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은 썰렁합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운운이 아니라 정말 춥습니다. 영화제를 앞두고 태풍이 몰려왔다고 하더니만 예년보다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 덕에 칸의 쾌청한 날씨를 만끽하려 했던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저 역시 약을 달고 삽니다.
칸 해변에는 모래가 유실돼 포크레인이 모래를 옮기고 있구요. 이맘때면 토플리스 차림으로 눈길을 사로잡던 선남선녀들도 옷깃을 여미더군요.
사실 분위기도 썰렁합니다. 주말이면 니스 등 인근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대던 크로와제 거리가 한산합니다. 예년만큼 빅 스타가 오지 않은 까닭일까요? 물론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면 어깨가 닿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지만요.
러셀 크로와 케이트 블랑쉐가 '로빈후드'로 개막식을 찾았지만 지난해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부부가 왔을 때완 차마 비교하기가 민망했습니다. 그 땐 난리였죠. 인파에 깔려 죽을 뻔 했으니깐요.
그만큼 올해 화제작이 없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안티 크라이스트'를 비롯해 경쟁작들이 피와 섹스가 난무했더랬죠. '박쥐'가 귀여운 수준이었으니깐요.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이거다 싶은 영화는 없더랍니다. 경제위기 탓이죠.
돈이 돌지 않으니 만들어지는 작품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더란 말이죠. 이곳에선 경제 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해까진 크로와제 거리에 있는 칼튼 호텔에 할리우드 영화 간판이 벽면 전체에 나부꼈습니다. 올해는 '나니아 연대기3'와 '로빈후드' 정도가 입간판으로 걸려있구요, 전면엔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솔트' 간판 하나만 외로이 걸려있습니다.
지난해 칼튼 호텔 앞엔 범블비가 커다랗게 서있었는데 올핸 졸리 언니가 소금에 절인 고등어마냥 비쩍 골아있는 포스터 달랑 하나라니. 할리우드도 어렵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가 3년이 지나니 실물경제로 나타났다고 할까요? 그 때는 어렵다곤 했지만 브릭스(BRICS) 국가를 중심으로 성대한 파티가 연일 열렸습니다. 일본은 에이벡스가 파티 한 번 여는 데 30억원이 넘는 돈을 썼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거죠.
올해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약진입니다. G2로 격상된 중국은 과거와 또 달랐습니다. 2008년에 '적벽대전' 파티를 열 때만 해도 졸부 취급을 받았죠. 하지만 올핸 여기저기서 중국을 이야기합니다. 마켓에서도 중국 부스가 부쩍 거립니다.
남동철 아시안필름마켓 실장은 "누구나 중국에 관심을 갖고 있다. 비록 쉽진 않지만"이라고 하더군요. 영화를 사진 않지만 합작이라든지, 공동제작이라든지, 여러가지 방법으로 중국을 뚫어 보려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리죠. 스크린과 버라이어티 등 데일리에서도 중국 영화시장과 관련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경쟁 부문에 왕 샤오슈아이의 '중경블루스'가 초대된 게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3D도 화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국에서 3D 영화를 마켓에 내놓았습니다. '아바타' 이후 3D가 영화시장에 한 축이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결국 돈이 될 것 같단 소리죠.
이런 와중에 한국영화는 돋보입니다.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라 현상입니다. 지난해보다 마켓 시사가 20% 정도 줄어들 정도로 한산한데 한국영화는 '포화 속으로' '악마를 보았다' 등이 마켓 개시와 동시에 팔렸습니다. 데일리에 영화 판매 기사는 한국영화 정도만 소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시'와 '하녀'는 말할 것도 없죠.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김복남 살인사건'은 다크호스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럴 땐 영진위 부스에 나부끼는 태극기만 봐도 자랑스럽습니다.
영화산업을 굳이 나누자면 중국이 하드웨어로 주목받는다면 한국은 소프트웨어로 주목받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우리나라 영화의 방향점이란 생각도 듭니다. 국내에 첫날 15만명이 든 '하녀'와 5600명이 든 '시'가 동시에 칸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게 한국영화의 힘이겠죠.
여담입니다. 이곳 실생활에서도 중국의 파워를 느꼈습니다. 숙소 엘리베이터에 갇혔더랍니다. 갑자기 뚝 떨어지더니 지하에 멈춰서 작동을 안하더군요. 같이 탄 동료는 "칸에서 죽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프론트에 연락을 했더니 "기술자가 올 때까지 10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프랑스식 어법이니 10분이 한 시간이 될지, 두 시간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같이 탄 중국 기자가 맨 손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뜯어내는 게 아닙니까. 그는 괴력을 발휘해 갇혀있던 7명이 다 나올 때까지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고 있었더랍니다.
그는 '따거'(대인)답게 이름도 남기지 않고 표표히 떠났습니다. 중국, 힘이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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