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주만에 같은 자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기덕, 조민수, 이정진. 같은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사뭇 달랐다.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 '피에타'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국 전 같은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김기덕 감독과 두 주연 배우 조민수와 이정진이 참석했다.
이틀 전 이들은 제 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최초의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최고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주인공들답게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세 사람의 말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수상의 기쁨을 말하는 동시에 '피에타'의 적은 스크린 수, 퐁당퐁당 교차상영에 대한 아쉬움을 밝히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었으며, 이번 '피에타'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그 입지를 더우 공고히 한 김기덕 감독은 더욱 그랬다. 자신의 영화처럼 날이 선 김기덕 감독의 직설화법은 여전했다.
그의 무엇보다 자신의 영화를 지지해 준 관객에게 가장 큰 감사를 돌렸으며, 잠시 구설수에 올랐던 의상에 대해 해명했다. 화제가 됐던 문재인 민주당 대권 주자에 대한 공개 지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리고 베니스에서 받았던 찬사, 그에 대한 기쁨 또한 털어놨다.
김기덕 감독은 "가장 큰 축하를 보내주신 분은 소리없이 저를 지지해 준 관객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외국에 나가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당신 영화는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유럽, 미국, 러시아에서 인기가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니다. 한국에도 프랑스, 미국, 러시아만큼 지지하고 아껴주는 팬이 있다'고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진심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수상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혹시 수상하지 못할 경우의 두려움, 상을 받았을 때의 감흥에 대해서고 솔직하게 밝혔다. 김기덕식 자화자찬에 곁에 앉은 조민수는 표정관리에 들어갔지만, 오늘의 기자회견은 자랑스러운 그를 위한 자리였다.
김기덕 감독은 "굉장히 냉정하게 영화를 보는 기자들이 기립박수를 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로카르노 영화제 당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기자시사회에서 기립박수가 나왔다. 영화를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후 집행위원장을 만났는데 굉장히 흥분하면서 '영화제 운영하면서 이런 일이 처음이다. 기자들이 박수를 10분간 쳤다'고 했다. 본상영 때도 어느 기자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산사태같은 박수가 쏟아졌다'고 썼더라. 현장에서는 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자신과 배우들이 길을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을 정도로 취재진과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실감했다며 그 때문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도 말했다. 그는 "'당신 영화가 황금사자상이다' 이러니까 기분이 붕 뜨고 힘들었다. 수상 전날은 '이렇게 올라갔다 추락하며 어떻게 하지', '추락하면 정말 아플텐데' 하며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놔 기자들을 폭소케 했다. 하지만 기대는 현실이 됐다.
일부 미국 언론이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더 마스터'가 상을 중복 수상할 수 없어 황금사자상을 놓쳤다고 보도한 데 대해 '피에타' 역시 중복 수상 가능성이 더 있었다는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은 "시상식 끝나고 파티를 가면 자유로운 자리인데 거기서 가장 먼저 거론한 게 여우주연상은 모든 심사위원이 동의를 했는데 황금사자상은 줄 수가 없다. 각본상 역시 주려고 했는데 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심사위원장) 마이클 만 감독이 '피에타' 시나리오는 완벽한데 거기에 하나가 더 있다고 했다. 그것이 저에게 주신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외신에서 말한 부분은 알고 있는데 저희도 부문에 후보에 있었다. 제가 말하면 그렇지만 그런 부분이 있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또 김기덕 감독은 날선 어조로 대형배급사의 상영관 독점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이 기회로 영화가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으면 한다"며 "다만 하루 몇차례라도 상영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작은 바람을 털어놨다.
그는 "'도둑들' 같은 영화가 1000만 기록을 위해 관을 안 빼고 있다"며 "나는 그게 '도둑들' 아닌가 생각한다"고 직격타를 날렸다. 이어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1대1로 싸워 지면 당당하게 지겠는데 그렇지가 않다. 무수한 편법과 독점과 마케팅, 불리한 게임에서는 제가 아무리 착해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의 이같은 언급은 '피에타'가 처한 상황을 보면 조금도 과장이 없다. '피에타'는 이미 여러 상영관을 잡아놓은 다른 영화들과도 힘든 경쟁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힘든 대결을 앞두고 있다.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 CJ E&M이 배급하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갑작스레 1주일 개봉을 앞당겨 당장 오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광해'의 갑작스런 조기 개봉에 '피에타'는 물론 '광해'를 피해 개봉일을 확정지었던 다른 작은 영화들까지 줄줄이 피해가 예상돼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는 시장이 없으면 안되지 않나. 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장이 없고 극장에서 안 걸어주고 그러면 안되지 않나"라며 "저는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타 오면 극장이 그 문을 더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들도 이 상을 타 오면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이 중요했다"고 털어놨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영화 역시 초라하게 묻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위기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는 거장의 말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김기덕 감독은 의미심장하게 다음 작품을 기약하는 것으로 이날의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저에게 피에타는 맛있게 먹은 음식이고 소화가 돼서 똥이 됐다. 그게 거름이 돼 할 일이 있을 거다. 그 때문에 관객들이 극장을 더 열어달라고 요구해 극장이 열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피에타'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언론에 나가지 않는다. 다음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약속한 것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안 할 것이다. 다음 영화를 기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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