 해서 그것을 염두에 놓고 다음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엄마의 춤이 영화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엄마의 광기를 그리려했다. 사랑이 어느 순간 넘어가면 광기가 되지 않나. 춤과 광기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 장면에 김혜자 선생님이 춤을 추는 장면은 뭐랄까, 유체이탈을 보는 듯 했다.

-작두 소리도 그렇고, 풍경과 각종 이미지가 전작보다 더욱 많은 함의를 지닌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 뭐든 것을 인물에 집중시켰다. 진구는 이 영화에 성적으로 최전선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물의 이미지를 주려했다. 김혜자 선생님의 가게 같은 경우 밖에 있는 아들을 한 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동굴의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차기작인 '설국열차' 계획은.

▶'마더'를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눈에 힘을 주면서 찍었다면 '설국열차'는 단추를 몇 개 풀고 편안하게 갈 계획이다. 대오락영화를 기대해달라.(웃음) 올 여름부터 각색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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