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지난 2010년 76승86패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6개팀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시카고 컵스(75승87패)와 피츠버그 파이리츠(57승105패)보다는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2011년 휴스턴은 전 시즌보다 무려 20게임이나 많은 106패(56승)를 당하며 리그 최하위로 곤두박질하더니 2012년에는 107패(55승)로 더 떨어졌다. 2011년 말 구단을 사들인 새 구단주 짐 크레인은 2013년 시즌부터 팀을 아메리칸리그로 리그를 옮기는데 동의하고 새 출발을 시도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고 2013년 성적은 111패(51승)까지 추락했다. 이 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공인 ‘동네북’ 팀이 휴스턴이었다. 심지어는 휴스턴 지역에서조차 애스트로스 경기 중계방송 시청률이 ‘0.0’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홈팀 중계 시청률이 ‘0’이라는 기막힌 수치가 나온 것은 미 프로스포츠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홈팬들조차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팀이 된 것이다.
그때 휴스턴 구단은 구단 공식 스토어를 통해 ‘PROCESS'(과정)라는 구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팔았다. 의미를 풀어본다면 “현재는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 해 있는 과정”이라는 뜻이 담긴 슬로건이었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않는 팀 입장에서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 ’미래‘이었기에 ’프로세스‘라는 슬로건이 티셔츠에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세스란 단어는 그 자체로 현재는 좋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런 티셔츠에 흥미를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한 ESPN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팀이 형편없으면 이런 슬로건이 박힌 티셔츠를 판다”고 비웃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휴스턴의 ‘프로세스’를 주목한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 스포츠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였다. 휴스턴이 여전히 바닥권을 헤매고 있던 2014년 6월 SI는 표지커버에 ‘당신의 2017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당시 떠오르던 유망주였던 휴스턴 외야수 조지 스프링어의 사진을 표지모델로 올렸다. 직전 3년간 각각 106, 117, 111패를 당한 메이저리그 최악의 팀을 불과 3년 뒤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예고한, 그것도 커버페이지에 헤드라인으로 못 박은 ‘대담한 도발’이었다. 그 해에도 휴스턴은 92패를 당한 바닥권 팀이었지만 SI 기자는 휴스턴의 현재를 보는 대신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프로세스’를 주목했던 것이다.
당시 이 헤드라인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차가왔다. 휴스턴의 유력지인 휴스턴 크로니클부터 “이 SI 커버는 세상의 주목을 끌기 위한 시도인 것 같다. 어쩌면 실제 예상이 아니라 예상을 가장한 풍자일지 모른다”고 평했다. 트위터에선 “누가 SI 커버에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쳤냐?” “웃기는 이야기다. 구독 끊을까 생각 중…”이라는 등 조소와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3년 뒤인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은 이 SI의 대담한 예언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 예언이 나온 다음 해인 2015년에 86승을 거두며 반전에 성공한 휴스턴은 2016년 84승에 이어 올해 101승을 거두며 리그 최고의 팀으로 자리매김했고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를 차례로 꺾고 구단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3년 전 ‘족집게 예언 기사’가 담긴 잡지들은 경매 사이트에서 수집가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판매되고 있고 SI는 그 당시 잡지를 고스란히 다시 인쇄해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기사를 작성했던 SI의 벤 라이터 기자는 삽시간에 유명인사가 돼 여러 매체의 인터뷰 공세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휴스턴이 역사를 만들어낸 ‘프로세스’는 어떤 아이디어를 통해 이뤄진 것이고 SI는 이것은 어떻게 잡아낼 수 있었을까. SI의 3년 전 기사와 최근 나온 라이터 기자의 인터뷰를 통해 이 프로세스를 따라가 봤다.
‘애스트로매틱 베이스볼-휴스턴의 대단한 실험’이라는 제목이 붙은 라이터 기자의 오리지널 기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으로 시작한다. “(야구팀의) 재건 프로젝트는 항상 있어왔던 것이지만 지금 애스트로스가 진행하고 있는 것 같은 재건 프로젝트는 전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집을 완전히 불에 태워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다. 창의적인 프론트 오피스는 많이 있지만 (도박장의) 블랙잭 딜러로 시작해 로켓 과학자까지 했다가 온 사람까지 모인 애스트로스 같은 프론트오피스는 없다. 과연 이들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2017년 10월이 되면 물어보기도 무색하게 될지도 모른다.”
휴스턴이 최악의 바닥에 떨어져 있던 2011년 시즌이 끝난 뒤 휴스턴 구단을 사들인 크레인 구단주는 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프론트오피스 중역이던 제프 루나우를 새로운 단장으로 임명했다. 신임 단장 루나우는 직전 팀인 세인트루이스에서와는 전혀 다른 도전을 만났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그의 임무는 “이미 건강한 구단을 계속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었지만 휴스턴에선 “죽어가는 구단을 회생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루나우가 부임한 2011년 11월 휴스턴의 현실은 단기간에 소생할 가망이 없어 보였다. 휴스턴은 그해 그때까지 구단 역사상 최악인 56승106패로 시즌을 마쳤고 오랜 기간 팀의 핵을 이뤘던 선수들은 거의 디 떠나갔다. 제프 배그웰과 크레이그 비지오는 은퇴했고 랜스 버크만과 로이 오스왈트는 트레이드됐다. 더 큰 문제는 클럽의 팜 시스템이 텅 비어있었다는 사실이다. 2010년 시즌 시작전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휴스턴의 팜 시스템을 메이저리그 최하위로 평가했다.
루나우 단장과 그의 스태프들은 그해 56승을 올린 팀을 뿌리로 하고 장차 계속 우승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가지 끝으로 하는 ‘디시전 트리’(decision tree)를 구상했다. 이 구상의 핵심은 구단 내 모두 결정이 가능한 빠르게 팀을 정상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당장 아무리 고통스러운 결정이라도 그 결정이 장기적으로 구단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확률이 높으면 감행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10년 이상 평범한 팀이 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빨리 정말 좋은 팀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이나 베테랑 선수들을 붙잡아 두는 것으로 그럴 듯하게 팀을 포장해 돈을 낭비하는 일과는 단절을 의미했다. 베테랑 선수들은 장래를 위해 유망주들과 트레이드했고 거액 FA 계약은 자취를 감췄다. 사실 이런 정책은 구단 재정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크레인 구단주가 구단을 매입했을 때 휴스턴은 매년 수천만달러의 적자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루나우 단장은 “여러 구단은 미래에 대비, 재건을 하는 과정에서도 최소한 승률 5할대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10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이미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하락세였고 다시 또 10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걸어온 프로세스는 좋은 팜 시스템을 갖추고 이미 유망주들이 다수 빅리그에 있는 팀들과는 맞지 않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면서 “2017년이 되면 누구도 당신이 5년 전에 98패나 107패를 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2017년에 관심사는 과연 우리가 우승에 얼마나 근접했는가 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SI가 커버페이지 헤드라인으로 꼽은 휴스턴의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 예언은 바로 이 루나우 단장의 발언 중에서 뽑아낸 것이다.
물론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것과 실제로 그 결정을 어떻게 내릴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루나우 단장의 시스템은 선수 평가에 있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선수에게 평가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드웨어란 투수의 구속이나 1루 베이스까지 달리는 속도, 스윙 속도 등 전통적으로 선수 평가대상이던 요소들을 말하며 소프트웨어란 선수의 근면성, 장래 파워 잠재력, 부상가능성 등을 의미한다. 루나우 단장은 “최상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하드한 정보와 소프트한 정보를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한편 휴스턴의 토탈 제건 프로젝트는 또 다른 비판을 불러왔다. 2013년 휴스턴의 팀 전체 페이롤인 2,20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최하위였다. 당시 2억달러가 넘었던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10분의 1에 불과한 휴스턴의 페이롤은 선수 노조를 화나게 했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버리다시피 하는 전략이 과연 모든 경기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나우 단장은 완전히 팀을 갈아엎고 새로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밀어 붙였고 부임, 2015년 시즌에 승률 5할 위로 올라서며 프로젝트의 반환점을 돈 뒤 결국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르며 목표에 도달했다. 목표에 가까이 왔다고 판단되자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를 트레이드로 영입해 월드시리즈 우승에 필요한 마지막 퍼즐피스를 끼워 맞추는 결단력도 보여주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빠른 시간에 역사적인 재건을 완성해냈다. 이제 그에게 다가온 임무는 세인트루이스 시절에서처럼 건강해진 팀을 계속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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