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70' 최호 감독 "1970년대에 대한 헌사"

김현록 기자  |  2008.10.06 15:35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발바닥이 나도 몰래 리듬을 맞추는가하면,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인다. 열기 후끈한 공연장에 들어와 앉은 기분. '고고70'(감독 최호·제작 보경사)는 그런 '흥'의 영화다.

마약이 판치는 IMF 시절의 부산 뒷골목을 실감나게 그렸던 '사생결단' 이후 2년만에 돌아온 최호 감독이 '고고70'으로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니들 놀고 싶지?"라는 물음에 온몸으로 응답했던, 억눌렸던 70년대의 흥과 열기다. 전작에서 돋보였던 실감나는 시대상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다.

최호 감독을 만난 영화사 사무실은 흡사 영화속 밴드의 연습실을 연상시켰다. 영화에 등장했던 건반이며 각종 기타, 드럼 스틱 등이 널린 그 곳에서 최호 감독은 "1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공연 장면이고 소리도 그 순간의 라이브를 살렸다"며 "그것이 잘 전달됐다면 70%는 성공"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영화를 보면 공연 DVD 실황을 보는 기분이 든다. 우연히 잡힌 장면도 많은 듯하다.

▶공연 장면이 많은 영화니까. 우리는 1차적으로 공연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소리도 그 순간의 라이브를 담았고, 카메라도 동시에 여러 대가 필요했다. 특히 엔딩은 10대의 카메라가 배치됐다. 그것 때문에 배우며 스태프가 고생이 많았다. 솔직히 우연히 잡힌 것도 많다. 배우며 악기, 관객 하나하나까지 다 짤 수가 없다. 여기선 어떻게, 저기는 저렇게 짜놓고 하는 걸 지양했다. 물론 연습은 많이 했다. 심지어 조승우는 기타를 3개월 이상 쳤고, 밴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큰 흐름은 있지만 그 안에 각자 자기 구역이 있는데, 뭘 포착하느냐는 순간에 달린 거였다.

-'사생결단'에서도 돋보였듯 당시를 그려내느라 발로 뛴 취재가 대단하다.

▶기자를 해 볼까. 이번엔 '사생결단'에 비하면 자료가 많았다. 젊은 연구진들이 1970년대 한국 음악을 많이 파헤치기도 했고. 근래 인생긴 인터넷 웹진이라든지, '한국 팝의 고고학'이란 책이 큰 도움이 됐다. 책에 나온 분들을 다시 인터뷰하곤 했다. 워낙 잘 기억하고 계서서 '사생결단'에 비해 몇개월을 절약한 셈이다. 책상에서 상상의 나래로 작품을 완결하는 분이 있고, 발로 뛰어 인물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후자인 것 같다.

-저 배우는 왜 이렇게 연주를 잘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알고보면 음악하는 분이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였다.

▶작은 영화도 아닌데 모험적인 측면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이런 설이었다. 미술 등 문화활동을 하는 분 중에 다른 여느 장르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연기를 하기 수월하다고. 그 사람들이 눈 앞에 있는 관객의 반응을 끄집어내는 행위 자체가 매우 광대적인 요소가 있다. 자기들이 평상시 관객 앞에서 공연하듯 해 왔기 때문에 이 정도가 가능했을 것 같다. 순서대로 찍었더니 연기도 점점 더 늘었다. 자기들도 즐기며 나중엔 재밌게 하더라.



-1970년대의 고고클럽, 그 중에서도 데블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게 됐나.

▶'사생결단' 내놓고 2006년 후반기에 차기작을 고민하던 중에 이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 팝의 고고학'이란 책도 그 즈음 나왔다. 몇가지 일치가 있었다. 고고클럽 밴드 이야기는 음악을 조금 좋아하는 분이라면 감독들 사이에서도 나왔던 얘기다. '재밌지 않아?' 하면서. '고고70'이란 제목이 먼저 나왔고, 본격적으로 시놉시스를 쓰고 구상을 했다. 특이한 건 조승우군은 그 시점에서 꼬셨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흥미를 보이더라. '일단 써보세요' 하면서 1년을 기다렸다.

1970년대는 무에서 유를 만들었던 시대인 것 같다. 악보도 없고, 이른바 '백판'을 듣고 따서 자기 식으로 음악을 했다. 그렇게 만든 뭔가가 지금 들어봐도 꽤나 그럴싸했다는 데 그 시대의 패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걸맞았던 점이 데블스다. 기지촌에서 활동하던 다른 팀이 합쳐 난관을 뚫고 가는 측면이 있었고, 특이하게도 흑인음악을 했다. 이런 팀의 칼라가 재미있다. 그게 우리 영화가 말하는 이른바 '쏘울(Soul)'을 가져라, 이거랑 겹치더라.

-그 시대, 당시 밴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혹시 밴드 하셨나?

▶저도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다. 그때만 해도 대학에 갈 나이가 되면 대학을 가든지, 아예 학업을 접고 나이트클럽에 가야 했다. 음악하는 데가 거기밖에 없어서. 1980년대 초 밴드들은 옷을 맞춰 입고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를 하곤 했다. 나 역시 음악에 매진해볼까 생각도 했다. 선배들 따라 나이트클럽을 가느냐 고민도 하고. 저는 결국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갔는데, 대학가요제 여파로 학교 밴드가 있어서, '씨커스'라고, 거기 3기다. 드럼을 쳤다. 70년대 고고밴드 이야기는 그 때도 이미 들었다. 그룹사운드를 했으니까 더 민감하게 기억했을 수도 있겠다.

-이번 작품은 혹시 그때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한풀이?

▶제가 혼자 한풀이하면 안된다.(웃음) 관객과 즐겨야지. 모든 감독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은밀한 것이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든 관객과 공유하고자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닐까.

-영화를 볼 젊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대에 대해 교훈적으로 가르치려들거나, 그때는 이러고 살았단다 식의 이야기는 피하려고 했다. 청춘영화 식의 의도도 크지 않다. '데블스라는 생 날 것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돌파해 성취를 이루는가'를 그린 셈이다. '우리는 그래도 간다'라고 할까? 에너지가 있고 음악이 있는 영화를 그대로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의미를 모른다 해도 그 자체로 재미있으면 된다고 본다. 그게 록의 본질 아닌가.

-그 '끝까지 간다'는 마지막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판타지가 짙은 장면이다. 한국의 록밴드 영화는 항상 쓸쓸하다. 우리는 록밴드가 대중과 호흡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화려한 시절을 보여주면서 끝내고자 했다. 요새 젊은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힘을 내고 뭔가 질러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70년대에 대한 우리의 헌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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