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영화에는 특별한 게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현정부터 김강우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무일푼으로 줄줄이 참여할 리 없다. 그 특별한 게 과연 뭘까?
혹자는 홍상수 감독이 국내외로 명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홍 감독이 배우의 특징에서 캐릭터를 창안하기에 배우들이 놀 공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일상을 풀어내는 홍상수 감독 영화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유준상에 대답을 들었다. 유준상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부터 홍상수 세계에 사로잡힌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제주 영상위에 근무하는 찌질남으로 출연한 데 이어 5일 개봉한 '하하하'에는 불륜녀와 통영에서 바람을 피다 온 영화 평론가 역을 맡았다. 두 번 다 돈과는 인연이 먼 작업이었다.
캐스팅부터 홍상수 감독다웠다. 유준상은 "지난해 6월인가 길을 걷다가 사무실에 올 수 있냐고 전화를 받았다. 갔더니 배우들이 앉아 있었고 '인사해라, 이번에 같이 할 배우들이다'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홍상수 감독은 아무런 설명 없이 배우들에 연락해 캐스팅해버리는, 한국 영화계에 극히 드문 감독 중 한 명이다.
유준상은 영화 제목이 '하하하'라는 것도 2주 뒤에 들었다고 했다. 어떤 역할인지도 그 때 들었고. 통상 배우들은 출연 제의를 받은 뒤 시나리오를 꼼꼼히 검토한다. 중견급이면 감독이 누구인지, 제작사가 어디인지, 배급은 어느 곳인지, 상대역은 누구인지도 염두에 둔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 영화는 다르다. 전화 한 통에, 일정이 맞으면 'O.K.'이다.
왜일까? 단지 홍상수라는 브랜드 때문은 아닐 것이다. 유준상은 말했다. "단지 홍상수 감독이란 이름만 갖고는 못하죠. 영화에 공감이 되고, 작업 방식이 치열하기 때문에 더 즐기게 때문이에요."
홍상수 감독은 시나리오도 없고, 그날그날 아침에 쪽 대본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의미론 배우들에게 악몽일 수 있다. 계산할 수도 없고, 공부할 수도 없으니. 유준상은 그런 부분이 고통스럽지만 매혹적이라고 했다.
"한 신을 찍을 때 20가지가 넘는 디렉션을 주세요. 둘의 감정은 어떻고, 이럴 때 커피는 어느 정도 위치에 들고 있으며, 뒤에 있는 사람의 눈빛은 어떻고, 손가락은 어떻게 두어야 하며..."
"처음 10번은 미치죠. 20번 정도는 우리가 뭘 하는 걸까 싶고. 그러다가 서로 지치고 초월해서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돼요. 20가지, 때로는 40가지가 넘는 디렉션이 0이 될 때까지 이어지죠. 그러면 엄청난 쾌감이 들어요."
배우들을 미치게 하고 또 쾌감을 주는 것, 유준상이 밝힌 홍상수 영화에 매료되는 까닭이다.
15년 차 배우인 유준상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머릿속에 많은 것을 담아둬야 반응할 수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몸이 자유로워지죠"라고 말했다.
속마음을 들키는 것 같은 홍상수 영화 특징 역시 빠져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유준상은 "'하하하'에서 김강우가 저한테 '저 형은 피아노 잘치는 착각만 없으면 좋겠다'라고 하죠.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어요"라며 웃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큰아버지에게 술에 취한 채 불륜녀를 소개시키고 "에라, 모르겠다"고 쓰러졌던 건, 홍상수 영화에 대한 유준상의 연기 태도이기도 했다.
이것저것 복잡하다가도 "에라 모르겠다"고 지르게 되는. 그래서 홍 감독이 배우들에 술을 권하는 것이기도 하고. 유준상은 "홍 감독님은 술을 많이 권하지는 않아요. 느낌을 따라가고 감흥을 찾기 위해서 권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연기할 때 바닥까지 내려간 감정을 소주 한 잔으로 끌어올리는 마법의 음료라는 것이다.
유준상에게 지난해는 어려움과 행복이 교차한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홍상수 감독과 '하하하'를, 강우석 감독과 '이끼'를, 그리고 뮤지컬 '모짜르트'를 연이어 했다.
즐기면서도 하는 영화와 배우면서 하는 영화, 뮤지컬에 대한 애정을 오롯이 녹여낼 수 있었다. 신조가 '지치는 게 뭐야'라는 유준상. 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공감 가는 것들을 하고 싶어요. '로니를 찾아서' 같은 독립영화도 좋구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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