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할 시간이 너무 짧아 미안했던 엄마의 이야기가 11월의 안방극장을 적셨다.
지난 2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랑-엄마는 멈추지 않는다'(연출 최병륜·글구성 김희영)는 이제는 고인이 된 말기 암환자 이지혜씨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았다. 그녀의 여동생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전해진 탤런트 김현주의 내레이션 속에 죽음을 앞둔 미혼모 엄마의 의연하고도 당당했던 마지막 시간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2010년 11월 위암4기 판정을 받고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미혼모 지혜씨. 그러나 11살이 된 딸 채원양을 바라보며 1년을 훨씬 넘겨 항암 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암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약재들은 이미 다 사용하고, 더 이상 쓸 약이 없으면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말기 암환자. 그렇게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와 싸워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늘 딸을 생각했다.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 지혜씨의 버킷리스트는 소박했다. 운전면허 따기, 동생 웨딩드레스 입혀주기, 직접 운전해 딸과 제주도 여행하기, 가족사진 촬영하기…. 가족과 소소한 시간을 함께하며 평범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결국 그녀는 두 달을 꼬박 고생해 운전면허를 따는 데 성공했고, 무료 결혼식을 열어주는 곳에 전화를 걸어 동생의 결혼식을 성사시켰으며, 딸과 단 둘이 자동차를 타고 제주도 꽃길을 운전했다. 그리고 복수로 부풀어 오르는 배를 끌어안고 기어이 딸과 함께 나와 밝은 표정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애도와 응원의 글이 이어졌다.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를 그려나간 이날의 이야기는 7년을 이어 온 MBC의 대표 다큐멘터리 시리즈 '휴먼다큐 사랑'의 저력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굳이 슬픔을 고조시키지 않아도 어머니와 딸, 그 둘을 지켜보는 동생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엄마와의 이별을 앞둔 11살 된 어린 딸의 말을 억지로 담으려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려깊은 카메라는 더욱 먹먹하게 가슴을 쳤다.
딸 채원양의 목소리는 딱 한 번 나왔다. 어머니와 처음 가족사진을 찍으러 나온 슬프고도 행복한 순간에. "엄마 힘든데도 여기까지 촬영 나와줘서 고마워요. 엄마랑 나랑 둘 다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어요"라며 활짝 웃는 똑똑한 딸의 모습. 지혜씨는 그 모습을 보려고 굳이 병원 밖을 나왔다. 딸과의 가족사진, 그것이 그녀의 버킷리스트 마지막 소망이었다.
매년 5월 방송되던 '휴먼다큐-사랑'은 올해 반년 넘게 이어진 MBC 파업으로 스산한 11월에 시청자를 만났다. 방송 시기가 늦어졌다고 그 저력이 쉬 변할 리 없다. 그 사이 갑작스럽게 지혜씨의 병세가 악화되자 제작진은 방송을 앞당겨 내보내려고 애를 썼으나 결국엔 성사되지 못했다. 제작진과 출연자의 유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의 죽음까지 카메라에 담아야 했던 최병륜 PD는 "방송을 보고 가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그런 제작진이 고 이지혜씨에게 보내는 마지막 헌사와 같았다.
"저 하늘에서도 엄마의 사랑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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