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줘'를 보면서 '밥 주기 싫은 이유'

[이수연의 클릭!방송계]

이수연   |  2009.06.23 15:17


여러분들께 묻겠다. 먼저 결혼하신 여자분들에게 묻는다. ‘남편이 당신에게 평소 가장 자주하는 말은?’ 이번엔 결혼하신 남자분들에게. ‘당신이 아내에게 평소 가장 자주하는 말은?’ 그렇담, 이도저도 아니신 싱글분들께 묻겠다. ‘당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평소 가장 자주하는 말은?’

‘사랑해’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 등등인가? 이같은 내용들이 포함된 대답들이라면, 야~ 극히 보기 좋고,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이 눈꼽만큼도 포함되어있지 않는다면...?

뜬금없이 남의 가정사는 왜 묻냐고? 궁금한 것도 참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고? 이렇게 생각하셨다면 미안~. 그 이유는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이 드라마 때문이다. 이름하야 ‘밥줘’다.

드라마 속 선우(김성민)는 밖에선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를 이루고 있는 CEO에, 번지르르한 말로 인터뷰하는 달변가지만, 집에선 너무나 자나치게 과묵한 남편이다. 고작 하는 말이라곤 ‘밥줘’밖에 없다. 퇴근하면 ‘밥줘’, 자고 일어나서도 ‘밥줘’, 서재에서 일보다 빼곰히 방문 열고 나와서도 ‘밥줘’. 어찌나 주야장천 ‘밥줘’만 내뱉는지 그것만 쭉 모아도 랩이 될 정도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한술 아니 두세술 더 떠서 아내에게 바람피는 걸 딱 걸렸으면서도 ‘밥줘 타령’을 계속한다는 거다. 지금까지 남편의 불륜을 다룬 대부분의 드라마 속에선 바람피다 걸릴 경우 최소한 아내에게 미안해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여기선 미안은커녕 아내가 자기의 진실한 사랑을 훼방하는 방해꾼이란다. 돈 잘 벌어다주고, 처갓집에 꼬박꼬박 생활비 대주니 그만 입 다물라신다. 바람피는 자기에게 소리 지르고 따지는 아내를 보며 꼬질꼬질한 집에서 자란 천박한 티를 내신단다. 그러며 배고프니 ‘밥줘’란다.

나 원 참! 기가 차서! 그 입을 그냥 밥주걱채로 콱 틀어막아버리고 싶다. 아니, 놀부 형수처럼 밥주걱으로 뺨 서너 대는 쳐야 분이 풀릴지도 모르겠다.

선우(김성민)는 자신이 돈 벌어다주니 할 도리는 다한 거라 마음껏 바람피워도 괜찮다는데... 그의 이론대로라면 ‘아내가 집에서 숨 죽은 듯이 살림하는 기계’고 ‘남편은 돈벌어다주는 기계’가 되는 건가? 그렇담 그걸론 안되지. 낮에만 일하지 말고 밤에도 알바 두 탕 세 탕을 뛰어서라도 돈을 갖다줘야하는 거 아닌가? 왜? 가정을 책임지지 못한 대가로 말이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아무리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라도 아내는 집에서 살림이나 해라, 이런다면 절대 대접 못 받는 시대 아닌가?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센스쟁이 남편들이 수두룩한 이 시대에 이런 뻔뻔한 남편이 버젓이 있다니 ‘밥줘’를 보며 저녁밥을 푸다가 슬그머니 밥그릇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밖에.

그래서일까? ‘밥줘’를 볼 때 생긴 또 하나의 재미(?)는 ‘나쁜 남편’이란 존재들을 모두 보자기로 싸서 조근조근 통째로 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불륜 드라마들을 보면 어땠나? 바람피는 건 남편인데, 그 화풀이 대상은 그의 내연녀였다.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 장면은 필수요, 서로(아내)가 서로(내연녀)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모습들이 주요 관점으로 보여졌다. 그러니 ‘저런 저 나쁜! 유부남을 꼬셔?’하는 내용들로 시청하는 내내 도마 위에서 칼질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런데, 드라마 ‘밥줘’는 정면으로, 정정당당(?)하게, 직설적으로 ‘바람피는 나쁜 남편’을 보여준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아무리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고, 부수려고 난리쳐도 꽉 잠그고 안 열어주면 그만 아닌가? 결국 유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남 탓으로 돌리며 받아준 남편이 더 나쁘단 얘기다. 때문에 ‘유혹하는 내연녀’를 더 지탄했던 그 동안의 드라마들과 다르게 ‘바람피는 남편’을 확실하게 씹어줄 수 있어서 ‘밥줘’를 보고 있노라면 속은 터져도 신선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씀.

하지만, 아직 시청률면에선 확 치고 오르진 못했다. 대박 시청률이 오늘 당장일지, 아니면 서서히 달궈지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그럴지 신이 아니니 알 순 없다. 그러나 내 남편 밥 줄 시간이면 어김없이 꼬박꼬박 ‘밥줘’를 시청하게 되는 건, 못된 남편의 못된 짓거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서이다.

그러며 말하고 싶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아내는 밥 차려주는 부엌떼기가 아니라고. 그녀들은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 줄 아는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이며, 이 불황의 시대에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콩나물값 깎는 귀여운 살림꾼이며, 가정을 지키는 건강한 수호천사라고 말이다.
<이수연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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