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해를 품은 달'과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한가인은 CF에서 박제된 채 소비됐다. 한 때 첫사랑의 상징 같았던 그녀는 24살 어린나이인 2005년 결혼을 했고 2007년 드라마 '마녀유희'로 마녀사냥을 당한 뒤 작품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했다.
2010년 드라마 '나쁜남자'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온전히 돌아왔다고 하기엔 일렀다.
한가인이 돌아왔다. 첫사랑의 그녀는 이제 결혼 7년차로 세상을 알게 됐고, 연기에 대해 새로 눈을 떴다. '해를 품은 달'은 한가인을 안방극장에 온전히 복귀시켰으며, 22일 개봉하는 '건축학개론'은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8년만에 영화 출사표다.
한가인은 '건축학개론'에서 대학교 1학년 때 건축학개론 수업을 같이 들었던 남자를 15년만에 찾아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한다. 의사와 결혼했고 이혼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첫사랑은 그렇게 돌아왔다.
-영화는 8년만이고 드라마도 오래 활동을 쉬었는데.
▶당시 회사 때문에 활동을 못했었다. 기다려야 했고.
-당시 소속사에서 '마녀유희' 시청률이 낮은 게 작가와 연출진 탓이라며 공개 항의 자료를 배포했는데. 그 탓에 세상물정 모르고 남 탓만 하는 배우라고 낙인찍히며 마녀 사냥을 당했는데.
▶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날 회사에서 인터넷을 보지 말라고 하더라. 그 뒤 회사에선 한 작품을 더 하길 원했다. 이래저래 갈등이 컸다. 활동을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며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활동을 오래 못했는데 연기에 대한 갈망도 있었을텐데.
▶누구보다 컸다. 정말 정말 컸다.
-그러다 '해품달'과 '건축학개론'으로 이어지는 전기를 맞게 됐는데.
▶'해품달'을 하기로 하고 '건축학개론'을 먼저 찍었다. '건축학개론'은 좋아하는 느낌의 영화였다. 멜로를 하고 싶기도 했고.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변화하고 싶단 생각도 있었고.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갈무리하는 역이라 연기를 잘해도 잘했단 평을 듣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실제로 이제훈이나 수지, 엄태웅이 연기에 대한 칭찬을 더 많이 받고 있는데.
▶연기로 뭔가를 보여줄 작정이었다면 이 작품을 안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른 장르나 다른 캐릭터를 원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영화를 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다시 영화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조화를 잘 이뤄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시절과 성인시절 배우들이 다르다.(이제훈,수지 vs 엄태웅,한가인) 전혀 다른 인물이란 생각도 들고. 그게 영화에 더 맞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처음엔 의문점이 있었을텐데.
▶나도 있었다. 대학시절을 굳이 다른 배우가 해야 하나란 생각이 있었다. 그런 의문을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었다. 그런 뒤 수지의 연장선이란 생각을 버리고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영화에 맞다는 걸 이해했다. 튀고 눈에 들어오게 한다기보단 앙상블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용주 감독은 한가인은 테이크가 뒤로 갈수록 연기가 빛을 발하는 배우라고 하던데. 사실 '건축학개론'에서 맡은 역할이 감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 장면이 많이 편집되기도 했는데.
▶일단 뒤로 갈수록 좋아질수록 좋아진다는 게 맞다. 난 슬로우 스타터다. 편집된 부분은 그게 설명이 돼야 하는데 편집되니 아쉽긴 하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 납득이 가게 돼 있어서 조화를 이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한가인은 조화를 위해선 양보하는 성격인가.
▶개인적인 차이는 있다.
-완벽주의자로 알고 있는데.
▶그런 면이 있다. 이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보니 템포가 느린 편이다. 이용주 감독님한테 촬영이 없을 때도 이 캐릭터의 감정을 납득이 안돼 장문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테이크가 뒤로 갈수록 좋아지고 완전히 이해가 돼야 연기가 가능하다는 건 TV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맞는다는 뜻인데.
▶드라마가 그래서 좀 답답한 부분도 있다. 영화는 캐릭터로 풀지만 드라마는 줄거리로 푸니깐.
-'건축학개론' 클라이막스에서 엄태웅의 뒷모습만 보이고 한가인의 리액션으로만 이뤄진 시퀀스가 있는데. 둘의 관계가 역전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고 남성 관객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주는 장면이기도 한데. 그래서 가장 연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정확하다. 제일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때까진 여자가 갑 같고 남자가 을 같은 관계였는데 그 장면에서 역전이 돼야 했다. 그런 느낌을 리액션으로 보여줘야 했고. 찍기 직전까지 감독님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을 했고 그래서 태웅 오빠랑 셋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대사와 설정도 많이 바뀌었고.
-'말죽거리 잔혹사'에선 첫사랑이었다가 8년이 지나 '건축학개론'에선 첫사랑의 그녀로 돌아왔는데.
▶그래서 '건축학개론'에서 내 대학시절을 연기한 수지를 보면 '말죽거리 잔혹사' 때가 많이 생각난다. 그 때의 나와 비슷한 마음 상태가 아니었을까. 긴장하고 노력하고 잘 모르겠고.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8년이 지나 나도 결혼했고 그간 속 끓는 이야기와 아픔도 많았다. 그 때와 많이 달라졌다. '건축학개론'은 그래서 지금 내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기억이 잘 안난다. 지금은 훨씬 현실적이고 여유가 생겼고 또 욕심이 생겼다.
-결혼한 뒤 끊임없이 이혼 루머가 돈 건 한가인이 워낙 첫사랑 판타지를 가졌던 스타였기에 반작용이 있지 않았나 싶다. 활동이 적었던 탓에 노출도 적기도 했고. 스스로 왜 그런 루머가 생겼는지 생각해본 적도 있었을텐데.
▶정말 '왜?' 라고 묻고 싶더라. 위장결혼이다, 이혼을 했다, 별 소문을 다 들었다. 남편과 TV에서 과일을 먹다가 우리 둘이 이혼했다더란 루머 기사가 나오는 걸 보고 웃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아직 없는 것에 대해서도 민감한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언제 아이를 갖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런 루머가 만들어진 데는 작품 활동이 적었던 탓도 컸던 같다. 그런 점에서 '해품달'과 '건축학개론'을 연이어 선보이는 지금이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것도 같은데.
▶일에 대한 욕심이 뒤늦게 발동하고 있다. 그 전엔 의문이었다. 내가 연기자가 맞나, 재능이 있나, 이런 의문들을 갖고 있었는데 풀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주변에선 별 이야기가 들렸다. 욕구는 있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을 할 때 어려운 숙제를 선생님한테 검사 받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반응을 해주시네 이런 느낌을 받았다. '해품달'은 주변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주는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 전엔 나만 보기에 급급했다. 이번에 분장을 해주는 언니가 있었는데 그 분은 나는 쉴 때도 다른 분들의 분장을 하느라 쉴 틈이 없는 분이었다. 내가 2~3시간 자고 분장을 받을 때 그 언니가 손을 꼭 잡아주며 '가인아 힘들지 힘내'라고 해주는데 정말 너무너무 큰 힘을 받았다.
-한가인은 그동안 연기보다 외모로 인정받는 배우였다. 아직도 그런 점이 있고. 인정하나.
▶음..인정한다. 그래도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외모는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니깐.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깐. 예전에는 그런 평에 부정적이었다면 이제는 사고가 전환됐다고 할까.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나. 한국에선 여배우가 일찍 결혼하는 게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더 큰데.
▶상투적인 답변으론 안정적인 삶을 갖고 싶었다고 한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냥 뭐에 홀린 듯 어어어 하다가 결혼을 했다. 물론 여배우로서 잃는 게 많았다. 그렇지만 결혼은 한 것이고 그럼 내가 결혼했는데도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지, 내 장점은 뭘까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결혼을 일찍 한 걸 후회하지 않냐고 한다면 지난 시간이 너무 아쉽지 않나.
-확실하게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성격 같은데.
▶그렇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오케이 인정한다. 그런 뒤에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활동 쉬었지만 그래 인정, 이제 내가 뭘 해야 할까, 결혼은 한 것이고, 그럼 내 장점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건 뭘까 이렇게 생각한다.
-엄태웅과 이제훈, 김수현, 정일우 등 최근 함께 한 배우를 촌평하자면.
▶엄태웅은 따뜻하고 편하다. 주위를 정말 편하게 해준다. 현장에서 아파서 죽을 때도 농담할 사람이라고 했다. 이제훈은 현장에서 연기 한 것을 봤는데 정말 꼭 한 번 연기를 같이 해보고 싶은 배우다. 김수현은 집중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현장에선 산만한 편인데 슛이 들어가면 갑자기 집중한다. 정일우는 해피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현장에 오면 태양처럼 빛난다.
-이제훈과 김수현 중 다시 연기해보고 싶은 사람을 꼽자면.
▶김수현은 해봤으니 이제훈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 차이도 덜 나고. 김수현이 '해품달'에 됐다고 했을 때 나이 차이 때문에 내가 빠져야 하나란 생각도 했다.
-남편이 첫사랑이었나.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인데 키도 187㎝였고 멋있었다. 최근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는데 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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