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선언한 오타니 쇼헤이(23)의 행보가 파격적이고 거침이 없다. 지난 주말 정식으로 메이저리그에 포스팅된 오타니는 이미 4일(이하 한국시간) 에이전트를 통해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포함해 14개 구단에게 후보 리스트에서 제외됐음을 통보하고 7개의 최종후보까지 선정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규정상 오는 23일까지 포스팅에 응한 메이저리그 구단 중 한 팀과 협상을 마쳐야 하기에 시간이 빠듯하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놀랍지 않을 수 없는 쾌속 행보다.
오타니의 에이전트 네즈 바렐로는 약 2주전 MLB 30개 구단에게 오타니의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지와 투수와 타자로 모두 뛰고 싶어 하는 오타니의 성장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인지 등을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제출된 ‘응모서류’ 심사 결과를 토대로 먼저 협상에서 배제될 구단 14개를 추려냈고 이후 나머지 구단 가운데 7개 구단을 최종 협상대상으로 지정했으며 5일부터 LA에서 본격적인 인터뷰 과정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오타니와 인터뷰 기회를 잡은 구단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텍사스 레인저스, LA 다저스, LA 에인절스, 시카고 컵스 등 7개 구단으로 알려졌다. 오타니는 정식으로 포스팅 과정에 시작된지 단 이틀 만에 23개 구단을 탈락시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오타니 영입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양키스가 동향의 뉴욕 메츠,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 함께 가장 먼저 서류심사 단계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이다. 양키스는 전통의 명문구단이라는 점 외에도 오타니에게 줄 수 있는 계약금 한도가 300만달러가 넘어 텍사스 레인저스(353만5천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당장 내년부터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췄으며 오타니 영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온 팀 중 하나라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영입후보로 거론됐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오타니를 만나 직접적으로 설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짜를 맞은 것이다.
양키스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우리의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뛰어났고 우리가 받은 피드백도 최고였다. 하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뛰어났던 프레젠테이션에도 불구) 우리가 빅마켓 팀이고 동부에 있다는 핸디캡을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면서 “오타니 같은 선수가 시장에 나온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야 하지만 맞지 않는 것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고 오타니 영입에 실패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타니가 선호하는 구단의 조건으로 미 서부지역에 위치한, 스몰마켓 팀으로, 가능하면 기존의 일본인 스타 선수가 없는 팀을 원하고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양키스는 이 3가지 조건에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으니 가장 먼저 탈락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자 뉴욕 데일리뉴스는 4일자(현지시간) 1면에 오타니 사진을 실고 “겁쟁이! 일본인 스타가 큰 도시가 무서워 양키스를 외면하다”는 헤드라인을 달아 오타니를 조롱하며 그를 놓친 아쉬움에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이날 양키스외에도 보스턴과 워싱턴, 뉴욕 메츠, 미네소타 트윈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밀워키 브루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애틀랜타 브레이스 등이 1차로 서류심사에서 탈락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다저스, 에인절스 등 5개 미 서부지역 구단과 텍사스와 컵스 등이 서류 심사를 통과해 최종 면접 기회를 얻었고 이번 주 LA에서 오타니 측과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이번 오타니의 포스팅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그 어떤 계약과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특히 흥미를 끌고 있다. 구단이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구단을 선택하는 양상은 특급 프리에이전트(FA)가 시장에 나올 때면 종종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번처럼 협상 과정에서 ‘돈’, 즉 계약의 크기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돈’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협상에선 그 막강한 양키스조차도 힘없는 ‘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타니의 재능과 상품성은 지금이라도 오픈마켓에서 경쟁할 경우 2억달러급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만약 그가 2년을 기다린 뒤 완전한 FA자격으로 ML 진출을 시도했더라면 3억달러 계약도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 오타니가 2년을 기다리는 대신 메이저리그 최저연봉과 그에겐 ‘껌값’ 정도의 계약금을 감수하면서 현 시점에서 빅리그 진출에 나선 것은 그의 관심사가 돈에 있지 않다는 것은 입증하고도 남는다.
결국 MLB 구단이 오타니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금전적 대가는 그의 소속팀인 니혼햄에 포스팅금액으로 지불하는 2천만달러를 제외하면 얼마 안 되는 계약금과 최저연봉 정도에 불과하다. 2~3억달러급 선수를 단 2천만달러 내외에 장기간 붙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메이저리그판 ‘로또’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당연히 모든 MLB 팀들이 오타니 영입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얼마 전 구단매매 과정이 마무리된 뒤 극단적인 연봉감축을 선언한 마이애미 말린스만이 구단 재정상황을 이유로 오타니 영입전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최종 후보로 면접에 나서는 7개 구단 가운데 ‘오타니 로토 대박’의 행운을 차지할 구단은 누구일까. 우선 시애틀은 과거 이치로 스즈키 시절부터 일본과 깊은 인연을 맺어진 팀으로 제리 드포트 단장은 올해 오프시즌 시작하자마자 트레이드를 통해 구단의 인터내셔널 FA 계약금 한도를 150만달러로 늘리는 등 오타니 영입에 대비해왔다. 또 구단 주요선수들에게 오타니와 인터뷰 시기에 다른 일정을 잡지 말고 시간을 비워두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고 있다. 일본과의 각별한 인연과 서부지역에 위치한 스몰마켓팀이고 가장 공개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는 팀이라는 점에서 유력후보로 꼽을 만 하다.
샌디에이고 역시 서부지역의 스몰마켓 구단으로 일본 야구는 물론 오타니와 연관 관계가 깊다. 우선 오타니는 지난 2년간 니혼햄 소속으로 애리조나에 위치한 샌디에이고 구단의 스프링 캠프에서 훈련해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시설에 익숙하다. 또 샌디에이고에는 노모 히데오를 비롯, 사이토 다카시, 오추카 아키노리 등 일본인 전 메이저리거가 3명이나 구단에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앤디 그린 감독은 지난 2007년 오타니의 친정팀 니혼햄에서 1년간 선수생활을 한 인연까지 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의 약점은 구단의 전력이 당분간 우승도전은 꿈꾸기 어려운 약체라는 사실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벤치코치 헨슬리 뮬런스와 타격코치 알로조 파월과 릭 슈가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고 심지어는 불펜포수가 일본인 선수라는 사실까지 강조하고 있다. 다저스는 빅마켓 팀이라는 점에서 오타니의 조건과는 다소 맞지 않지만 그 외의 다른 측면에선 어쩌면 오타니와 가장 잘 맞는 팀이 될 수도 있어 끝까지 후보에서 배제시키기 어려운 팀이다. 컵스는 지난해 챔피언으로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선수 구성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서부해안에선 멀리 떨어진 것이 핸디캡이고 텍사스도 역시 지리적 핸디캡을 극복할 지가 문제다.
7개 최종후보 가운데 마지막으로 후보에 포함된 팀이 에인절스다. 비록 LA라는 거대마켓의 영향권에 있긴 하지만 에인절스는 실제로 LA에서 남쪽으로 다소 떨어져 있는 오렌지카운티 애나하임에 위치했고 마이크 트라웃이라는 걸출한 슈퍼스타를 보유한 팀이다. 스몰마켓의 분위기와 빅마켓의 강점이 섞여있는 서부지역 팀이라는 점에서 의외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 에인절스 역시 얼마전 트레이드를 통해 단 15만달러만 남아있던 인터내셔널 FA 계약금 한도를 131만달러로 끌어올려 오타니 영입에 대비했다.
무엇보다도 오타니가 내건 조건 가운데 기존의 일본인 스타가 없는 팀이라는 것이 흥미를 끈다. 이 조건에서 보면 오타니는 과거 일본인 선수들이 활약했던 팀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가장 마지막에 꼽힌 후보 에인절스가 오타니의 선택을 받는 팀이 될 여지도 있다. 과연 오타니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올해 크리스마스에 어느 팀이 오타니라는 최고의 대박선물을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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