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은 지난달 25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2'로 전 세계 안방극장을 찾았다. 이는 2021년 '지옥' 론칭 이후 약 3년 만의 새 시즌. 연 감독이 최규석 작가와 공동 작업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시즌1·2 모두 각 6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2'는 계속되는 지옥행 고지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세상, 갑작스레 부활한 새진리회 정진수(김성철 분) 의장과 박정자(김신록 분)를 둘러싸고 소도의 민혜진(김현주 분) 변호사와 새진리회, 화살촉 세력이 새롭게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돌아온 '지옥2'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주인공 정진수 역할의 캐스팅 교체이다. 기존 배우 유아인이 시즌2 역시 출연을 예정했으나 마약 물의를 일으키며 급작스럽게 하차, 그 빈자리를 김성철이 꿰찬 것이다.
이에 연상호 감독은 10월 29일 진행된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캐스팅이) 상당히 어려웠다"라며 당시 심경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연 감독은 "시즌1의 배우(유아인)가 워낙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줬기 때문에, 원작 만화책 속에 정진수가 있지만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정진수는 시즌1의 정진수이지 않나. 그리고 아마 그 시즌1의 정진수는 배우 본인이 아이덴티티(identity)를 발휘해서 표현된 것이기에, 새로운 배우에게 '그걸 흉내 내'라고 말하기도 힘든 부분이었다"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김성철이 뮤지컬 무대에서 오랜 시간 인상적인 역할들을 보여줬기에, 저도 그의 공연을 보고 나니까 '더블 캐스팅'이란 개념으로 접근이 되더라. 어쨌든 원작 웹툰이 있기 때문에, 김성철도 원작에서 출발하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근데 제가 제일 걱정했던 건 정진수가 좋은 역할이긴 한데, 가능성 높은 배우한테는 아주 좋은 선택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내 연상호 감독은 "김성철에게 이런 걱정들을 꽤 많이 얘기했는데,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 두려움을 전혀 받고 있지 않는다는 거였다. 김성철은 어떤 결과론적 성공보다 오히려 원작의 정진수, 한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몰입하더라"라며 김성철의 연기 열정에 확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옥2'는 김성철이 무리 없이 정진수로서 극에 녹아들며 '유아인 지우기'에 성공, 글로벌 시장에서 쾌조의 성적을 냈다. 공개 이후 단 3일 만에 17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으며 넷플릭스 국내 톱10 시리즈 부문 1위는 물론,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5위를 찍기도 했다.
김성철뿐만 아니라 '원조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영리한 활용으로 화제성까지 잡은 '지옥2'다. 문근영은 극 중 오지원 역할로 특별출연, 평범한 아내이자 어린이집 선생에서 광신도 집단 화살촉의 핵심 선동가 햇살반 선생으로 변모하는 인물을 완벽히 소화했다.
그러면서 연상호 감독은 "문근영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배우"라며 "여러분이 오지원의 부활을 바라는 만큼, 저는 사실 '배우 문근영'이 부활하길 바랐다. 문근영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을 걸 예상했냐 물으신다면, 저는 사랑받길 바랐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금 다들 '지옥2'의 완성된 버전을 보고 문근영의 연기 얘기를 많이 하시지 않나. 이걸 바랐었다. 왜냐하면 '지옥2'에서 문근영이 보여준 배우로서 에티튜드, 에너지가 이제 뭔가 시작됐다 하는 느낌들을 크게 줬기 때문이다"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지옥2'를 연출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선 "시청 시간보다 시청 이후 시간이 중요한 작품이었다. 처음 만들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시즌1이 궁금증을 자극하는 드라마였다면, 시즌2는 시청 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길 바랐다. 이게 '지옥' 시리즈가 갖고 있는 코어(core)가 아닐까 싶다"라고 내세웠다.
현실에 곱씹을 만한 여러 화두가 담긴 만큼 시즌2 또한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 바. '지옥3'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했는데, 정작 연상호 감독은 "시즌3가 나온다고 해도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이루어지기 힘든 바람입니다만 '지옥'이 일본 만화 '기동전사 건담'처럼 장기 시리즈가 됐으면 좋겠다. 근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거대해진 궁금증은 더욱더 거대해질 거다. 그게 바로 '코스믹 호러' 장르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사그라들게 만들라면 할 수는 있다. 아주 간단하다. '외계인의 소행이다' 하고 끝내는 거다. 그런데 이건 작품에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않나"라고 예측불허의 '지옥'을 예고했다.
남다른 뚝심으로 독보적인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universe))를 구축한 연상호 감독이지만, 그만큼 '호불호'도 만만치 않게 따라붙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연 감독은 "제가 꿈꾸는 작가는 현재 제가 처한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 늘 작품 내면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그게 좋은 평가이든 나쁜 평가이든 '돼지의 왕'(2011)부터 시작하면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여전히 들끓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호불호'라고 하시던데, 저는 이렇게 들끓는 게 좋다. 제가 꿈꿨던 작가는 그런 작가인 거 같다. 만약 계속 칭송만 받는다면, 그게 더 불안할 거 같고 살아있는 느낌이 안 들 거 같다. 다양한 반응이 들리는 건 행복한 일이다"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또 연상호 감독은 "저는 '자기 복제', 복사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돼지의 왕', '사이비'(2013)를 복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이득이 있겠나. 이런 작품들은 지금 쓰라고 하더라도 못 한다. 하지만 시도는 해본다. 달라진 연상호가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도 전혀 알 수 없기에. 저는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이라서, 연상호의 상황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 사람을 될 수 있으면 극한으로 몰아가려 한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서 작업하는 게 몇 년이 됐다. '부산행'(2016)을 끝내고 다시 '사이비' 때로 돌아가 보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연상호이기에 당연히 '사이비'는 나올 수 없다. 그렇기에 '계시록'(2022)이라는 새로운 작품이 나온 거다. '지옥' 역시 단편을 만들던 시절로 가서, 천천히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만들었다. 필모그래피를 늘어놓고 본다면 연상호의 시간은 엉망진창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도 많이 생기는데, 그래야 다른 결과물이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저는 과연 능숙하고 완벽한 예술가는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라며 다작 비결을 밝혔다.
끝으로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이 천만 관객이 넘었는데, 생각보다 흥행이 너무 많이 됐다. 저는 작업을 하면서 '상업성' '대중성'을 생각 안 하면서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부산행' 이후 대중적 성과가 다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대중성은 항상 여러 가지 중 최우선에 놓고 생각을 했었다. 제 작품에 투자를 하신 분들도 저한테서 '예술성'을 기대하고 그런 건 아니었던 거 같다. 근데 '지옥2'를 작업하면서 제일 좋았던 상황은 그 숫자에 대한 얘기보다, 작품 자체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 작업을 할 때만큼은 오롯이 지옥 세계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임했다. 물론, 또 이렇게 얘기하면 '대중예술하는 사람이 무책임한 거 아니냐' 하실 수 있는데 적어도 10번 중에 한 번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 그 정도로 제가 상업 작품 안에 들어오고 열 번째쯤 만에 뭔가 제 안에 있는 걸 제대로 풀 수 있는 판이 깔아진 게 '지옥2'였다. 그 기회가 생겨 너무 좋고 운이 좋았고 그 결과(작품성)를 떠들썩하게 얘기해 주는 지금 이 상황이 무척 행복하다"라는 소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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