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사진작가 김중만에 의해 그 존재가 다시 환기된 여배우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오수미. 42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한국영화사에서 만나기 힘든 ‘포스’를 지닌 여인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활동 시기가 한국영화의 암흑기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이었다는 사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시기였기에, 그녀의 존재감은 더욱 강렬했을지도 모른다.
겨우(?) 24년 전에 나온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색깔 있는 남자>(85. 사진)의 남녀 주인공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욕망의 덫에 걸린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역을 맡았던 임성민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건 1995년. 그 3년 전에, 샤르망 최를 옭아매는 변수린 역의 오수미는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42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오수미(본명 윤영희)는 ‘운명의 여인’이었다. 오디션에 의해 배우가 된 그녀는, 당대 최고의 연출가였던 신상옥 감독의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과 내연의 관계로 발전했고(1남 1녀를 둔다), 신 감독이 아내이자 대배우인 최은희와 이혼하면서 오수미는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여사가 북한으로 납치 당하면서 그녀는 홀로 남게 되고, 김중만과 재혼했지만 그와도 헤어진다.
1986년에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여사가 북에서 탈출해 돌아오자, 오수미는 두 아이를 신 감독에게 보내고 배우로서 재기하려 한다. 하지만 이때 그녀의 동생이자 패션 모델이었던 윤영실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오수미는 한때 약물에 시달렸으며, 결국 42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짧게 요약했지만,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특히 그녀가 30대에 접어들며 찍은 1980년대 영화들엔 ‘삶의 피곤함’ 같은 것이 배어 나온다. 당시 충무로 여배우의 대세였던 ‘글래머’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는, 퇴폐적인 팜므 파탈이었으며 강렬한 섹슈얼리티의 소유자였다.
<색깔 있는 남자>에서 그녀는 자신이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남자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죽음도 불사하는 악마적 매력을 뿜어낸다. “색깔 있는 남자, 당신 날 흥분시켰어”라고 속삭이며, 남자에게 음산하게 젖어드는 그녀는 베드 신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축축한 느낌을 드러내곤 했다.
이국적이면서도 강렬하고, 슬픈 것 같으면서도 감정을 터트릴 땐 활화산 같았던 여배우 오수미. 하지만 당시 한국영화는 그녀의 그 독특한 느낌을 담아내지 못했다. 동생 윤영실과 공연했던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82)와 <색깔 있는 남자> 정도가 그녀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했지만, 그녀는 삶과 운명의 굴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다가 30대 중반에 은퇴의 길을 선택했고 결국 요절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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