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지난 지금도 배우 황정민의 수상 소감은 잊혀지질 않는다. ‘스태프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꽂았을 뿐이다’ 하는 겸손한 멘트 말이다. 영화 시나리오에, 연출에, 카메라에, 조명에, 음향에, 편집 등등 스태프들이 밥, 국, 반찬들을 줄줄이 차려놓으면 배우가 와서 떡~하니 숟가락 꽂는다는 비유... 그래,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 보면, 숟가락 꽂는 거, 꼭 쉬운 일만은 아니다. 차려진 밥상을 얼마나 맛있게 먹냐에 따라서 밥상의 역할이 사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니까. 밥 먹을 때 깨작거리면서 먹는 사람 보면 좀 짜증나지 않는가? 그러니 마당쇠가 흰 쌀밥 먹듯이 푹푹 먹음직스럽게 밥 먹는 게 좋다는 얘기다. 자... 요요 밥상과 숟가락과의 관계, 충무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방송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 PD, 작가들이 어떤 아이템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촬영 준비를 하면서 열심히 밥상을 차린다. 그러고 나면 MC가 와서 숟가락을 꽂는다. 자, 이 때 숟가락을 잘 꽂아주는지, 마는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MC가 숟가락으로 열심히 밥을 먹어주냐,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스태프들이 아무리 좋은 컨셉트로 밥상을 차려도 거기에 숟가락 꽂는 MC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 그 빛을 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 MC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방송가에선 개편철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기획될 때마다 유명MC를 잡으려는 섭외 전쟁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이 섭외 전쟁에서 어떤 제작진이든 꼭 이름을 올리는 여성MC가 있으니, 바로 현영이다. 아직 방송되지 않았지만, 곧 SBS E채널에서 시작할 새 프로그램 ‘스타 사관학교’라는 프로그램의 MC에 역시 현영이 발탁됐다. 프로그램의 컨셉트는 남자 모델들이 되기 위한 모델지망생들의 리얼리티 도전 프로그램으로, 이번에 프로그램 촬영차 현영을 비롯해, 모델 도전자들, 스태프들이 모두 발리 촬영을 갔다 왔다. 해외 촬영이다보니 일정이 촉박한데다, 그녀 역시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하루 12시간 이상 쉬는 시간 없이 몇 날 며칠을 촬영해야만 했다.
이 살인적인 스케줄은 발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시작됐다. 아침 8시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8시 촬영이라고 하면 현영 같은 여자 MC의 경우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였으니, 솔직히 잠도 거의 못 자고 촬영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8시에 촬영을 시작한 그녀는 어디가 피곤하냐는 듯이 쌩쌩했다. 거기에 한꺼번에 여러 회분을 촬영해야하는 일정을 생각해서, 신이 바뀔 때마다 의상 바꾸고, 헤어스타일 바꾸는 건 기본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잠시라도 쉴 때조차 그녀는 쉴 틈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영은 몇 날 며칠 하루 종일 촬영하는 일정을 끝내고도 끄덕없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발리에서의 모든 촬영이 끝이 났다. 촬영이 끝난 시간이 저녁 8시, 스케줄이 많은 그녀는 밤12시에 먼저 공항에 가야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잠깐이라도 휴식 시간을 갖기 마련이다. 솔직히 우리라도 그러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제작진에게 와서, 남자모델 지망자 12명과 인터뷰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유는 서울로 돌아가서도 계속될 촬영을 위해, 출연자들에 대해서 미리 공부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12명의 출연자들과 만난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어떤 게 장점인지, 어떤 모델이 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등등을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 결국 그녀는 한숨도 못 돌리고 급하게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솔직히 개개인의 프로필 정도는 이메일로 받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텐데도, 그녀는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대충 만들고 싶지 않다며 그렇게 열심이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렇다. 자신들이 차려놓은 밥상이 상다리 휘어지는 진수성찬이 아니라 소박한 3첩 반상이라도 출연자들이 너무나 즐겁고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하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숟가락을 꽂는 출연자들 때문에 허름했던 밥상도 진수성찬처럼 빛나는 기적이 가끔씩 생기기도 한다. ‘스타 사관학교’에서 현영과 함께 촬영을 갔던 제작진이 말했다. 현영이 그런 MC였다고. 바쁜 일정이라 차마 요구하지 못한 촬영들도 본인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고, ‘이런 아이템은 어떨까?’ 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그녀가 허름한 밥상도 진수성찬으로 만들 줄 아는 고마운 출연자였다고 말이다.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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