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이에게 무언가 약속하면, 반드시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에게 거짓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이 된다.’
약속이 중요하단 말이야, 라고 백번 반복하는 것보다 이 한마디 말속에 약속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다. 그렇다. 중요하다. (뭐, 그래도 가끔은 약속을 어겨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이를 어길 경우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만큼 중요한 약속들도 꽤 있지 않은가. 어찌 보면 우리 인생살이는 크고 작은 수많은 약속들이 고리처럼 엮여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약속’의 고리들은 당연히 방송국에서도 존재한다. 제작진과 출연자들간의 섭외 약속, 제작진들의 회의 시간, 방송 시간, 녹화 날짜와 시간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약속이 아닌 것은 없다. 방송일은 이 수많은 약속들이 지켜지고, 때로는 깨지는 과정을 파란만장하게 반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일들 속에서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얼마 전 한 오락프로그램의 작가 두 명이 배우 공형진과 인터뷰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가 사정이 있어 약속한 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했다. 그 15분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 작가들은 그가 늦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도 친구간, 연인간에 15분 지각 정도는 애교로 봐주지 않나? 게다가 15분 정도는 몇 마디 수다를 떨다보면 후딱 가는 시간 아닌가.
하지만, 15분 늦은 공형진은 인터뷰하는 내내 작가들에게 계속 미안해하더란다. 오히려 작가들이 미안해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인터뷰를 다 끝내고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제가 늦게 오는 바람에 인터뷰를 제대로 더 길게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내일 작가분들한테 맛있는 점심 살게요.’ 뭐, 한 두 시간 기다린 것도 아니고, 15분 정도 늦을 걸로 밥까지 산다니... 작가들은 또 미안했다.
다음 날, 두 명의 작가들은 약속 장소에 나갔고, 공형진은 맛있는 점심을 샀다. 마지막으로 디저트까지 대접받으며 ‘약속 15분 늦은 걸로 너무 잘 먹는다’ 싶을 정도로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워낙 많이 먹다보니 디저트로 나온 피칸파이 두 조각이 남았다. 그냥 두고 나오기에 아깝기도 하고, 맛있기도 해서, 그녀들은 ‘여기 못온 나머지 제작진들에게 맛이나 보게 하려구요’ 얘기하며 파이 두 조각을 냅킨에 소중히 쌌다. 그렇게 15분 지각의 대가(?)로 치러진 점심 식사가 끝이 났다.
며칠 후 공형진이 출연하기로 한 녹화날이 되었고, 제작진들은 대기실에서 출연자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녹화 준비를 하고 있었다. MC를 비롯해서 연예인 출연자들과 함께 공형진도 도착했다. 그런데, 며칠 전 디저트로 대접했던 피칸파이 박스가 한 손에 들려있는 게 아닌가. 공형진 왈, ‘작가 두 분이 피칸파이 남은 걸 싸는 것 보고, 다른 제작진들한테 주려고 사왔어요’ 하는 거다. 다들 그의 세심함에 깜짝 놀랐다. 게다가 평소 방송에서 보여지는 그의 이미지는 유독 장난끼가 많아 보여서 이런 섬세한 배려가 더욱 더 놀라웠다. 그 한 번의 일로 ‘공형진, 알고 보면 진중하고 세심한 사람’으로 이미지가 싹 바뀌었다나.
솔직히 생각해보라. 그 제작진들에게는 ‘공형진의 경험(?)’이 한 번이지만, 예상컨대 그의 평소 신념 자체가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대개 뭐든지 한 번 실천하는 사람은 쭉 그러고, 한 번 실천 못하는 사람은 쭉 못하는 걸 많이 봤으니까. ‘15분을 지키려는 그의 마음’이 그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켜준 귀한 선물이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약속이 크던 작던 항상 지키려고 노력해야할까 보다. 혹시 예전 TV 인생극장의 ‘그래, 결심했어~!’처럼 인생을 확확 바꿔버리는 계기를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 물론 미리 이런 결과를 계산하지 말고, 꼭 순수한 마음으로 지켜야한다는 게 전제되어야겠지만.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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