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다 벗고 관객 앞에 서니까 더 이상 감출 게 없어진 거예요. 잘 보이려고 꾸미기 보단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법을 배웠어요."
18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1층에서 '60분 알몸연기'로 흥행몰이 중인 연극 '논쟁'의 주연배우('누' 역) 윤길(34)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특이했다. 알몸으로 무대에 선 그를 처음 봤고 옷을 입고 마주 앉은 이날이 두 번째였다. 보조개가 잡히는 웃음을 지으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윤길은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막 올리기 직전까지 주연배우 등 6명만 밤에 남아 벗고 연습했어요. 관객이 외설이라고 오해할까봐, 혹평 받을까봐 걱정도 했죠. 가족한테도 공연 시작 한참 후에야 말씀드렸어요. 공연을 본 관객이 벗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주시니까 그제야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노출은 30대 중반의 배우 윤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는 임형택 연출가가 애초에 모두 벗자고 했을 때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사랑하는 남녀 중 누가 먼저 변심할까 하는 유치하고 단순한 주제가 좋았단다. 그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그다.
"스무 살 갓 넘은 학생부터 40~50대 중년까지 관객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기뻤어요. 극 중에 남녀가 처음 이성을 만나 호기심에 손가락을 빠는 장면이 있어요. 한 중년관객이 '짜지 뭐' 하시길래 제가 흥이 나 '어우 짜'라고 받아쳤던 적도 있죠.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소극장인데도 나체가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반응 아닐까요."
관객의 호응을 이야기하는 윤길은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러다가도 '논쟁'은 '알몸연기'가 아니라 '사랑'이 주제라며 금세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보는 작품 속 메시지는 '사랑은 약속'이라는 것. 나이 든 관객이 간혹 '논쟁'을 보다 눈물짓는 이유도 그 약속을 지키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1997년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로 연출, 제작자가 공연음란죄로 구속된 연극 '마지막 시도'는 개그맨 출신 백재현이 각색·연출을 맡아 '오! 제발'이라는 제목으로 18일 다시 막을 올렸다. '논쟁'이 대학로 연극의 새로운 조류를 연 데 대한 윤길의 생각은 조심스럽다.
"똑같이 벗는다 하더라도 관객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는 외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논쟁'은 60분 가까이 전라로 연기하지만 설정상 필요한 요소지 선정적 연출은 아니거든요. 필요하다면 편견을 깨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무리한 노출이 연극계 전반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겨 줄까 걱정스러워요."
요즘 호기심에 왔다 연극의 재미를 느끼고 간다는 관객들 덕에 행복하다는 윤길. 그는 지난해 방송된 EBS 어린이 요리 프로그램 '야무야무 참참'에서 진행을 맡았고 올 초 SBS '일요일이 좋다'의 '골드미스가 간다'에 영화배우 예지원 맞선상대로도 출연했다. 드문 방송 출연이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어머님들께서 많이 알아봐 주셨어요. 예지원 씨와 열애설이 났을 땐 갑자기 전화도 많이 왔었고요. 여배우에 가지는 사람들의 관심에 놀라기도 했고 지원씨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자연스레 연락을 안 하게 됐어요."
윤길은 집과 극단만을 오가며 하루 12~16시간 연습에 매달리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 1학년을 마치자마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로 데뷔해 연극, 뮤지컬계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배우다. 눈에 띄는 춤 실력과 앙상블로 '시카고', '미스사이공', '명성황후', '아가씨와 건달들' 등 뮤지컬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별 수입이 없는 연극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단다.
윤길은 현재 진행 중인 '논쟁' 1차 연장공연에 이어 10월 6일~24일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2차 연장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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