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 "거지 연기로 한 획 그어야죠"(인터뷰)

MBC '짝패'의 미친존재감..거지 말손이 역 김경진

김현록 기자  |  2011.02.24 10:56
ⓒ류승희 인턴기자 grsh15@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김경진!"

초점이 어디에 맞춰졌나 알기 힘든 눈, 검게 그을린 피부와 조금 벌어진 입술, 어깨에 닿을 듯 말듯 늘어뜨린 검은 곱슬머리. 어수룩하지만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강렬한 이미지, 허를 찌르는 목소리와 엉뚱한 면모는 그를 연예계와 안방극장을 주름잡는 '미친 존재감'으로 만들었다. 개그맨 김경진(28)이다.

2007년 MBC 16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지 5년째,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요상한 존재감으로 시청자들을 웃겼고, 최근에는 MBC 드라마 '짝패'에 거지로 정식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가만히만 있어도 시청자들의 시선이 알아서 꽂히는 그의 '미친 존재감'은 드라마에서도 여전하다.

지금이야 '천상 개그맨'이라지만 주위 사람들은 사실 알아채지 못했다. 아들이 개그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의 어머니는 '엄마, 나 MBC 개그맨 됐어'하고 전화로 합격 소식을 알린 아들에게 '그거 사기당한거야. 당장 집에 내려와'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개그맨 시험에서는 김경진은 말 그대로 '대박'을 치며 당당히 합격했다.

"역대 공채 시험 사상 최고 웃겼다고 했어요. 한 게 뭐냐면요, 그냥 (특유의 목소리로) '참가번호 94번 김경진입니다' 하고 '지킬 앤 하이드'로 '에엑∼' 이런 거 했거든요. 사람들이 너무 웃는 거예요. 그게 연기인 줄 아셨던 거죠. 그게 그냥 제 모습인데…"

시련은 바로 찾아왔다.

"'개그야'에 나갔는데,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 거예요. 당시 연출자셨던 김정욱 부장님이 처음엔 '노래 금지', '춤 금지'를 시키셨어요. 금지가 점점 늘어나서 나중엔 김경진 '대사 금지'까지 시키셨어요. 그냥 쫄쫄이 입고 서 있다가 그냥 나오고 그랬죠."

그러나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로 한 차례 유명세를 타고, '개그야'에서 '김경진은 호모 사피엔스', '명감독 김경진' 등이 4차원 캐릭터로 조금씩 마니아 팬을 끌어들이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그러나 시련은 또 찾아왔다. '개그야', '하땅사' 등 MBC 코미디 프로그램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그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박명수다.

"힘든 시기였어요. 나름대로 인지도라는 게 조금은 있는데 방송이 없는 거예요. 소속사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들 만나서 '계약 좀 안될까요' 그러고 다녔다니까요. 그런데 결국 다 안됐어요. 그때 박명수 선배가 '내가 거성엔터테인먼트 차릴 건데 니가 1호니까 들어와' 그러시는 거예요. 농담인줄 알았죠."

후일담이지만 거성엔터테인먼트 유일의 매니저조차 농담인 줄 알았다가 진심인 걸 나중에 알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니 경진이를 데리고 어떻게 하실 건데요'라고 박명수에게 따질 정도였다고.

당시 김경진은 10만원 출연료를 받고 단발성 케이블TV 출연을 전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KBS 2TV '백점만점', MBC '웃고 또 웃고'를 비롯해 여러 지상파·케이블 TV를 바쁘게 누비는 중이다. 드라마 '짝패'에서도 당당한 고정 캐릭터다. 김경진은 "나는 거성엔터테인먼트의 황금알을 낳는 타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철두철미한 사장이시죠. '짝패' 모니터링도 다 해주세요. 선배로서는 정말 훌륭한 선배죠. 제가 방송에서는 '유재석 선배가 좋다, 롤모델이다' 그랬는데 사실은 명수 선배가 최고예요. 막 하는 방송 같지만 그 안에 철학이 있어요."

ⓒ류승희 인턴기자 grsh15@

최근 김경진은 '거지 연기 종결자'로 시청자와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짝패'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바로 거지패의 막내 말손이. 앞서 '지붕뚫고 하이킥'과 '추노'에서 각기 노숙자 거지와 뱃사공 거지로 이미 뚜렷한 인상을 남긴 터다. 반응이 뜨겁지만 지금까지 대사는 1회 때 딱 한 줄에 불과했다. 실로 '미친 존재감'이다.

"너무 독보적인 거지 캐릭터라, 거지패 (김)기방이 형은 제 옆에 안 있기로 합의를 봤어요. 자기가 묻힌다고. 정경호 형은 정면승부를 하신대요. 아 막말로 그냥 '병풍인'데 어쩌다…. 감독님도 정통 연기자들에게는 주문하시는 게 많은데 저한테는 '말손이는 그냥 알아서 해' 그러세요.

우리나라는 한 가지만 잘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잖아요. 이쪽으로 계속 파 보려고요. 한 획을 그어야죠.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중에 왕거지까지 해볼까."

이렇듯 초탈한 김경진이라고 애로가항이 없을 리 없다. 그는 특유의 말투로 두런두런 그간의 고충들을 털어놨다.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했다 나중엔 그도 '울컥' 했다.

"제가 찌질함의 대명사가 됐나 봐요. 작년인가, '손톱 밑에 때 껴있을 것 같은 연예인 1등'을 했어요. 음… 그렇진 않은데. 미니홈피 들어가 보면 이런 분들이 계세요. '내가 왜 당신이랑 닮았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야 됩니까', '이름이 김경진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놀려요. 개명하세요' 등등. 저보고 어쩌라고, 제가 개명을 왜 해야 되냐고요…."

물론 고도의 연기가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학창시절 전교 1등을 했다거나 성적표에 올 A+가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부터다. 김경진은 "실업계였다"고 손사래를 치며 "그건 오해예요. 평소에도 똑같아요"라고 웃음지었다.

"심각하게 똑똑한 척도 해보려고 하는 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냥 가만히 잘 있으니까 '미친 존재감'이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개그맨 돼서도 제가 아무 대사 없이 있는다든지 지나갈 땐 보고 많이 웃으시는데 주도적으로 하면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캐릭터야 그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죠. 옷만 갈아입어요. 아, 거지옷 추워요. 나름 그 옷이 50만원짜리 라던데…."

동아방송예술대학 영상제작과를 나온 그의 롤모델은 유재석도 박명수도 아닌 일본의 개그맨 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그는 "내 최종 목표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판을 크게 벌이지 않고 제 스타일로 B무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럼 올해의 단기 목표는? 그는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전셋집 마련이요! 전셋값 너무 비싸요!" '위대한 탄생' 김태원식 스타일로 대답하자면, "곧 있게 되실 겁니다!"
ⓒ류승희 인턴기자 grsh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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