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꾸미거나 할 새가 없다. 흐트러진 모습, 망가진 모습은 신경쓰지 않고 역할을 맡는다는 느낌이다.
▶'여배우가 망가지는 게 꺼려지지 않느냐'고 묻곤 하신다. 그걸 먼저 생각하면 이 영화는 못하는 거다. 제가 망가지든 말든 내가 재밌는 부분, 아무도 못 해본 감염자 연기를 하면서 정당성과 현실감을 전달할 수 있다면 성공이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감염자가 되면 유일한 증세가 식욕이 왕성하다가 물에 대해 갈망을 보이는 건데, 테스트 촬영 때 별걸 다 해봤다. 입에 거품 물고 주르륵 흘려도 보고, 눈도 뒤집어보고. 그런데 잘못하면 좀비같은 느낌이 되겠다 해서 이리저리 바꿔가며 시도해봤다.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감독님은 '극단적인 눈빛이면 좋겠어' 하시고 알겠는데도 그게 잘 안 되더라. 그것도 뒤로 갈수록 점점 강해져야 해서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했다. 늘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세게 하자고 하셨는데 감독님 계산이 맞았던 것 같다.
-지난 겨울 추운 날씨에 물 뒤집어써 가며 연기하는 게 고역이었을 텐데. 심지어 연가시는 보이지도 않아 홀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수용소 들어가고 나면 보이지 않는 연가시랑 혼자 사투를 하는 거였다. 그것도 명민 선배도 없고 혼자 하는 게 많으니까 좀 외로웠다. 평균 영하 20도이던 한참 추운 때였는데, 너무 추우니까 혼자서 멘붕 상태가 왔다갔다 하고 그랬다. 핫팩 몇개 갖다두고 대충 찍다가 끓인 물 발밑에 두고 찍다가 그랬다. 그렇게 찍은 장면이 대단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온거 보니 고생하는 거보다는 장면이 잘 나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을 콸콸 들이키는 장면은 물통 드는 것도 쉽지 않겠다 싶더라.
▶굉장히 오래 마셨다. '연가시'는 물 먹은 기억밖에 없다. 찍고 나니 찬물 마시기가 싫다. 물을 맛있게 먹어야 해서 평소부터 물 마시는 연습을 했는데 그러고 나면 정말 밥맛이 없더라. 물 다이어트라도 하더니, 본의 아니게 살이 많이 빠졌다. 덕분에 피부도 안 나쁘게 나왔나보다. 물통째 먹는 장면은 20L쯤 되는 물통을 6통 넘게 들이부었다. 입에 대는 것도 힘들다. 그게 영하 20도에 찍은 장면인데 다시 찍으려면 옷 갈아입고 물 말리고 세팅을 다 다시 해야 되고 여러가지 민폐였다. 당시 그 통을 들고 물을 딱 들이붓는데 코로 입으로 한꺼번에 물이 밀려오더라. 속으로는 '내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쓰러지면 누가 인공호흡이라도 해주겠지' 하면서 '정희야 그냥 기절 한 번 하자' 하면서 찍었다.
-찍고 병났겠다.
▶다행히 안 아팠다. 심지어 슛 들어가면 막 힘나서 열심히 했다. 이번 영화 하면서 느꼈다. '정희야 니가 이 일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넌 이 일을 계속 하렴' 그랬다. 스스로에게 위안도 하고 격려도 해줬다. 촬영 다 끝나고, 일일드라마도 끝나고 나니까 그제사 몸이 아프더라.
-변화를 다짐했는데,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캐릭터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쿨한 팜므파탈도 하고 싶고, 로맨스도 해보고 싶다. 뭐 해보고 싶냐고 하면 예전엔 할 말이 없었는데 요새는 많아졌다. '뭐든 주세
요' 이거다. 재밌으면 하는 거다.
-'연가시'도 물론이지만 '연애시대'를 잘 본 탓에 여성미의 화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여성스러운 스타일인가.
▶말소리가 조용하고 온화하긴 한데 밖에서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이 있다고 할까.(웃음) 여자같다 이런 건 차려입으니까 그런 거죠. 실제로는 옷도 별로 없고 꾸미는 것도 잘 못한다. 여배우로서 자랑은 아니지만 가까운 남산에 거의 매일 간다. 런닝복에 모자 쓰고 뛰어다니다가 장봐서 집에서 밥하고 이런 거 좋아한다. 자전거도 타고, 춤도 요새도 추고. 좋아하는 건 말로 하는 것보다 그냥 몸으로 하는 게 편하다. 춥지만 않으면 다 잘 할 수 있다. 예쁘단 얘기는 어색하고 민망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저랑 어울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늘 잘 하는 게 우선이고 극이 재밌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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