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사칭 열혈팬, '완전범죄' 노렸지만...

정현수 기자  |  2009.06.22 16:09
↑ 모 영화 시사회의 열띤 취재현장. 최근 기자를 사칭해 행사장에 잠입하는 팬들이 늘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프레스(press) 신청한 OO신문 OOO기자입니다"

20일 서울에서 열린 문화행사 현장.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수들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는 소식에 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기자 출입증을 발급하는 '프레스센터'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기자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취재하기 편한 복장에 사진기까지 지참한 모습이 영락없이 기자였다. 하지만 출입증을 발급하는 직원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웬만한 언론사의 기자를 다 알고 있던 이 직원은 바로 이들을 실체를 파악했다.

이들은 '단순 팬'이었다. 행사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보기 위해 온 것. 하지만 이들의 물불 안 가리는 '수법'은 혀를 내두를 만 했다. 실제 언론사 소속 기자의 명함을 도용하기도 하고, 행사 전날 주최측에 전화해 자신들을 기자로 소개해 등록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 기자 사칭 방법도 '가지각색'

이처럼 최근 기자를 사칭해 문화행사나 콘서트, 영화 시사회 등에 '잠입'하는 팬들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행사의 경우 별도의 기자석이 마련되고,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이용한 것이다.

기자를 사칭하는 방법도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일부 팬은 자신을 잘 알려지지 않은 인터넷 매체의 기자라고 소개한 뒤, 미덥지 않으면 홈페이지를 직접 검색해보라고 말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이들 중에는 조잡한 수준이지만, 실제로 사이트를 개설해놓은 사례도 있었다.

또 다른 팬의 경우 현직 기자의 명함을 들고 와 실제 기자처럼 행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 기자가 행사장에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사전에 차단한다. 이 정도의 대범함을 보일 정도면 실제 기자들의 스케줄까지 꿰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한 기자의 명함을 복수의 팬들이 사용하는 경우다. 실제로 한 행사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모 언론사의 A기자라고 밝힌 사람이 운 좋게 이미 입장을 했는데, 잠시 뒤 누군가 또 A기자의 명함을 들고 나타난 경우다.

◇ 기자를 사칭하는 열혈팬들···왜?

콘서트나 영화 시사회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유명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행사장에 도착해 줄을 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팬들이 많다. 앞자리에서 연예인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기자라는 직함은 매력적이다. 취재를 위해 마련된 기자석은 대부분 앞자리인 경우가 많고, 행사 도중에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다. 더욱이 최근 블로그 등에 사진을 올리는 팬들이 많아지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도 달콤한 유혹이다.

여기에 행사 주최측 입장에서는 최근 인터넷 매체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담당 기자의 면면을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다는 애로 사항도 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행사장에서는 기자들의 명함으로만 신분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허점'이 많은 셈이다.

한 언론사 기자는 "취재 현장을 많이 다니면서 같은 출입처의 웬만한 기자들의 얼굴 정도는 다 알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보게 된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조금이라도 가깝게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실제 기자의 신분까지 도용, 사칭하는 것은 범죄행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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