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소지섭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故 박용하의 마지막 길, 소지섭이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보가 전해지고 영면식이 이어지는 2박3일간을 소지섭은 마르지 않는 눈물로 배웅했다.
과연 이 같은 친구를 둔 사람이 몇이나 될까.
6월30일 오전 10시 20분 - 비보, "어떡해..어떡해"
지난 6월 30일 오전 5시 30분께, 박용하가 자택에서 목을 맨 채 이미 몸의 온기가 가신 상태로 어머니에게 발견됐다.
비보를 전해들은 소지섭이 이날 오전 10시 20분께 헐레벌떡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로 들어섰다.
박용하와 연예계 소문난 절친이던 소지섭은 "어떡해"를 반복하며 빈소로 달려갔다. 소지섭은 영정도 없는 텅 빈 빈소를 보자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통곡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경찰로부터 검시필증을 받지 못해 장례절차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던 때, 쓸쓸함이 감도는 조문실은 굳게 닫힌 채 소지섭의 오열 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7월 1일 오전 10시- 영정을 가슴에 품고
조문실을 나서지 않고 종일 유가족과 함께 박용하의 영정 앞을 지킨 소지섭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7월 1일 오전 10시께.
전날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 수많은 동료 연예인들과 팬들의 조문을 고려, 빈소를 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장 넓은 31호실로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꼬박 밤을 샌 듯 하루사이 부쩍 수척해진 모습의 소지섭은 친구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장례식장 5호실을 나섰다.
7월 1일 오후 2시 10분- 입관, 친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다
1일 오후 2시 10분께 고 박용하의 입관식이 엄수됐다.
고인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순간이다. 소지섭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겼다.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영원히 가슴 속에 새기기 위해서.
7월 2일 오전 6시- 발인
발인 소지섭이 박용하의 영정을 들고 운구행렬의 앞에 섰다. 오전 6시께 망연자실 한 표정의 그는 친구를 마지막 잠자리로 인도하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붉게 충혈된 눈은 진한 국화 향기에 찔려 더욱 붉어졌다.
7월 2일 오전 9시 35분 - 화장
이날 화장 장소인 성남 영생원에 도착한 유해가 오전 9시 35분께 생전 정을 나눴던 동료들에 의해 화장터로 향했다.
발인 때부터 안타까운 눈물을 쏟아 냈던 소지섭은 고인이 한 줌의 재로 화하는 순간 또 다시 오열, 통곡했다.
7월 2일 오후 1시-'차마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어서..'
2일 오후 1시께 경기도 분당 메모리얼파크에서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도착한 소지섭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영정을 고이 모시고 있었다.
유가족은 위패와 유골함을 바로 단상에 놓지 않고 소지섭에게 건넸다. 소지섭은 이를 받아 손으로 하나하나 쓰다듬은 뒤 단상에 올렸다.
영정을 앞에 두고 절을 하던 소지섭은 바닥에 머리를 댄 채 한참이나 일어서지 못했다. 소리 없는 눈물만이 뚝뚝 떨어졌다.
고개를 들면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영정 속 친구의 환한 미소가 현실로 다가 올까 두려운 듯, 그는 그렇게 한참이나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유해를 안장하고 난 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가장 먼저 위패와 영정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었다. 묘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한 발자국도 자리를 옮기지 못했다.
이로써 장례 절차가 마무리 되고 고 박용하는 영면에 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킨 소지섭은 숙연했고 비통했고 슬펐으되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같은 친구를 둔 박용하의 짧은 삶은 위로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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