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진 감독의 '기다리다 미쳐'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연인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말하고 나니 그렇다. 과연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특수한 것일까?
20대 초반의 남녀들이 연애를 시작한다. 누구는 캠퍼스 커플이기도 하고 또 누구는 6살 연상 여성을 만나는 대학생이기도 하다. 홍대 앞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밴드 기타리스트도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삶의 궤도를 그려가지만 한 번쯤 개기일식처럼 서로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군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김없이 지나치게 되는 삶의 일부, 바로 군대이다.
'기다리다 미쳐'는 '군대'라는 한국의 보편적 특수상황을 소재로 택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토록 흥미로운 소재가 왜 이제야 영화화되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제까지 행복하게 만나고 서로를 쓰다듬었던 연인들이 갑자기 2년여의 시간을 차압당한다. 이런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곳,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 아니었던가?
3년 꽉 채운 군 복무기간이 2년으로 줄었다고 해서, 볼 수 없다는 공포와 슬픔이 삭감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란 무릇, 단 하루의 떨어짐도 괴로운 감정의 이상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기다리다 미쳐'는 대한민국 성인의 90% 이상이 공감할 만한 특수보편 상황을 보여주기에, 일단 흥미롭다.
안 보이면 멀어지기에, 죽고 못살던 연인도 냉랭해지고, 이런 장면들은 끝내 추억으로 남을 20대의 앨범에 삽입된다. '기다리다 미쳐'의 연인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낭만적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남루한 연애들"을 보여준다.
이 연인들은 남자를 속이기도 하고 군대 간 애인의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지리멸렬하고 사랑스러운 연인들은 지금, 이 곳의 젊은 연인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20대를 지나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러브 액츄얼리'처럼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군대를 보내고 기다리는 연인들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결국 '연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군인' 혹은 '고무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애인을 강제적으로 먼 곳에 보내야 하는 애틋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일 뿐이다. 네 커플인 만큼, 누군가는 사랑을 이루고 누군가는 결국 그 사랑과 결별한다. 코믹하게 사랑을 지속하는 커플도 있다.
영화 속의 모습은 내무반에서 하루하루 날짜 가기를 기다리는 현역병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김 병장은 기다려준 애인과 만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 병장은 상병 즈음에서 기다려준다던 애인과 헤어졌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많은 김병장 중 한 명은 기다려준 애인을 배신하고 앳된 신입생과 사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무통장 입금란 고백으로 애인을 울리는 장근석은 관객도 울리는 데 성공한다. 이 기발한 장면은 '러브 액츄얼리'의 문자판 사랑 고백만큼이나 상큼하다.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환호하는 관객들, '사랑'과 '연애'의 달콤함에 목마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 '기다리다 미쳐'를 외면할 수 없을 듯 싶다.
/강유정(영화평론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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