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참석한 기자들의 기사에 따르면 민갑룡 경찰청장은 그 자리서 말했다. “의경이 폐지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의경이 일부라도 있는 상태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팀을 갖춰 리그에 참여하는 방안을 찾고 있는데 관련 단체들의 입장이 다 다르다.”
그 말 속에서 무궁화축구단과 함께 경찰청야구단의 운명을 예감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8연패의 개가를 올린 경찰청야구단 유승안(62) 감독의 얼굴에 서린 수심은 그 때문이다.
정부가 의무경찰을 매년 20%씩 단계적으로 감축, 2023년 폐지를 결정함에 따라 야구단과 무궁화축구단 등 경찰청 산하 스포츠팀들이 해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2009년부터 무려 10년 세월을 함께한 팀이다. 분당 집에서부터 파주까지 편도 80km, 왕복 160km를 매일 왕복 3시간 운전해 다니며 가꾸고 키운 팀이다. 불과 4~5년 전에 바꾼 차가 벌써 25만km를 넘겼다고 한다. 그런 팀이 폐단 수순을 밟아가는 모양새를 지켜본다면 누구라도 참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선수들의 잘못도 아니다. 정책이 그렇다는데 원망할 사람도 없다. 다만 마치 사망선고를 내리려는 의사의 손을 붙잡고 호흡기를 조금만이라도 더 늦게 떼달라고 당부하는 보호자의 심정일 뿐이다.
“그렇잖아요. 내년에 프리미어 12도 있고, 후년엔 올림픽도 있잖아요. 2023년 의경폐지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올림픽까지는 폐단을 유예 시켜 달라는 겁니다.” 지난 10일 양재동 K호텔에서 만난 유승안 감독이 필사적으로 찾아낸 명분이다. 현재 경찰청야구단엔 지난 9월 17명이 제대하며 20명만이 남아있다. 금년에 충원이 되지 않을 경우 그 인원으로 96경기를 치르는 내년 퓨처스리그를 정상적으로 소화하기는 불가능하다.
“금년에 마지막 기수임을 분명히 밝히고 30명을 뽑는 겁니다. 내년 9월에 김태군, 김호령 등 현재 남아있는 20명이 제대하면 남은 30명으로 2020 올림픽까지를 치르고 깨끗하게 폐단하잔 거예요. 그 동안에 KBO나 각 구단이나 무슨 수를 내겠죠. 안그러면 지금 남은 20명의 선수들은 어떡합니까”는 그의 목소리엔 반거충이가 되어버릴지 모를 후배 제자들에 대한 염려가 짙게 담겨있다.
얼음물로 목을 축인 유감독은 “물론 아직은 ‘힘들 것 같은데요’란 말을 들었을뿐 ‘이제 더 안뽑습니다’고 정식 통보받은 바는 없습니다”며 미련을 덧붙인다. “매년 10월에 공고 올리고 11월에 뽑아 12월에 입대시켰는데 좀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행정절차만 빨리 빨리하면 11월 초도 가능하죠”하며 폐단 유예에 대한 기대를 이어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경찰청야구단을 향한 유감독의 애정은 참 각별하다. 1994년 한화이글스 배터리 및 타격코치로 시작한 지도자생활이 중간에 공백을 제하고 벌써 20년이다. 그 절반을 경찰청에서 보냈다. 한화이글스 감독(2003~2004년) 세월의 5배. 그 시간 동안 매년 20명꼴로 2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를 거쳐갔다. 그리고 그중 150여 명이 프로야구 10개 구단에서 1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그가 처음 팀을 맡을 당시 선수단은 선수 20명 코치 2명 였다고 한다. 그는 초반 2~3년을 매일 분당집에서 5시에 출발, 6시에 선수들 깨워 아침 러닝부터 함께했다고 한다. 또한 선수 수가 너무 적으면 부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매일 같이 주무부처인 서울지방경찰청 홍보과를 찾아 선수 확충을 호소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늘려 코치 6명, 선수 40명 선으로 선수단을 완비하고서야 5시 기상을 면할 수 있었다고. “우리가 그렇게 선수단 규모 키우면서 상무도 같이 규모가 커졌어요. 한국야구 입장에서는 참으로 긍정적인 현상였죠.”
손승락부터 양의지 허경민 최재훈 장성우 박건우 이천웅 임찬규 전준우 안치홍 정수빈 이대은 등등 경찰청을 거쳐 간 선수들은 그의 보살핌 속에서 경력단절 없이 커리어를 이어갔고 몸 상태를 회복했으며 탤런트를 꽃피웠다.
“야구는 한쪽 운동이기 때문에 젊어도 부상들이 많아요. 선수들이 들어오면 몸상태 회복이 일단 주안점입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수술받은 친구들만 한 40명 될 거예요. 재활에도 무리 없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요. 입대 전부터 잘했던 선수들은 체력보강에 주력했습니다. 반면 제 스타일로 성과를 보지 못했던 선수들은 스타일을 싹 바꿔줬어요. 가령 타자의 경우 올려쳐서 2할 5푼 못치면 내려치게 만드는 식이죠. 여기 있을 때 맘 놓고 바꿔보라는 게 내 주관예요. 가슴이 작은 친구들은 집요하게 스트레스 줘서 심장도 키워줬구요. 투수들은 1년은 선발로, 나머지 1년은 중간과 마무리를 경험시켰어요. 그렇게 2년간 돌봐주고 그 친구들이 1군 복귀해서 잘하는 걸 보면 그게 참 뿌듯합니다.”
팀을 그렇게 육성에 치중해 운영하면서도 리그 8연패란 독보적인 성적을 기록했으니 그가 대단해 보인다. “그건 다 선수들 덕분이지 감독이 뭐 한 건 없어요. 성적도 성적이지만 다친 선수들 없이 한 시즌 마친 게 좋은 거죠”라며 겸양도 보인다. 다만 “양의지 장성우 최재훈 김태군까지 포수 하는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내 덕 좀 봤을 거예요”라며 최초의 공격형 포수다운 자부심만큼은 은근히 드러낸다.
KBO 리그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에 대해 물어보니 지나친 타고투저 현상을 콕 집는다. “야구에 관해선 어쨌건 메이저리그를 롤모델 삼아야 됩니다. 3할 타자 비율은 어떤가, 20승 투수 비율은 어떤가 따져보는 것도 야구의 인기를 유지하고 향상 시키는 데 의미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험을 거쳤겠어요. 메이저리그 선수들 어마어마한 파워 갖춘 천재들이 162게임 치르며 홈런 50개 치기 바쁩니다. 우린 상대적으로 홈런이 너무 흔해요. 승부가 길어지는 것도 수시로 터지는 홈런으로 인해 동점, 역전 상황이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이죠. 난 개인적으로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낮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인구는 반발계수가 너무 높아 마치 골프공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납득할만한 홈런보다 뜻밖의 홈런이 너무 많아요. 그런 타구는 수비수들에게도 위협이 됩니다. 아직까지 운이 좋아 타구로 인한 부상이 없는데 전세계적으로 매년 타구로 인한 안타까운 사고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못잡아도 피할 수 있는 정도로는 반발계수를 낮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스트라이크존이 메이저리그에 비해 많이 좁은데 심판진의 재량에 대해 좀 너그러운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방송사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지나친 강조, 실수에 대한 지나친 질책 등으로 심판진이 위축되면서 스트라이크 존이 보수적으로 너무 좁아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술 좋은 선수들이 3할 치고 힘 좋은 선수들이 홈런 치는 개연성 있는 야구가 야구에 재미를 더해줄 거라고 봅니다”고 말한다.
다시 경찰청 문제로 돌아와 혹시 이번에 더 안뽑는 것으로 결정 나면 어찌할지를 물어본다. 예의 긴 한숨부터 앞세운다. “하다가 손들더라도 할 때까진 해봐야죠. 경기 안뛰면 20명 선수들이 망가지는데 어떡합니까. 일주일에 6게임 하던 거 3게임을 하더라도, 아니면 전반기만 뛰고 후반기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할 때까진 해봐야죠”한다. 이어 “우리 야구단 생기면서 병역비리도 없어졌고 선수들 경력 단절 없이 오히려 성장해서 리그 복귀하고.. 순기능만 있지 않았나요?”하고 묻는다. 질문에 다분히 하소연의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는 매년 계약을 맺는 감독이다. 12월로 금년 임기는 끝난다. 프로 2군 코치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하소연이 단지 또 다른 1년의 수명연장을 위한 것으론 읽히지 않는다. 다만 경찰청야구단에서 쌓아올린 10년 세월이 무거울 따름이다.
힘없이 읊조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는 팀이 남아줬으면 좋겠습니다”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스산한 가을바람에도 흩어지지 않은 채 또렷이 귓전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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