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아닙니다만' 전설 손아섭을 만든 '치열함'... "나도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 [잠실 현장인터뷰]

잠실=안호근 기자  |  2024.06.20 22:26
NC 손아섭이 20일 두산전 KBO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한 뒤 환호하는 팬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손아섭(36·NC 다이노스)이 40년이 넘는 KBO리그에 새 역사를 창조해냈다. 3000안타까지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페이스. 손아섭도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냈다.

손아섭은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방문경기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6회초 2사에서 안타를 날려 개인 통산 2505번째 안타로 KBO 통산 최다안타 1위로 올라섰다.

양정초-개성중-부산고를 졸업한 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 전체 29순위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손아섭이 그해 4월 7일 수원 현대전에서 2루타를 때려낸 뒤 17년 2개월여, 6284일 만에 KBO 최고 타자가 됐다. 통산 2044번째 경기에서 마침내 전설 박용택을 뛰어넘었다.

큰 부상 한 번 없었고 매 시즌 꾸준한 기량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기록이었다. 2015년 목동 넥센(현 키움)전에서 1000안타, 2018년 포항 삼성전에서 851경기 만에 1500안타, 2021년 대구 삼성전에서 1226경기 만에 2000안타를 때렸는데 이 기록은 KBO리그 역대 최연소(33세 4개월 27일) 및 최소 경기(1636경기) 달성 기록이었다. 이젠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라섰다.

손아섭이 대기록을 세운 6회 종료 후 기록 달성을 기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임선남 단장이 구단에서 직접 만든 상패를, 강인권 감독이 꽃 목걸이를 전달했고 NC에서 박건우, 두산에선 주장 양석환이 손아섭에게 꽃다발을 안겨줬다. 또 6년 동안 KBO 최다안타왕을 지켜온 박용택도 손아섭에게 다가가 포옹과 함께 축하 인사를 건넸다.

6회초 개인 통산 2505번째 안타를 날리고 있는 손아섭. /사진=NC 다이노스 제공
경기 전 만난 강인권 NC 감독은 "저런 대기록을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관리가 어느 정도 명확하게 된다는 것이고 노력이 없지 않아서는 힘든 기록"이라며 "본인의 자기 관리, 능력, 경기에 대한 집중력까지 모든 부분들이 같이 어우러지면서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큰 부상도 없는 꾸준함의 대명사라고 생각을 한다. 지금 하는 대로만 착실하게 경기에 집중력을 보인다면 앞으로 향후 몇 년간 계속 기록을 이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존중을 나타냈다.

2-0 승리를 거두고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손아섭을 향했다. KBO의 또 다른 전설적인 타자인 이승엽 두산 감독도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오늘 상대팀 손아섭 선수가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손아섭의 대기록을 정말 축하한다"고 말했다.

경기 후 만난 손아섭은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정말 영광스럽다"며 커리어를 돌아본 뒤 "데뷔 첫 안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역전 2루타로 스타트를 잘 끊어 지금까지 꾸준하게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8년 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손아섭은 "이렇게 많은 안타를 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정말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왔던 시간들이 모이면서 이렇게 대기록에 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전 만난 박용택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손아섭을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타자라며 천재형이라기보다는 누구보다 절실함을 갖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타자라고 평가했는데 손아섭 또한 "맞는 말씀이다. 천재형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간절함을 갖고 타석마다 어떻게든 투수에게 이기고 싶다는 치열함으로 경기에 나섰던 게 하나씩 쌓이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손아섭(가운데)이 안타를 치고 팬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김진경 대기자
박용택 위원이 3000안타를 응원할 것이라고 했던 말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수치상 너무 많이 남았다. 2500안타를 칠 것이라고도 생각을 안 했기에 오히려 이렇게 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뭔가를 의식하게 되면 타석에서 밸런스도 무너지고 욕심들이 오히려 역효과로 이어진다. 특정 숫자를 정해놓기보다는 지금 같은 마음으로 부상 없이 열심히 뛴다면 나중에 많은 분들이 바라는 수치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매 경기에 모든 걸 쏟아 붓고 싶다"고 전했다.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 이 기록의 끝이 어디까지일지와 밀접한 연관을 맺기 때문이다. 손아섭은 "이때 은퇴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힘이 있고 또 팀에 도움이 된다면 뭔가를 정해놓기보다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지금은 1년에 안타로 치면 150개는 쳐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야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앞길이 창창하기에 이 시점에서 세운 최다안타 대기록이 더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정말 고생 많이 하고 그렇게 노력했던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면서도 "이게 끝이 아니지 않나. 제가 앞으로 야구할 날이 많기 때문에 언제까지 몇 안타를 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고 미래를 기약했다.

18년을 활약했고 KBO 역대 최다안타 주인공에 올랐지만 여전히 야구가 어렵다. 손아섭은 "정말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초반에 생각했던 것만큼 안 풀리다 보니까 정말 야구라는 게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요즘 들어서 또 몰랐던 부분들도 많이 배우고 있고 타격이라는 부분은 확실한 건 신의 영역이지 않나 싶다. 정말 어려운 부분이고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손아섭(왼쪽에서 2번째)이 박건우(왼쪽), 박용택(왼쪽에서 3번째, 양석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중학교 2학년 시절 자신의 미니홈피에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절제하는 삶을 살겠다는 글을 쓴 게 과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아섭은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많이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부터는 정말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초심 잃지 않고 유니폼을 벗는 날까지 지금 같은 마음으로 뛴다면 저도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은사들께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제가 정말 많이 부족한 선수였는데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셨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이 생각난다. 김무관 타격 코치님도 신인 때 스윙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지금 강인권 감독님께서도 부진할 때 끝까지 믿어주시고 경기에 내보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허문회 감독님도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야구적인 생각을 새롭게, 야구라는 부분을 바꿀 수 있게 도와주셨던 분이다. 이렇게 네 분이 확실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향후 최소 몇 년간은 손아섭의 시대가 이어질 전망이다. 최형우(41·KIA·2400안타), 김현수(36·LG·2322안타), 최정(37·SSG·2199안타) 등이 뒤를 따르고 있지만 선배이거나 동년배이기에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치홍(34·한화·1761안타), 나성범(35·KIA·1630안타), 오지환(34·LG·1619안타) 등도 마찬가지. 더 많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손아섭은 후배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해봐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저도 워낙 신체 조건도 많이 부족한데 그런 부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했다"며 "작은 체격을 커버할 수 있는 스윙들을 많이 연구하면서 저만의 스윙을 만들었고 그런 부분들을 포기하기보다는 끝까지 준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손아섭이 최다안타 기념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NC 다이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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