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연기-연애, 양다리 못 걸쳐요"(인터뷰)

김현록 기자  |  2010.04.08 15:42
배우 박진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임성균 기자 tjdrbs23@

영화 '친정엄마'를 보며 한참을 울었던 이유의 8할은 두 배우 김해숙과 박진희 때문이다. 징글징글한 모녀를 친모녀처럼 그려낸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애틋하기만 한 우리 엄마가, 부족하기만 한 딸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국민엄마' 김해숙이야 연기로 두말하자면 잔소리. 의외인 건 유쾌한 신세대의 대명사 같았던 박진희다. 췌장암으로 죽음을 앞두고서야 2박3일 고향집을 찾아 내려간 딸 지숙으로 분한 그녀는 때로는 발랄하게 웃으며, 때로는 목 놓아 울며 진폭 큰 감정들을 오간다. 늘 건강하고 밝은 박진희이기에 극중 지숙의 죽음은 더욱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의 나이 이제 서른둘. 데뷔 후 처음으로 죽음을 맞는 역할을 해 봤다는 박진희는 때문에 더 지독하게 '친정엄마'의 열병을 앓았다. 아프고 나니 한 뼘 더 자랐다. 속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생기발랄한 배우 박진희였다. 예쁘다는 칭찬에는 못내 쑥스러워 하면서도 '내가 코는 좀 예쁜 것 같다'고 까르르 웃던 그녀의 웃음소리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박진희라서 극중 지숙의 죽음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죽는 역할은 처음이었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암 걸려서 엄마를 보러 가는 딸 마음이 어떨까, 그걸 마음에 두고 영화를 찍으며 내내 우울했다. 지방 촬영을 할 때는 모텔에서 커튼도 안 치고, 전화도 꺼놓고 지냈다. 감정 몰입이 그 정도로 깊었다.

배우 박진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임성균 기자 tjdrbs23@

-영정사진이 등장할 때는 충격이 있더라.

▶저도 제 영정 사진을 보는 게 처음이지 않겠나. 너무 슬프더라. 필요하대서 따로 찍었는데도, 까만 테가 둘러져서 영화에 나오는데 웃고있는 내 모습이 너무 슬펐다.

아프고 죽는 역할은 처음이다. '비단향꽃무'에서 우울한 캐릭터를 했지만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밝고 경쾌한 작품을 주로 했다. 오랜만에 우울함으로 극을 달린 연기를 한 것이 스스로도 새롭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인간 박진희로서도, 배우 박진희였어도 깊어진 계기였다.

-우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방안신과 기차역신은 엄마(김해숙)랑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임이랑 같이도 하고, 각자도 하고.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 너무 신파로 가 버리면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이 많았는데 한두 테이크 만에 다 오케이를 받았다. 영화 보신 분들이 오히려 담백해서 좋았다고 하셔서 기쁘다. 내 감정의 100%를 다 보여주면 관객들이 질려한다. 더 울 수도 있었지만 절제했었다.

-직접 연기한 배우로서는 그렇게 완성된 영화를 보는 게 기분이 이상했을 것 같다.

▶일부러 스크린에서 눈을 돌려가며 봤다. 거모 고생스럽고 고통스러웠던 데서 이제야 좀 헤어났는데 그걸 또 보면 다시 빠질 것 같았다. 방안신 경우엔 여섯 시간을 내내 우니까 탈진이 돼 버리더라. 평소엔 관객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엔 '저건 영화일 뿐이야'라고 되뇌면서 봤다.

-'국민엄마' 김해숙과 대결이라면 대결인데 부담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체급이 다른데 대결은 무슨 대결, 나는 묻어가면 되지' 했다. 태권도 사범하고 하얀띠가 막 만났는데, 나는 '얍얍' 하기만 하면 선생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지 않겠나. 나는 그 기를 받고 열심히만 하면 되겠다 했다. 처음부터 걱정 없었다. 약간만 묻어가자는 생각이었다.

배우 박진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임성균 기자 tjdrbs23@

-닮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쨌든 중년 배우와 닮았다는데 서운하지는 않았는지.

▶정말 좋기만 하던데. 50대 중반이신데 엄마가 너무 고우시지 않나. 당연히 젊었을 때 예쁘시더라, 지금은 아름다우시고. 그런데 엄마도 그런 생각을 하셨나보다. '엄마도 젊었을 땐 괜찮았어' 그러시더라.(웃음) 나는 그 나이에 우리 엄마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런 좋은 여배우로 나이먹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김해숙씨한테 '엄마'라고 하면 실제 어머니가 서운해하시진 않나?

▶또 엄마 보시는 데서 그렇게 부르지는 않으니까.(웃음) 휴대폰에는 이렇게 저장해놨다. 우리 엄마는 '사랑하는 엄마', '친정엄마'의 엄마는 '친정엄마' 이렇게.

-이번 작품에서 교복을 입었더라. 잘 어울린다.

▶(한숨쉬며) 내가 이번엔 정말 교복을 안 입으려고 했다. '달콤한 거짓말' 찍을 때도 감독님한테 '내 나이가 지금 얼만데, 교복 못 입는다. 아역을 써 달라' 했는데 결국 설득을 당해서 교복을 입었다. 이번에도 안한다 안한다 했는데 또 설득을 당했다. 내 분량이 너무 적어진다나.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다. 제가 다 민망하다.

교복이랑 원래 인연이 좀 있나보다. 데뷔 때 '여고괴담'에선 내내 교복을 입었고, '비단향 꽃무' 때도 교복을 입었고. 앳되보인다는 건 (최)강희 같은 사람한테 쓰는 거다. 전에 카레 CF에서 교복을 입고 나오는데, 저도 입을 딱 벌렸다. 그게 앳된거다.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설득을 당한다는거다.

-눈여겨보면 코가 참 예쁜 배우이기도 한데.

▶에이, 다리는 그냥 예쁘게 나오는 방법을 알고 포즈를 잡는 것 뿐이다. 그런데 내가 봐도 코는 예쁜 것 같다. 손 하나도 안 댔는데.(웃음) '엄마 왜 이렇게 코를 예쁘게 낳았어' 그럴 정도다. 엄마 닮았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더라.

▶가끔 저도 깜짝 놀란다. 어떤 사진을 보면 '아니 엄마가 왜 저기 계셔' 그런다. 사실 엄마 닮은 딸이 엄마 닮는 걸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우리 엄마 저런 표정, 저런 모습 너무 싫은데 하면서도 닮아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배우 박진희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임성균 기자 tjdrbs23@

-영화 찍고 나니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각별해졌겠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는 큰 사건 사고가 없었다. 그것도 엄마의 영향인 것 같다. 일탈을 꿈꾸지만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가르쳐주신 대로 갔다. 내 삶의 어떤 소중한 걸 내가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어머니께서 물려주고 전수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그렇게 저를 잘 키워주셨다.

결혼 생각이 없는 것도 우리 엄마만큼 자식을 잘 키울 마음가짐이 안 돼있는 탓이 크다. 난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사람인데, 그렇게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는거다. 그래서 엄마라는 존재가 더 대단하게 다가온다.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랑 '친정엄마' 모두에서 서른네살로 나왔다. 몇 년 뒤를 미리 경험해보니 어땠는지.

▶서른넷이라. 좀더 어렸을 땐 그런 걸 꿈꿨다. 배우로 살지만 배우의 삶과 인간 박진희로서의 삶이 같이 늙어가는 것. 적령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리면 배우로서도 자연스럽게 변해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있나. 요즘엔 이상형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 얼굴 잘생긴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언제 어떤 일이 나한테 닥칠 지 모르고 행복해하거나 괴로워하는 거지.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커녕, 연애도 안 하나.

▶배우라는 게 두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게 만든다. 더욱이 딴 일은 안 해봤으니까. 사실 연애하면서 연기하기, 연기하면서 연애하기 힘들다. 하나를 하면 나머지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연기도 마음을 쏟아야 하는 거고, 연애도 마음을 쏘아야 하는 거지 않나. 돌 다에 마음을 못 쏟는다. 양다리 못 걸치는 거다. 작품도 연애라고 생각해야지. 정말 작품하고 연애하는 기분이다.

진짜 사랑해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적당히 하고 싶다. 연기를 한 때문인지 계산 못하고 나쁜 남자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같고. 우리 나이쯤 되면 너무 사랑에 푹 빠지지 않나. 적당히 하고 계산도 하면서 사랑하게 되는데, 나는 그게 안된다. 사랑도 적당히 해보고 싶다.

-배우로서의 욕심도 더 커가겠다.

▶점점 내가 발전하길 원한다. 도태되고 싶지 않다. 작품마다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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